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고구려와 중국의 관계-241, 당나라때-65 (15. 신구당서 고조본기 분석 및 해설-4)

상 상 2014. 6. 16. 17:11

고구려와 중국의 관계-241, 당나라때-65 (15. 신구당서 고조본기 분석 및 해설-4)

 

차례

 

1. 구당서 돌궐전

2. 구당서 고조본기

3. 구당서 태종본기()

4. 구당서 태종본기()

5. 구당서 고종본기()

6. 구당서 고종본기()

7. 구당서 동이열전

8.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당과의 관련부분)

9. 신당서 돌궐전

10. 신당서 고조본기

11. 신당서 태종본기

12. 신당서 고종본기

13. 신당서 동이열전

14. 신구당서 돌궐전 분석 및 해설

15. 신구당서 고조본기 분석 및 해설

16. 신구당서 태종본기 분석 및 해설

17. 신구당서 고종본기 분석 및 해설

18. 신구당서 동이열전 분석 및 해설

19.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분석 및 해설

20. 고구려와 당나라의 관계

 

 

15. 신구당서 고조본기 분석 및 해설-4

1) 고구려 백제 신라 왕 책봉기사

2) 책봉했다는 군()의 명칭문제

3) 기타

 

 

2) 책봉했다는 군()의 명칭문제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서부터 구당서 동이열전까지에서 또하나 알 수 있는 것은

중국 사람들의 한반도 지리에 대한 무지이다.

 

양서 동이전은 신라에 대해서 그 나라는 백제의 동남쪽 5천여리 밖에 있다고 해서

나는 내가 잘못 본 줄 알았다. 그래서 또 한번 보았더니 분명히 ‘5천여리라고 되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번역상 실수인 줄 았았다. 그래서 양서 동이전 원문을 찾아보았더니

其國在百濟東南五千餘里(그 나라는 백제 동남쪽 ‘5천여리에 있다): 양서 권54 열전 제48

제이(諸夷) 중 동이(東夷), 신라 조)고 되어 있어 틀림이 없었다.

이와같이 고대 중국인들은 한반도 지리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한반도 지리에 완전히 무식하다는 또다른 증거를 보자.

구당서 동이열전을 보면...

고구려 동쪽으로 바다를 건너 신라가 있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고구려에서 동쪽으로 바다를 건어야 신라가 있는가?

그러면 지금의 경상도가 만주와 한반도 북부의 동쪽 바다 건너에 있다는 말인데

그게 맞는 말인가?

그야말로 아주 웃기는 얘기로 한반도의 지리에 대하여 아주 모르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만주와 한반도 북부의 동쪽 바다 건너에 있는 것은 일본이다.)

 

또한 고구려의 남쪽으로 바다를 건너 백제가 있다는 말도 틀렸다.

이 말도 오늘날의 충청남도와 전라도가 고구려의 남쪽인 경기도와 바다를 건너야 있다는 말인데 경기도와 충청남도 사이에 무슨 바다가 있는가? (그대로 육지로 연결되어 있지...)

 

그리고 백제의 남쪽으로는 바다를 건너 왜국(倭國)이 있다고 하고

신라의 동쪽과 남쪽에는 큰 바다만 있다고 하니 이 설명대로라면

왜국(倭國)은 제주도에 있는 것이고 신라의 동쪽과 남쪽은 태평양으로 되어 있어야 한다.

이것 역시 한반도의 지리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이러한 것은 어디서 유래하는가 하면,

위서가 고구려 남쪽으로는 소해(小海)가 있다고 언급하고,

백제의 위치를 설명하면서 그 나라는 북쪽으로 고구려와 천여리가 떨어져 있고, 소해(小海)의 남쪽에 위치하였다.라고 언급하면서 부터이다.

 

그것을 구당서가 이어받은 것이다.

 

이러한 한반도에 대한 무지가 평양이 한나라 낙랑군이라는 거짓말을 낳은 하나의 요인이 되었다.

평양이 한나라 낙랑군이라고 거짓말 한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당태종의 고구려 침략 흉계 때문이다.

