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 삼조선의 변천, 연대(1)

상 상 2011. 4. 15. 21:21

삼조선의 변천에 대하여 조선상고사와 그밖의 책을 참고하여 연대를 말해보면 다음과 같다

 

< 기원전 4세기(기원전 323년 이후) 경, >

단군조선이 기자의 후예, 조선후가 왕이 됨으로써 삼조선(신조선, 불조선, 말조선)으로 분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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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거: 삼국지 동이전(한전, 위략) - 연나라에서 처음 왕을 칭한 시기 = 조선후가 왕을 칭한 시기

 

삼국지 동이전(한전, 위략)

『옛 기자(箕子)의 후예인 조선후(朝鮮侯)는 주(周)나라가 쇠약해지자,

연(燕)나라가 스스로 높여 왕(王)이라 칭하고 동(東)쪽으로 침략하려는 것을 보고,

조선후(朝鮮侯)도 역시 스스로 왕호(王號)를 칭하고 군사를 일으켜 연(燕)나라를

역습(逆擊)하여 주(周) 왕실(王室)을 받들려 하였는데,

그의 대부(大夫) 예(禮)가 간(諫)하므로 중지하였다.』

 

⇒ 조선후가 왕을 칭한 시기 = 연나라에서 처음 왕을 칭한 시기

 

 

사기에 의하면 주(周) 신정왕(愼靚王) 46년이다.  이는 기원전 323년 이다.

 

불조선 왕이  이때(기원전 323년)에 왕을 칭함으로써 단군조선이 삼조선으로 분립되었다.(조선상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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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원전 200년 경, >

신조선(부여)은 동부여와 북부여로 분립되었으며,

불조선에서는 기준이 왕이 되었고.(준왕)

말조선은 기원전 200년 이후 어느 해에 말한으로 나라 이름을 고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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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거:

1. 신조선(부여)가 동부여와 북부여로 분립되었다는 근거:

 

1) 삼국사기 고구려 동명성왕 본기

『재상 아란불(阿蘭弗)이 말하였다.

“일전에 하느님이 내게 내려와 ‘장차 내 자손으로 하여금 이곳에 나라를 세우게 할 것이니 너희는 피하거라.

동쪽 바닷가에 가섭원(迦葉原)이라는 땅이 있는데,

토양이 비옥하여 오곡(五穀)이 잘 자라니 도읍할 만하다.’고 하였습니다.”

아란불이 마침내 왕에게 권하여 그곳으로 도읍을 옮겨 나라 이름을 동부여(東扶餘)라고 하였다.

 

옛 도읍지에는 어디로부터 왔는지는 알 수 없으나

천제(天帝)의 아들 해모수(解慕漱)라고 자칭하는 사람이 와서 도읍하였다.』

 

 

2) 기원전 200년경의 근거

① 고구려 건국 시기에 대하여: 북사 열전(고구려전)

 

『주몽(朱蒙)이 죽고 아들 여율(如栗)이 즉위하였다.

여율(如栗)이 죽고 아들 막래(莫來)가 즉위하여서 부여(夫餘)를 병합하였다.

한무제(漢 武帝) 원봉(元封) 4년(B.C. 107)에는 조선(朝鮮)을 멸망시켜 현도군(玄菟郡)을 설치하고,

고구려(高句麗)을 현(縣)으로 삼아 현도군(玄菟郡)에 예속시켰다. 』

 

⇒ 주요내용:

주몽의 손자가 부여를 병합하였다는 것,

조선을 멸망시키고 기원전 107년에 현도군을 설치했다는 것, 

고구려를 현으로 삼았다는 것,

 

따라서 주몽의 손자가 부여를 병합한 일이 있은 후, 고조선을 멸망시킨 일이 있었으며

고조선을 멸망시킨 다음에 고구려를 현으로 삼았다는 이야기

 

이것을 거꾸로 말하면,

고조선을 멸망시킨 시점 이전에

 

주몽의 손자(막래)가 부여를 병합한 일이 있었고,

그 전에 막래의 아버지가 있었으며(여율), 여율의 아버지 주몽이 있었고,

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한 일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것을 순서에 따라 역산 하면 다음과 같다.

고조선 멸망(기원전 108년)

+ 막래(삼국사기의 대무신왕)가 부여를 병합한 때: 대무신왕 5년

+ 막래의 아버지(여율) 재위 기간(삼국사기의 유리왕): 37년

+ 주몽의 재위기간: 18년

위에 있는 년도를 계산해보면...

108 + 5 + 37 + 18 = 168

즉, 적어도 기원전 168년에 고구려가 건국하였다.

