역사

통일신라와 당의 관계-338,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183, 8. 황소의 난-9)

상 상 2017. 6. 26. 20:09

통일신라와 당의 관계-338,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183, 8. 황소의 난-9)

 

차례

 

. 관련 사료

1. 구당서 토번전()

2. 구당서 토번전()

3. 신당서 토번전

4. 구당서 돌궐전

5. 신당서 돌궐전

6. 구당서 측천본기

7. 신당서 측천본기

8. 구당서 거란전

9. 신당서 거란전

10. 구당서 발해전

11. 신당서 발해전

12. 구당서 숙종본기

13. 구당서 회홀전

14. 신당서 회골전

15. 구당서 남조전

16. 신당서 남조전

17. 구당서 신라전

18. 신당서 신라전

19. 삼국사기 신라본기

 

.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

1. 이진충의 난 이전

2. 이진충의 난

3. 돌궐족 묵철의 침공

4. 안사의 난

5. 토번의 침공

6. 토번의 침공 이후

7. 민란의 발생과 남조의 침공

8. 황소의 난

9. 절도사의 시대

10. 당의 멸망

 

. 통일신라와 당

1. 통일신라 이후의 당나라 약사

2. 신구당서에 의한 통일신라와 당

3.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의한 통일신라와 당

4. 사료를 통합해서 본 통일신라와 당의 관계

 

 

.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

8. 황소의 난

1) 연표(자치통감 요약을 기초로 작성)

 

 

1) 연표 - 9

내용(자치통감 요약)

880

이국창 이극용 부자 도주(사타족의 난 진압).

사타족 이극용은 웅무군(雄武軍)에서 회군, 고문집을 삭주에서 치니 노룡절도사 이가거가

한현소를 파견하여 약아령(藥兒嶺)에서 이극용군을 대파, 7천여 명을 죽이고, 이진충· 정회신 모두 전사함. 이극용이 웅무군 경계에서 다시 노룡군()에 패배, 전사 1.

이국창은 울주(蔚州)에서 이탁· 토욕혼 혁련탁에 패하여, 사타군이 모두 무너짐

이국창·이극용 부자(父子). 사타 종족들과 북쪽 달단(達靼.타타르)로 도주(7)

달단(達靼)은 말갈(靺羯)의 별부로 하투지역 음산(陰山)에 살았다:

사타족의 난 진압.

공을 세운 토욕혼의 혁련탁과 백의성, 살갈의 미해만에게 벼슬을 주고 노룡절도사 이가거에게 벼슬을 덧붙여 주었다.

 

사타족의 난 토벌에 징발된 여주(汝州) 군사 5. 돌아가며 낙양(洛陽) 약탈하며 지나감

(9)

천평절도사 조전정이 6천 군()으로 황소의 15만 군()과 싸워 잘 싸웠지만 중과부족으로

물러나 사상(泗上)에 주둔하였는데 구원군()이 없어 패배함.(9)

 

서주 군사 3. 은수(溵水)로 파견가다가, 허창(許昌)에서 난동,

역시 은수로 파견가던 충무군() 대장 주급의 습격에 거의 몰살됨

감화절도사 설능 혼란 중에 피살. 그 소식들은 은수(溵水) 주둔군() 모두 흩어져버림

이렇게 되자 황소는 회수(淮水)를 건넜고 약탈하지 않고 오직 병력만 늘림(9)

 

오사태를 다시 진무절도사로 삼고, 제갈성을 하수절도사로 삼았다.(10)

황소는 신주(申州)를 함락하고 영(), (), (), () ()까지 진격(10)

떼도적들이 풍주(澧州)를 함락시키고 자사 이순과 판관 황보전을 죽였다.(10).

 

하중(河中)도우후 왕중영, 반란(11)

반란했다가 투항한 숙주(宿州)자사 유한굉은 상이 야박하다고 원망하자

당 조정은 절동(浙東)관찰사로 삼았다.(114)

하동절도사 정종당의 군사를 하수절도사 제갈상과 대주자사 주매에게 주어 남쪽으로

황소를 토벌케 함.

대북도통 이탁을 하양절도사로 삼았다.(115)

 

황소가 회하를 건너려고 할 때 황소에게 천평절도사의 직책을 주고 그가 진에 도착하기를 기다려 토벌하자고 재상 두로진이 건의 했으나 재상 노휴가 반대하였다. 그러나 회북에서 계속 급하다는 상황을 알리니 노휴가 아프다고 하면서 나오지 않자 장안은 크게 두려워하였다.

 

낙양에서 보고하기를 황소가 여주(汝州) 경계에 들어왔다고 하였다.(1110).

낙양(洛陽)의 여정파절제치도지휘사 제극양이 보고하기를 황소가 스스로 천보대장군이라

부르며 장차 낙양에 이어 장안에 들어가겠다고 하였다고 하였다.

 

이를 당 희종이 논의하게 하자 두로전과 최항이 관내에 있는 여러 진과 신책군을 발동하여 동관을 지키게 하라고 청하였다.

당 희종이 재상들을 마주하고 눈물을 흘렸다(12)

환관 전령자가 금군을 동원하고 자신을 지휘자로 삼아달라고 하자 당 희종은 반대하였고

전령자가 안록산의 난 때 당 현종이 촉으로 피난 갔다고 하자

최항이 말하였다. “안록산의 무리는 겨우 5만 명이었으니 이를 황소에 비하는 것은 말할 거리가 안 됩니다.” 두로전이 말하였다. “(안록산의 난 때) 가서한은 15만 무리를 가지고도 동관을 지킬수 없었는데 지금 황소의 무리는 60만이고 동관에는 가서한 만큼의 군사도 없습니다.” 그러니 전령자의 건의를 받아달라고 말함. 이에 당 희종은 신책군을 파견하기로 하고 전령자 등을 군 지휘관으로 임명함.

 

낙양의 제극양이 보고하기를 황소는 이미 낙양 경계에 들어왔으며, 자신은 물러나 동관(潼關)을 지키면서 관문밖에 영채를 설치하고 있는데, 어려우니 물자와 양식 원군을 파견해 달라고 하였다. 이에 당 희종은 신책군(금군) 28백을 파견 결정(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