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통일신라와 당의 관계-118, 삼국사기 신라 본기 -7 (33대 성덕왕 본기- 3)

상 상 2015. 8. 7. 17:21

통일신라와 당의 관계-118, 삼국사기 신라 본기 -7 (33대 성덕왕 본기- 3)

 

차례

 

. 관련 사료

1. 구당서 토번전()

2. 구당서 토번전()

3. 신당서 토번전

4. 구당서 돌궐전

5. 신당서 돌궐전

6. 구당서 측천본기

7. 신당서 측천본기

8. 구당서 거란전

9. 신당서 거란전

10. 구당서 발해전

11. 신당서 발해전

12. 구당서 숙종본기

13. 구당서 회홀전

14. 신당서 회골전

15. 구당서 남조전

16. 신당서 남조전

17. 구당서 신라전

18. 신당서 신라전

19. 삼국사기 신라본기

 

.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

1. 이진충의 난 이전

2. 이진충의 난

3. 돌궐족 묵철의 침공

4. 안사의 난

5. 토번의 침공

6. 토번의 침공 이후

7. 민란의 발생과 남조의 침공

8. 황소의 난

9. 절도사의 시대

10. 당의 멸망

 

. 통일신라와 당

1. 통일신라 이후의 당나라 약사

2. 신구당서에 의한 통일신라와 당

3.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의한 통일신라와 당

4. 사료를 통합해서 본 통일신라와 당의 관계

 

 

. 관련 사료

19. 삼국사기 신라본기

 

19. 삼국사기 신라 본기의 출처:

1) 원 출처는 네이트(nate). 그러나 현재 네이트에 있는 삼국사기는 폐쇄되어 찾아볼 수 없음

2) 지금 삼국사기를 볼 수 있는 싸이트는 네이버로 원문과 함께 읽는 삼국사기

싸이트 주소( http://terms.naver.com/list.nhn?cid=49615&categoryId=49615 )

 

 

33대 성덕왕 본기- 3

19 (AD 720) : 봄 정월에 지진이 일어났다.

[번역문]

19(720) 봄 정월에 지진이 일어났다. 상대등 인품(仁品)이 죽었으므로 대아찬 배부(裵賦)를 상대등으로 삼았다. 3월에 이찬 순원(順元)의 딸을 맞아들여 왕비로 삼았다. 여름 4월에 큰 비가 내려 산 13곳이 무너졌고, 우박이 떨어져 벼 모를 상하였다. 5월에 관리에게 명하여 해골을 땅에 묻게 하였다. 완산주에서 흰 까치를 바쳤다. 6월에 왕비를 책봉하여 왕후로 삼았다. 가을 7월에 웅천주에서 흰 까치를 바쳤다. 누리가 곡식을 해쳤다. 중시 사공(思恭)이 관직에서 물러났으므로 파진찬 문림(文林)을 중시로 삼았다.

 

[원문]

十九年 春正月 地震 上大等仁品卒 大阿湌裴賦爲上大等 三月 納伊湌順元之女爲王妃 夏四月 大雨 山崩十三所 雨雹傷禾苗 五月 命有司埋骸骨 完山州進白鵲 六月 冊王妃爲王后 秋七月 熊川州獻白鵲 蝗蟲害穀 中侍思恭退 波珍湌文林爲中侍

 

20 (AD 721) : 7월에 하슬라 지역의 장정 2천 명을 징발

[번역문]

20(721) 가을 7월에 하슬라(何瑟羅) 지역의 장정[丁夫] 2천 명을 징발하여 북쪽 국경에 장성(長城)을 쌓았다. 겨울에 눈이 내리지 않았다.

 

[원문]

二十年 秋七月 徵何瑟羅道丁夫二千 築長城於北境 冬 無雪

 

21 (AD 722) : 정월에 문림이 죽었으므로 선종을 중시로

[번역문]

21(722) 봄 정월에 중시 문림이 죽었으므로 이찬 선종(宣宗)을 중시로 삼았다.