다시말해서 고구려 건국은 기원전 168년 이전이다.(최소한)

 

 

② 그 이전 부여의 역사를 보면,

 

부여왕 해부루가 늙도록 아들이 없어 금와(金蛙)를 거두어 길렀고,

그가 장성하자 태자로 삼았으며, 동쪽으로 나라를 옮긴 일이 있은 다음,

해부루가 죽자 금와는 뒤를 이어 즉위하였다. 금와가 왕이 된 뒤에 주몽의 어머니 유화를 만났고,

주몽의 나이가 일곱 살이었을 때, 금와왕은 이미 아들이 일곱이 있었으며 맏아들 이름은 대소였다.

그리고 주몽의 나이 22세때 고구려를 건국하였다.(이상, 삼국사기 동명왕 본기 내용)

 

이러한 사실에 따라, 부여가 동부여와 북부여로 나누어진 시기를 역산, 추정해 보면 다음과 같다.

 

고구려 건국시 주몽의 나이: 22세

+ 유화를 만나기 전 금와의 재위 기간: ? (참고: 주몽의 나이 7세때 이미 아들이 7명인 금와왕)

+ 나라를 동쪽으로 옮기고 해부루가 살아 있었던 기간: ?

위 연도를 계산해보면... 

22 + (적어도 7년 이상?) + 몇년 = 9년 + 몇년

 

(*7년 이상: 주몽이 7세때 이미 아들만 일곱이 있는 금와왕임을 감안한 추정치)

 

③ 따라서 부여가 동부여와 북부여로 나누어진 때는

기원전 168년 이전(고구려 건국) + 22 + 7 + 몇 년 이다.

즉, 기원전 197년 + 몇 년이 다.

그러므로 기원전 200년 경이라고 말할 수 있고, 단재선생의 말씀은 옳다고 할 수 있다.

 

 

2. 부여가 조선(고조선)과 분리되어 같은 시대에 있었다는 근거

 

1) 사기 화식열전 연나라조

『연(燕)나라는 발해(渤海)와 갈석산(碣石山) 사이에 있는 큰 고을인데,

.........(중략)...............

북쪽으로는 오환(烏桓)․ 부여(夫餘)와 이웃하고 있고,

동쪽으로는 예맥(穢貊)․ 조선․ 진번에서 이익을 독점하고 있다』

 

 

위 기록을 보면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있었던 연나라 때

부여와 고조선이 있었음을 알수 있고,

부여와 고조선이 같은 시대에 병립하여 있었음을 알 수 있다.

 

2) 그때는 언제인가?

연나라는 주 무왕이 소공 석을 연에 봉함으로써 연나라가 시작되었지만

연대가 뚜렷한 것은 10대 ‘혜후’서부터이다. 이때가 기원전 864년이고

왕을 칭한 것은 38대 연왕 ‘쾌’이다.(기원전 323년)

그리고 연나라가 멸망한 것이 기원전 222년이다.

 

따라서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기원전 222년 전에 부여와 고조선은 분리되어 있었다.

즉, 기원전 200년 경에는 부여와 고조선은 병존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사기 화식열전을 통하여 확인하여 보면,

“기원전 200년 경, 신조선(부여)와 고조선(불조선)이 분립되었다”는

단재선생의 말씀이 맞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3. 기준이 왕이 되었다는 근거와 그때가 기원전 200년 경이라는 근거

 

1) 기준이 고조선(불조선) 왕이 되었다는 근거

① 후한서 동이전(예전)

『그 뒤 40여세를 지나 조선후 준(朝鮮侯 準)에 이르러 스스로 왕(王)이라 칭하였다.』

 

② 삼국지 동이전(한전)

『[조선(朝鮮)]후(侯) 준(準)이 참람되이 왕(王)이라 일컫다가 연(燕)나라에서

망명(亡命)한 위만(衛滿)의 공격을 받아 나라를 빼앗겼다.』

 

 

2) 기원전 200년 경의 근거

① 사기 조선열전

『연왕 노관(燕王 盧綰)이 [한(漢)을] 배반하고 흉노(匈奴)로 들어가자 만(滿)도 망명하였다.』

 

② 연왕 노관이 흉노로 도망간 때 = 위만 망명한 때

:기원전 195년 4월(근거, 사기 고조본기 12년 4월조)

 

⇒ 기원전 195년에 기준은 고조선(불조선) 왕이었다.(준왕)

 

따라서 준이 왕으로 되고난 다음에 (시간이 경과하고) 위만이 망명하였으므로

준이 왕으로 된 것은 기원전 200년 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여기서도 “고조선(불조선)에서는 기준이 왕(준왕)이 되었다”는

단제선생의 말씀이 맞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 불조선이 중국에 가까우므로 중국사람들은 불조선만 조선으로 알고 사서에 기록하였다고 함(조선상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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