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와 당의 관계-182,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26), 돌궐족 묵철의 침공-20)
차례
가. 관련 사료 1. 구당서 토번전(상) 2. 구당서 토번전(하) 3. 신당서 토번전 4. 구당서 돌궐전 5. 신당서 돌궐전 6. 구당서 측천본기 7. 신당서 측천본기 8. 구당서 거란전 9. 신당서 거란전 10. 구당서 발해전 11. 신당서 발해전 12. 구당서 숙종본기 13. 구당서 회홀전 14. 신당서 회골전 15. 구당서 남조전 16. 신당서 남조전 17. 구당서 신라전 18. 신당서 신라전 19. 삼국사기 신라본기
나.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 1. 이진충의 난 이전 2. 이진충의 난 3. 돌궐족 묵철의 침공 4. 안사의 난 5. 토번의 침공 6. 토번의 침공 이후 7. 민란의 발생과 남조의 침공 8. 황소의 난 9. 절도사의 시대 10. 당의 멸망
다. 통일신라와 당 1. 통일신라 이후의 당나라 약사 2. 신구당서에 의한 통일신라와 당 3.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의한 통일신라와 당 4. 사료를 통합해서 본 통일신라와 당의 관계
나.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 1. 이진충의 난 이전 2. 이진충의 난 3. 돌궐족 묵철의 침공 1) 연표 2) 연표 분석 및 해설 3) 요약
2) 연표 분석 및 해설: ⇒ 이진충의 난이 미친 파장 (1) 연도별 분석 및 해설(698년 ~ 755년) (2) 나라별 분석 및 해설
(1) 연도별 분석 및 해설-10
그건 그렇고 서쪽 토번에서는
741년 봄에 금성공주가 사망하자, 토번에서 사신을 보내 부고를 전하고 또 화의를 청하였으나 당 현종은 이를 거부하였다.
이렇게 되자 토번이 정말 본때를 보인다.
그해 6월 토번의 40만 대군이 승풍보를 공격하여 하원군에 이른 뒤 서쪽으로 장녕교로 들어가 안인군에 이르고, 12월에 토번이 다시 석보성을 습격하여 함락시킨다. 이렇게 되니 당 현종은
742년 황보유명과 왕충사를 [차례로] 농우절도에 임명했는데 모두 토번을 이기지 못했다.
한편 돌궐은 마지막을 향하여 가는데
등리가한이 나이가 어려 그의 어미 파복과 소신 어사달간이 정을 통하면서 결국 정치까지 간섭함에 따라 여러 부락이 화합하지 못하게 되었다. 등리가한의 숙부들이 동서의 군대를 나누어 갖고 있었는데, 그들을 좌살(左殺) 과 우살(右殺)이라고 하고, 병사 중에 최정예가 모두 속해 있었다. 등리가한과 어미가 서살(西殺: 우살)을 꾀어 죽이고 그 병사들을 빼앗자 좌살이 두려워 바로 등리가한을 공격해 죽여 버렸다.
좌살은 판궐특륵 이었는데, 마침내 비가가한의 다른 아들을 추대하나 얼마 있다가 그마저 골돌록엽호에게 살해되었고, 그의 동생을 세웠으나 바로 골돌록엽호가 다시 살해하고 스스로 가한이 되었다. <신당서 돌궐전>
8월에 항복한 돌궐 사람들이 서울(장안)에 오자 황제가 먼저 [그들을] 태묘(太廟)에 고하게 한 다음에 전정(殿庭)에서 만났고 화악루에 행차해 잔치를 열어주며 황제가 부(賦)와 시(詩)를 지어 그 일을 기록하게 했다. <구당서 돌궐전: 신구당서가 돌궐의 멸망 시기에 대하여 서로 다르게 기록하고 있음>
이어서, 돌궐은 계속하여 마지막을 향하여 가는데.......
743년 그(골돌록엽호)의 큰 부락인 회흘, 갈라록, 발실밀이 함께 일어나 [골돌록]엽호를 공격해 죽이고 발실밀의 추장을 힐질이시가한으로 삼았고, 이에 회흘과 갈라록이 스스로 좌엽호(左葉護)와 우엽호(右葉護)가 되었으며, 또한 사자를 보내 당나라에 알렸다.
나라 사람들이 판궐특륵의 아들을 오소미시가한으로 삼고, 그의 아들 갈랍치를 서살로 삼았다. 당 현종이 사자로 하여금 오소미시가한을 회유해 내부하게 했으나 오소[미시가한]이 듣지 않고 그 부하들 역시 따르지 않았는데, 발실밀 등 세 부락이 모두 오소미시[가한]을 공격하자 오소미시가한이 남쪽으로 도망갔다.(신당서 돌궐전)
(오소미시 가한이 달아난 사건을 구당서는 740년이라고 하고 신당서는 743년이라고 하는 등 서로 시간이 맞지 않습니다) 계속하여
744년 발실밀 등이 오소미시가한을 죽이고 그 머리를 경사(장안)에 전하자 태묘에 바쳤다. 그의 동생 백미특륵 골롱복이 즉위해 백미가한(白眉可汗)이 되었다. 이에 돌궐이 크게 어지러워져 나라 사람들이 발실밀의 추장을 추대해 가한으로 삼았고, 당 현종의 명령으로 삭방절도사가 그 혼란을 기회로 병력을 일으켜 살하내산에서 맞닥뜨려 그 좌부의 아파달간의 11부락을 공격해 격파했으나 다만 그 우부만을 격파하지 못하였는데, 회흘, 갈라록이 발실밀 가한을 죽이고 회흘의 골력배라를 받들어 그 나라를 안정시키니 이가 골돌록비가궐가한이었다.
(이렇게 남의 나라가 혼란에 빠지자 당나라는 그것을 기회로 남의 나라에 쳐들어 가 남의 나라를 아주 멸망시키려고 합니다. 이것이 중국인들의 본성입니다. 힘이 없을 때는 남의 발바닥이라도 핥다가 힘이 조금 생기고 상대방이 어렵게 되면 그 상대방을 넘어뜨리고 칼을 꽂는 게 중국인입니다.)
그리고 이제 돌궐은 마지막을 맞이한다.....
745년 회흘의 골력배라가 백미가한을 죽여 그의 머리를 장안에 전하니 비가가한의 아내 골돌록파복 가돈이 백성을 이끌고 스스로 귀부한다.
이렇게 해서 돌궐은 멸망하고 만다. 돌궐은 북위 대통연간(552년)에 나라를 세웠다가 745년에 이르러 멸망하게 된 것이다.(187년간 존속)
☆돌궐의 멸망 시기에 대하여 구당서 돌궐전은 742년이라고 기록하고 있고 신당서 돌궐전은 745년이라고 기록하고 있음.
중국이 가장 무서워하던 돌궐이 무너지자 이후부터 755년 안록산이 난을 일으킬 때까지 10년간 당나라는 제2의 황금기이자 마지막 황금기가 찾아온다. (이제부터는 서쪽의 토번과 북동족의 거란, 발해, 남쪽의 남조 만을 살펴보면 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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