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말뫼의 눈물' 13년 후 한국의 눈물로

상 상 2016. 4. 18. 17:52

[중앙일보]입력 2016.04.18 01:57 수정 2016.04.18 14:15 | 종합 1면 지면보기

 

파산한 스웨덴 조선소, 현대중에 크레인 1달러에 팔았는데

요즘엔 한국 조선·철강·화학 일감 없어 공장 불 꺼져

골든타임 반년뿐 정부는 구조개혁을, 과반 야당도 나서야

 

울산 현대중공업 선박 건조장 한복판엔 거대한 골리앗 크레인이 서 있다. 높이 128m, 중량 7560t인 이 크레인의 출생지는 한국이 아니다. 2003년 스웨덴 말뫼시의 조선소에서 단돈 1달러에 울산으로 팔려왔다. 1980년대까지 세계 조선산업을 호령하던 스웨덴이 신흥강자한국에 무릎을 꿇으면서다. 한국으로 실려 가던 날, 수많은 말뫼 시민들이 조선소로 몰려와 그 장면을 눈물로 지켜봤다. 이를 중계하던 현지 방송에선 장송곡이 흘러나왔다.

 

13년이 흐른 이달 1. 현대중공업은 울산 온산 2공장의 가동을 중단했다. 주문이 뚝 끊기면서 해양플랜트 블록을 만들던 공장을 돌리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20에 달하는 공장은 적치장으로 쓰기로 했다. 최길선 현대중공업 회장은 도크가 빈다는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 눈앞에 닥쳤다고 말했다.

 

전국이 선거 열기에 휩싸였던 기간에도 대한민국 대표 산업단지의 불은 하나둘 꺼졌다. 이미 3~4년 전부터 세계적인 공급 과잉에 주력 산업 전반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경쟁력 회복을 위한 구조조정과 산업 재편은 선거 바람에 뒷전으로 밀렸다. 수술대에 올랐어야 할 기업이 계속 수혈을 받으며 버티니 정작 신성장 동력을 키울 여력만 갉아먹었다. 그사이 2%대 저()성장이 고착화했고 청년 일자리난은 가중되고 있다. 경제난은 이번 총선에서 여당의 참패를 불러온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선거는 끝났지만 상황은 오히려 어려워졌다. 16년 만의 여소야대에 정치적 불확실성은 커졌다. 선거 과정에서 여당에서조차 구조조정을 못하게 하겠다포퓰리즘발언이 난무했다. 급기야 국제 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최근 구조조정이 지연돼 부실채권이 늘 수 있다며 국내 은행의 신용등급을 강등시켰다.

 

한국판 말뫼의 눈물이 현실화할 조짐은 전국으로 나타나고 있다. 충남 당진의 동부제철 열연공장은 2014년 말부터 가동이 중단됐다. 1조원이 투입된 이 공장의 세계 최대 규모 전기로는 팔릴 날만 기다리고 있다. 현대상선이 갖고 있던 부산 신항만의 노른자위부두(2-2터미널)의 운영권은 지난달 싱가포르항만공사(PSA)로 넘어갔다. 자금난에 처한 현대상선이 지분을 팔았기 때문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해외 업체들이 합병과 초대형 선박에 대한 투자로 물동량 감소에 대응하는 사이 국내 해운사와 정부는 손 놓고 있었던 결과다.

 

조선·철강·석유화학·해운 등 수출 한국을 이끌던 산업이 한꺼번에 응급실로 몰려들고 있지만 수술을 맡아야 할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역시 중환자 상태다. 지난 수년간 좀비 기업을 살리는 데 실탄을 소진했기 때문이다. 대우조선의 부실 여파에 산업은행은 지난해 18951억원이라는 외환위기 이후 최대 적자를 기록했다. 산업은행의 한 관계자는 주력 산업의 문제는 전임 정권 후반기부터 표면화했지만 정치적 부담에 구조조정을 미루고, 채권단과 공기업의 낙하산사장들은 자신의 임기 동안 부실을 덮는 데만 급급했던 게 사태를 악화시켰다고 토로했다. .

 

[출처: 중앙일보] '말뫼의 눈물' 13년 후 한국의 눈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