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고구려의 건국시기(년도) 문제

상 상 2011. 4. 29. 23:20

고구려의 건국년도를 밝히는 것은 우리 고대사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이 고구려 건국년대가 밝혀지면

 

1) 고구려와 고조선(위만조선) 간의 관계,

2) 부여의 건국연대,

3) 신조선(부여)의 존재와 불조선, 말조선의 존재

4) 한사군의 위치 등을 알수있는 명백한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고구려가 언제부터 있었는지, 언제 건국하였는지를 알수 있는 최초의 문건은 삼국지이다.

(그러나 정확한 년도는 알 수 없게 되어있다)

삼국지 동이전을 보면 다음과 같이 되어있다.

 

 

1. 삼국지 동이전(고구려전 서문 - 출처: 중국정사 조선전)

『한(漢)나라 때에는 북과 피리와 악공(樂工)을 하사하였으며,

항상 현도군(玄菟郡)에 나아가 [한나라의] 조복(朝服)과 의책(衣幘)을 받아갔는데,

[현도군의] 고구려령(高句麗令)이 그에 따른 문서를 관장하였다.

그 뒤에 차츰 교만 방자해져서 다시는 [현도(玄菟)]군(郡)에 오지 않았다.』

 

 

보는 바와 같이‘한나라 때’라고만 되어있어 한나라 어느 때인지 알수가 없다.

이보다 더 정확하게 알수 있는 문건은 후한서이다

후한서 동이전을 보면 다음과 같이 되어있다.

 

 

2) 후한서 동이전(고구려전 서문 - 출처: 중국정사 조선전)

[한(漢)] 무제(武帝)는 조선(朝鮮)을 멸망시키고 고구려를 현(縣)으로 만들어서

현도(玄菟)에 속하게 하였으며, 북(鼓)과 관악기(管樂器)와 악공(樂工)을 하사하였다.

 

 

이와같이 후한서를 보면 ‘한나라 때’란 ‘조선(고조선-위만조선)을 멸망시킨 때’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조선(고조선-위만조선)을 멸망시킨 때’인 서기전 108년 당시에

고구려(高句驪)가 이미 실재(實在)하고 있었음을 알수 있으며,

나아가 고구려와 고조선(위만조선)은 같은 시대에 같이 있었음(공존하고 있었음)을 알수있다.

 

그러나 후한서와 삼국지보다 고구려의 존재시기와 건국시기를 더 상세하고 정확하게 알수있는 문건이 바로

단재선생이 가르쳐 주신 북사(北史)이다.

북사를 보면 다음과 같이 되어있다.

 

 

3) 북사(北史) 열전(列傳, 고구려전- 출처: 중국정사 조선전)

『주몽(朱蒙)이 죽고 아들 여율(如栗)이 즉위하였다.

여율(如栗)이 죽고 아들 막래(莫來)가 즉위하여서 부여(夫餘)를 병합하였다.

한 무제 원봉(漢 武帝 元封) 4년(B.C. 107)에는 조선(朝鮮)을 멸망시켜 현도군(玄菟郡)을 설치하고,

고구려(高句麗)를 현(縣)으로 삼아 현도군(玄菟郡)에 예속시켰다.

한(漢)나라 때에 의책(衣幘)·조복(朝服)·고취(鼓吹)를 하사하면 항상 현도군(玄菟郡)을

통하여 받았다. 그 뒤 점차 교만하여져 다시는 [현도(玄菟)]군(郡)에 오지 아니하고,

동쪽지경에다 작은 성(城)을 쌓아 놓고 [하사품을] 받았으니, 뒷날 이 성(城)의 이름을

책구루(幘溝漊)라 하였다. 책구(幘溝)란 [고]구려말로 성(城)이라는 뜻이다.』

 

 

위에 있는 북사를 보면, 고구려가 언제부터 있었고 언제 건국했는지를 보다 명확하게 알수 있다.

북사에 있는 주요 사건을 시간순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주몽이 죽고, (주몽의) 아들 여율이 즉위하고,

여율이 죽고 (여율의) 아들 막래가 즉위하여

부여를 병합하였다.

