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와 중국의 관계-240, 당나라때-64 (15. 신구당서 고조본기 분석 및 해설-3) 차례 1. 구당서 돌궐전 2. 구당서 고조본기 3. 구당서 태종본기(상) 4. 구당서 태종본기(하) 5. 구당서 고종본기(상) 6. 구당서 고종본기(하) 7. 구당서 동이열전 8.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당과의 관련부분) 9. 신당서 돌궐전 10. 신당서 고조본기 11. 신당서 태종본기 12. 신당서 고종본기 13. 신당서 동이열전 14. 신구당서 돌궐전 분석 및 해설 15. 신구당서 고조본기 분석 및 해설 16. 신구당서 태종본기 분석 및 해설 17. 신구당서 고종본기 분석 및 해설 18. 신구당서 동이열전 분석 및 해설 19.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분석 및 해설 20. 고구려와 당나라의 관계 15. 신구당서 고조본기 분석 및 해설-3 1) 고구려 백제 신라 왕 책봉기사 2) 책봉했다는 군(郡)의 명칭문제 3) 기타 2) 책봉했다는 군(郡)의 명칭문제① 그 다음으로 생각해봐야 할 사항이 군(郡)의 이름이다. 구당서 고조본기에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백제왕 부여장을 대방군왕(帶方郡王)으로,신라왕 김진평을 낙랑군왕(樂浪郡王)으로 봉하였다.」 그러면 백제를 대방군((帶方郡)이라고 한 것이고 신라를 낙랑군(樂浪郡)이라고 한 것이다. 이러한 구당서 고조 본기의 기록은 낙랑군과 대방군의 문제를 풀어주는 매우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다. 그 당시 백제는 오늘날의 충청남도와 전라도에 있었고, 신라는 경상도에 있었다. 그러면 오늘날의 충청남도와 전라도가 대방군인가? 오늘날의 경상도가 낙랑군인가? 아주 완전히 틀렸다. 이런 것은 식민사관의 개들조차도 그런 주장을 안한다. 명백히 틀렸기 때문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당나라 사람들의 한반도 및 만주 지역에 대한 지리적 무식함이다. 한마디로 어디가 어디인지 모르고 있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고구려는 요동군이라고 하고 백제는 대방군, 신라는 낙랑군이라고 한 것은 어디서부터 유래 한 것일까? 역대 사서를 살펴보자. < 사기, 한서 > 조선열전이 있고, 고구려전, 백제전, 신라전은 없음. < 삼국지 위서 동이전> 나라 | 내 용 | 고구려 | 고구려는 요동의 동쪽 천리 밖에 있다. 남쪽은 조선· 예맥과, 동쪽은 옥저와, 북쪽은 부여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 | 백제전과 신라전이 없음 |
< 후한서 동이전> 나라 | 내 용 | 고구려 | 고구려는 요동의 동쪽 천리 밖에 있다. 남쪽은 조선과 예맥, 동쪽은 옥저, 북쪽은 부여와 접경하여 있다. | 백제전과 신라전이 없음 |
<진서(晋書) 사이전(四夷傳) 중 동이> : 고구려, 백제, 신라가 없음(마한과 진한만 있음) | 내 용 | ※진서 (晋書) 재기 모용준 | 진서 권 110, 재기 제10 모용준(晉書卷一百十, 載記第十 慕容儁) 모용준이 쇠(釗: 고구려 제16대 고국원왕)를 영주제군사、정동대장군、영주자사로 삼고,낙랑공에 봉하였으며,왕은 예전과 같이 하였다. (高句麗王釗遣使謝恩,貢其方物。儁以釗為營州諸軍事、征東大將軍、營州刺史,封樂浪公,王如故) |
< 위서 열전 > 나라 | 내 용 | 고려 | 세조 때에 쇠(釗)의 증손 련(璉)이 처음으로 사신 안동을 파견하여 표를 올리고 방물을 마치면서 아울러 국휘(國諱)를 청하였다. 세조가 그 정성을 가상히 여겨 조명(詔命)으로 제계(帝系)의 이름 자(字)를 그 나라에 내려 주고, 원외산기시랑 이오(李敖)를 파견하여 장(璋)을 도독요해제군사 정동장군 영호동이중랑장 요동군개국공 고구려왕에 배수(拜授)하였다. 오(敖)가 그들이 사는 평양성에 이르러 그 나라의 여러 곳을 방문한 뒤 이렇게 말하였다. “[고구려는] 요동에서 남쪽으로 일천여리 떨어진 곳으로서, 동쪽으로는 책성(栅城),남쪽으로는 소해(小海)에 이르고, 북쪽은 예전의 부여에 이른다. | 백제 | 백제국은 그 선조가 부여로부터 나왔다. 그 나라는 북쪽으로 고구려와 천여리가 떨어져 있고, 소해(小海)의 남쪽에 위치하였다. | ※신라전은 없음. |