2월에 서울에 지진이 일어났다. 가을 8월에 처음으로 백성들에게 정전(丁田)을 지급하였다. 겨울 10월에 대나마 김인일(金仁壹)을 당나라에 보내 새해를 축하하고 아울러 토산물을 바쳤다. 모벌군성(毛伐郡城)을 쌓아 일본 도적들이 [노략질하는] 길을 막았다.

 

[원문]

二十一年 春正月 中侍文林卒 伊湌宣宗爲中侍 二月 京都地震 秋八月 始給百姓丁田 冬十月 遣大奈麻金仁壹入唐賀正 幷獻方物 築毛伐郡城 以遮日本賊路

 

22 (AD 723) :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미녀 두 사람을

[번역문]

22(723) 3월에 왕이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미녀 두 사람을 바쳤다.

한 명은 이름이 포정(抱貞)으로 아버지는 나마 천승(天承)이고, 또 한 명은 이름이 정완(貞菀)으로 그 아버지는 대사 충훈(忠訓)이었다. 그들에게 의복, 그릇, 노비, 수레와 말을 주어 예()를 갖추어 보냈더니, 현종(玄宗)이 말하였다. “너희들은 모두 왕의 고종자매로서 친척을 떠나고 고국을 이별하여 왔으니, 나는 차마 머물러 있으라고 하지 못하겠다.” 그리고는 후하게 선물을 주어 돌려 보냈다. 정완비(貞菀碑)에는 효성왕 6년 즉 천보(天寶) 원년에 당나라에 들어갔다.라고 하였는데, 어느 것이 옳은 지 알 수 없다. 여름 4월에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과하마(果下馬) 한 필과 우황, 인삼, 아름다운 다리[美髢], 조하주(朝霞紬), 어아주(魚牙紬), 매를 아로새긴 방울[鏤鷹鈴], 바다표범 가죽[海豹皮], 금은 등을 바쳤다. 아울러 글을 올려 말하였다. ()의 나라는 바다 구석진 데 있고 땅은 먼 모퉁이에 처하여, 본래부터 천주(泉州) 상인의 진귀한 보배도 없고 남만인(南蠻人)의 공물과 같은 재화도 없어서, 감히 토산물로써 황제의 관청을 더럽히고 노둔한 말로써 황제의 마구간을 더럽히게 되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하니 연나라의 돼지[燕豕]에 견줄 만한데 감히 초나라의 닭에 비기고자 하니 매우 부끄럽게 여겨져 떨리고 땀이 날뿐입니다.

 

지진이 일어났다.

 

[원문]

二十二年 春三月 王遣使入唐 獻美女二人 一名抱貞 父天承奈麻 一名貞菀 父忠訓大舍 給以衣着·器具·奴婢·車馬 備禮資遣之 玄宗曰 女皆王姑姊妹 違本屬別本國 朕不忍留厚賜還之 貞菀碑云 孝成六年 天寶元年歸唐未知孰是 夏四月 遣使入唐 獻果下馬一匹 牛黃 人蔘 美髢 朝霞紬 魚牙紬 鏤鷹鈴 海豹皮 金銀等 上表曰 臣鄕居海曲 地處遐陬 元無泉客之珍 本乏賨[주석13]人之貨 敢將方産之物 塵瀆[주석14]天官 駑蹇之才 滓穢龍廐 竊方燕豕 敢類楚雞 深覺靦顔 彌增戰汗地震

 

23 (AD 724) : 왕자 승경을 태자로 삼고, 크게 사면

[번역문]

23(724) 봄에 왕자 승경(承慶)을 태자로 삼고, 크게 사면하였다. 웅천주(熊川州)에서 상서로운 지초[瑞芝]를 바쳤다. 2월에 김무훈(金武勳)을 당나라에 보내 새해를 축하하였다. 무훈이 돌아올 때 현종이 글을 내렸다. ()은 매양 정삭(正朔)을 받들고 [나의] 궁궐에 조공하니, 마음 속에 품은 뜻이 매우 가상하오. 또 바친 여러 가지 물건들을 받고 보니 모두가 큰 바다의 파도를 건너고 거친 들판을 넘어 왔건만, 물건들이 모두 정결하고 아름다워 경의 마음을 충분히 드러내고 있소. 이제 경에게 비단 두루마기[錦袍]와 금띠 및 채색 비단과 흰 비단을 합하여 2천 필을 주어 정성스러운 예물에 답하노니, 물건이 이르거든 잘 받으시오.겨울 12월에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토산물을 바쳤다. 소덕왕비(炤德王妃)가 죽었다.