왜 그랬는가? 고구려 정벌을 신하와 백성 태자까지 전부 극력반대를 하니 고구려 정벌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하여 거짓말을 꾸민 것이다.

 

더 적극적으로 당태종은 고구려 백제 신라를 전부 먹어치우려고 한 것이다.

사전에 공작한 흉계이고 동북공정처럼 우선 먼저 말로 침략을 해놓은 것이다.

 

평양성을 언급한 것은 위서가 처음이고, 그것을 주서가 이어받아 언급을 하고 있으며

그것을 수서가 이어받고, 다시 구당서가 평양에 대한 언급 이어받았는데

갑자기 다른 사서에는 없는 평양이 ()나라 낙랑군의 옛 땅이다라고 쓰고 있다.

여기서도 또한번 당태종의 평양 침략 의도(고구려 침략 의도)를 엿볼수 있다.

 

참고로 양서, 진서(陳書), 북제서, 주서, 수서의 5개국 사서는 전부 당태종 때 만든 것이다.(구당서 고조본기)

또한 당나라 고조 실록은 당태종이 뜯어 고친 것이다.

 

평양을 낙랑군이라고 해놓고 신라도 낙랑군이라고 하니

신라는 지금의 경상도인데 그러면 평양에 경상도가 있다는 말인가,

경상도에 평양이 있다는 말인가

아니면 평양과 경상도가 같다는 말인가?

이렇게 평양이 낙랑군이라는 거짓말은 한눈에도 알 수 있는 거짓말이다.

 

이것은 한반도 지리에 대한 무식함과 고구려와 신라까지 침략하려는 당태종의 야욕에서

드러난 거짓말이지만 거짓말도 정도껏 해야지 이쯤되면 정신병자라고 해야 할 판이다.

 

구당서 본기에 있는 고구려가 당태종과 싸워서 이겼다는 사실과

당태종이 평양을 낙랑군이라고 거짓말을 한 것은

이후 우리역사에 매우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먼저, 고구려가 당태종을 이긴 것은 중국 동북방 민족들에게 고구려가 당태종보다도 더 강하다는 사실을 각인 시켰고

그 다음, 당태종이 평양을 낙랑군이라고 거짓말 한 것은 이후에 사기가 사실처럼 둔갑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첫째,

고구려가 당태종을 이김으로써 몽골족의 원나라는 우리민족을 엄청난 민족으로 우대하여 아세아 및 동부 유럽에서 유일하게 멸망시키지 않은 나라가 되었다.

 

그 다음에 만주족이 청나라를 건국해서도 자기들이 군사적으로 침략한 나라는 다 멸망시켰지만 조선은 유일하게 멸망시키지 않았다.

 

이것이 다 고구려가 당태종을 꺾은 결과이며 중국의 동북방민족들이 우리민족을 강대한 민족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둘째,

당태종이 평양을 낙랑군이라고 거짓말한 영향은 송나라에 이어 원나라에도 그대로 전해져

원사 지리지에서도 그대로 인용하고 있으며 고려시대에 송나라로부터 본격적으로 받아들인 유학의 영향으로 고려의 유학자도 그런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며(대표적으로 삼국사기를 지은 김부식) 원나라 시대에는 만권당 출신의 유학자들 역시 그렇게 인식하고 있었다.

이러한 풍조는 조선을 건국한 사대부들에게도 그대로 이어져 조선왕조실록 세종지리지나

동국여지승람, 아방강역고, 해동역사(지리지 부록분, 한치윤의 조카 한진서가 씀) 등에 그대로 나타나 있다. 이러한 것을 일제 식민사가들이 더욱 사실처럼 포장하고, 그 이후에 식민사관의 개들이 대한민국의 역사교수라는 가면을 쓰고 계속해서 사기를 치기에 이르렀다.

 

다시말해서 평양 낙랑설은 당태종 때부터 시작된 아주 뿌리 깊은 거짓말이라는 말이다.

 

아무튼 평양이 낙랑군이라고 한 거짓말은 한눈에도 알 수 있는 거짓말이지만

한편으로는 뿌리 깊은 고질병으로 굳어져 있는 면도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중국 정사 지리지를 가지고 자세히 다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