그 다음,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름)

한 무제 원봉(漢 武帝 元封) 4년(B.C. 107)에 (조선을 멸망시켜) 현도군(玄菟郡)을 설치하고,

고구려(高句麗)를 현(縣)으로 삼아 현도군(玄菟郡)에 예속시켰다.

 

 

이 이야기를 거꾸로 정리하면,

 

① 서기전 107년에 현도군을 설치하고 고구려를 현으로 삼았다.

② 서기전 108년에 조선(고조선-위만조선)을 멸망시켰다.

③ (얼마인지 모르는 시간이 지났다?)

④ 막래가 부여를 병합하였다.

⑤ 막래가 즉위하였다.(여율의 아들)

⑥ 여율이 죽었다.

⑦ 여율이 즉위하였다.(주몽의 아들)

⑧ 주몽이 죽었다.

⑨ (주몽이 즉위하였다 - 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하였다)

 

 

위에있는 이야기를 삼국사기로 보면

 

주몽의 아들, 여율은 유리왕(2대 왕)이고,

여율(유리왕)의 아들 막래는 대무신왕(3대 왕)이다.

그리고 대무신왕 때 부여를 병합하였다.

따라서 막래는 대무신왕이다.

 

 

그 다음,

위 ④⑤번은 삼국사기를 보면 대무신왕 5년 때 일어난 일이며,

⑥⑦번은 유리왕의 재위기간이고,

⑧⑨번은 주몽의 재위기간이다.

 

 

이러한 사실에 따라 위 사건을 시간에 따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서기전 108년

+(얼마인지 모르는 시간)

+대무신왕 5년

+유리왕 재위기간 37년

+주몽 재위기간 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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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년도를 계산하여 보면

108 + 5 + 37 + 18 = 168 + 얼마인지 모르는 시간

 

즉, 적어도 서기전 168년에 고구려가 건국하였다.

다시말해서 고구려 건국은 최소한 168년 이전이다.

 

 

이 말은 고구려 건국은 한사군이 설치되기 최소한 60년 전에는 건국되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단재선생이 쓰신 조선상고사를 보면,

『고구려 건국이 사군 설치보다 약 백 몇십년 전이 될 것이 의심없음』이라고 되어있고,

보다 구체적으로

『기원전 190 년경의 전후 수십 년 동안을 동부여 ·북부여와 고구려의 분립한 시기』라고 되어 있으므로,

얼마인지 모르는 시간이 최소 50년 정도가 된다.

 

 

즉, 본인이 말한 고구려 건국, 서기전 168년은 최소한 50년 정도가 틀렸다.

그리고 본인이 생각하기에 단재선생께서는 고구려의 건국을 서기전 218년 이전부터

서기전 168년 사이라고 생각하시는 게 아닌가 하고 짐작해 본다.

 

 

또한,

고구려 건국이 서기전 168년이라고 한다면 ‘얼마인지 모르는 시간’을 0으로 본다는 말이며,

그것은 고조선(위만조선)의 멸망과 고구려의 부여 병합이 같은 해에 일어났다는 말이다.

(이것이 맞는 것인지, 틀리는 것인지는 사서의 기록이 없어 모름 - 본인이 알기에는)

 

 

아무튼 삼국지, 후한서, 북사(北史)에 이르는 기록의 흐름,

즉, 중국정사(中國正史)라는 증거에 의하면,

고구려의 건국은 아무리 늦게 잡아도 서기전 168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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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누구든지 고구려 건국년대가 기원전 218년인지, 기원전 168년인지,

아니면 그 사이 어느 년도인지, 그것도 아닌 기원전 218년 이전 그 어떤 년도인지를

밝혀내면 우리 고대사를 명백히 알아내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 그리고 삼국지, 후한서, 북사에 있는 고구려를 현으로 만들어 현도군에 예속시켰다는 말은

다 아는 바와 같이 사실이 아니다.(고구려의 존재시기와 건국년도를 아는데 증거가 될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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