 

[원문]

二十三年 春 立王子承慶爲太子 大赦 熊川州進瑞芝 二月 遣金武勳入唐賀正 武勳還 玄宗降書曰 卿每承正朔 朝貢闕庭 言念所懷 深可嘉尙 又得所進雜物等 並踰越滄波 跋涉草莽 物旣精麗 深表卿心 今賜卿錦袍·金帶及綵素[주석15]共二千匹 以答誠獻 至宜領也冬十二月 遣使入唐獻方物 炤德王妃卒

 

24 (AD 725) : 정월에 흰 무지개가 나타났다.

[번역문]

24(725) 봄 정월에 흰 무지개가 나타났다. 3월에 눈이 내렸다. 여름 4월에 우박이 내렸다. 중시 선종(宣宗)이 관직에서 물러났으므로 이찬 윤충(允忠)을 중시로 삼았다. 겨울 10월에 땅이 흔들렸다.

 

[원문]

二十四年 春正月 白虹見 三月 雪 夏四月 雹 中侍宣宗退 伊湌允忠爲中侍 冬十月 地動[주석16]

 

25 (AD 726) : 김충신을 당나라에 보내 새해를 축하

[번역문]

25(726) 여름 4월에 김충신(金忠臣)을 당나라에 보내 새해를 축하하였다. 5월에 왕의 아우 김근질(金釿質)을 당나라에 보내 조공하니, 그에게 낭장(郞將) 관작을 주어 돌려 보냈다.

 

[원문]

二十五年 夏四月 遣金忠臣入唐賀正 五月 遣王弟金釿[주석17]質入唐朝貢 授郞將還之

 

26 (AD 727) : 봄 정월에 죄인들을 사면하였다.

[번역문]

26(727) 봄 정월에 죄인들을 사면하였다.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새해를 축하하였다. 여름 4월에 일길찬 위원(魏元)을 대아찬으로 삼고 급찬 대양(大讓)을 사찬으로 삼았다. 겨울 12월에 영창궁(永昌宮)을 수리하였다. 상대등 배부(裵賦)가 늙어 [관직에서 물러나기를] 청하였으나 허락하지 않고 안석과 지팡이를 내려 주었다.

 

[원문]

二十六年 春正月 赦罪人 遣使入唐賀正 夏四月 以一吉湌魏元爲大阿湌 級湌大讓爲沙湌 冬十二月 修永昌宮 上大等裴賦請老 不許 賜几杖

 

27 (AD 728) : 7월에 김사종을 당나라에 보내 토산물을

[번역문]

27(728) 가을 7월에 왕의 아우 김사종(金嗣宗)을 당나라에 보내 토산물을 바치고 아울러 글을 올려 자제들의 국학(國學) 입학을 청하니, 조칙으로 이를 허락하고 김사종에게 과의(果毅)의 관작을 주고 머물러 숙위하게 하였다. 상대등 배부가 늙어 [관직에서 물러나기를] 청하니 이를 허락하고, 이찬 사공(思恭)을 상대등으로 삼았다.

 

[원문]

二十七年 秋七月 遣王弟金嗣宗 入唐獻方物 兼表請子弟入國學 詔許之 授嗣宗果毅 仍留宿衛 上大等裴賦請老 從之 以伊湌思恭爲上大等

 

28 (AD 729) : 정월에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새해를 축하

[번역문]

28(729) 봄 정월에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새해를 축하하였다. 가을 9월에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다.

 

[원문]

二十八年 春正月 遣使入唐賀正 秋九月 遣使入唐朝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