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책봉의 진실(16)

상 상 2016. 11. 28. 18:56

책봉의 진실(16)

 

이러한 연표를 보면 7957월부터 802년까지 당과 토번은 밀고 밀리는 접전을 벌리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다가 803년에 이르러 다시 화해하기 시작하여 80510월에는 서로 문상사절을 주고 받는 단계에 이르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 뒤를 이어 자치통감에 의하면 80511월에, 회홀의 회신가한(8대 가한)이 죽자 그 후사를 책명하여 등리(騰里)야합구록비가가한(9대 가한)이라고 한 것이다.

 

이중에서, 7957월부터 802년까지 당이 토번과 밀고 밀리는 접전을 벌린 것은 790년 당이 토번에게 북정도호부를 빼앗기고 당나라가 전선을 자기나라의 9시 방향에서부터 7시 방향까지 확대하면서 토번과 전쟁을 벌린 연장선에 있었던 전쟁이며 803년부터는 갑자기 사신을 주고받는 화친으로 돌아선다. 이것은 803년에 가서야 당이 13년을 전쟁하였지만 토번에게 이길 수 없다는 것이 드러나자 이제 토번과 화평으로 돌아서기 시작한 것이며 80510월에는 서로 문상사절을 주고받는 단계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렇게 당이 토번을 이길 수 없음이 확정되자 80511월 회홀을 다시한번 자기들의 동맹으로 유지시킴으로써 토번에 대비한 것이다.

 

그러나 이때는 회홀도 토번에게 한번 대패한 뒤이기 때문에 회홀과의 동맹은 그 중요성이 떨어지게 되었고 그래서 구당서 회홀전에는 회홀의 등리가한(9대 가한)을 책명했다는 기록이 없고 신당서 회홀전과 자치통감에는 그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책명 역시 종속관계 내지 지배통치 및 상하관계를 뜻하는 것이 아님이 명백하다.

당이 회홀을 복속시킨 것도 아니고 회홀을 토번에 대항하기 위해 동맹으로 끌어들인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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