< 송서 이만열전 > 나라 | 내 용 | 고구려 | 동이 고구려국은 현재 한대(漢代)의 요동군을 지배하고 있다. 고구려왕 고련이 진(晋) 안제(安帝) 의희 9년(A.D.413)에 장사(長史) 고익을 보내어 표문을 올리고 자백마(赭白馬)를 바쳤다. [안제(安帝)는] 고련을 사지절 도독영주 제군사 정동장군 고구려왕 낙랑공으로 삼았다. 고조가 왕위에 오른 뒤 조서를 내려 말하기를, “사지절 도독영주제군사 정동장군 고구려왕 낙랑공 련(璉)과 사지절 독백제제군사 진동장군 백제왕 영(映)은 함께 해외에 있으면서 바른 도리를 지키어 멀리서 공물을 보내 오고 있소. 이제 [송(宋)나라의] 개국(開國)을 알리어 기쁨을 나누어 가지려 하오. | 백제 | 백제국은 본래 고려와 더불어 요동의 동쪽 1천여리 밖에 있었다. 그후 고[구]려는 요동을, 백제는 요서를 경략하여 차지하였다. 백제가 통치한 곳은 진평군(晋平郡) 진평현(晋平縣)이라 한다. 의희 12년(A.D.416) 백제왕 여영을 사지절 도독 백제제군사 진동장군 백제왕으로 삼았다. 고조가 즉위한 뒤 진동대장군으로 벼슬을 올려 주었다. | ※신라전은 없음. |
※송서 본기 | 내 용 | 무제 본기 | 영초 원년(420년) 가을 7월 무술일,정동장군 고구려왕 고련의 벼슬을 올려 정동대장군으로 호칭하고, 진동장군 백제왕 부여영의 벼슬을 올려 진동대장군으로 호칭하였다. | 효무제 본기 | 대명 원년(457년) 겨울 10월 갑진일 백제왕 여경을 진동대장군으로 삼았다. 대명 7년(463년) 7월 을해일 정동대장군 고려왕 고련의 벼슬을 올려 거기대장군 개부의동삼사로 호칭하였다. |
< 남제서 동남이열전 > 나라 | 내 용 | 고려 | 동이 고려국은 서쪽으로 위(魏) 오랑캐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 송나라 말에 고려왕 낙랑공 고련을 사지절 산기상시 도독영평2주((都督營·平二洲)) 제군사 거기장군 개부의동삼사로 삼았다. 태조 건원 원년(A.D.479)에는 [련(璉)의 장군 호(號)를 표기대장군으로 올려 주었다. | 백제 | [또한 백제왕에 대해서는] 사지절 도독백제제군사 진동대장군으로 삼고, 알자복야(謁者僕射)를 겸한 손부(孫副)를 사신으로 보내어 [모(牟)]대(大)를 책명(策命)으로 망조부(亡祖父) 모도(牟都)를 이어서 백제왕으로 삼았다. | ※신라전은 없음. |
※남제서 본기 | 내 용 | 고제 본기 | 건원 2년(480년) 여름 4월 병인일 고려왕 낙랑공 고련을 진급시켜 표기대장군으로 호칭하였다. | ※백제왕에 대한 기사는 없음 |
< 양서 동이열전 > 나라 | 내 용 | 고구려 | 그의 아들 고운을 제(齊) 융창(隆昌) 연간(A.D.493)에 사지절 산기상시 도독영·평이주(都督營·平二洲) 정동대장군 낙랑공으로 삼았다. 고조가 즉위하여 고운을 거기대장군으로 올려 주었다. | 백제 | 백제(百濟)는 그 시초가 동이의 삼한국인데 하나는 마한이요, 다른 하나는 진한이요, 또 하나는 변한이었다. 변한과 진한은 각각 12국(國)이 있었고 마한은 54국(國)이 있었다. 대국(大國)은 1만여가(萬餘家), 소국(小國)은 수천가(數千家)로서 모두 10여만호가 되었는데, 백제는 곧 그 중의 한 나라였다. 뒤에 점점 강대하여져서 여러 작은 나라들을 합쳤다. 그 나라는 본래 구려(句驪)와 더불어 요동의 동쪽에 있었다. 진(晋)나라 때에 이르러 구려가 이미 요동을 경략하자, 백제 역시 요서(遼西)· 진평(晋平) 2군(郡)의 땅을 점거하여 스스로 백제군(百濟郡)을 설치하였다. 제(齊) 영명(永明) 연간(A.D.483~493)에 태(太)에게 도독백제제군사 진동대장군 백제왕의 벼슬을 제수하였다. 천감(天監) 원년(A.D.502)에 태(太)의 호(號)를 정동장군으로 올려 주었다. | 신라 | 그 나라는 백제의 동남쪽 5천여리 밖에 있다. 동으로는 큰 바다와 연(沿)해 있고, 남북으로는 구려(句驪) · 백제와 접하고 있다. 보통 2년(A.D. 521)에 성(姓)은 모(募), 이름은 태(秦)인 [신라]왕이 처음으로 사신을 파견하였는데, 백제를 따라와 방물을 바쳤다. 앙서 본기? |
※양서 본기 | 내 용 | 무제 본기 | 천감 원년(502년) 여름 4월 무진일,거기장군 고구려왕 고운의 벼슬을 올려 거기대장군으로, 진동대장군 백제왕 여대의 벼슬을 올려 정동대장군으로 호칭 하였다. | 보통 원년(520년) 2월 계축일,고려왕 세자 (고)안을 영동장군、고려왕으로 삼았다. | 보통 2년(521년) 12월 무진일,진동대장군 백제왕 여륭을 영동대장군으로 삼았다. | 태청2년(548년) 3월 갑진일,무동장군 고려왕 고연이 죽어,그 자식을 영동장군、고려왕、낙랑공으로 삼았다. |
<진서(陳書) > ※동이전이 없음 | 내 용 | 세조 본기 | 천가 3년(562년) 윤2월 기유일, 백제왕 여명을 무동대장군으로 삼았다. | 세조 본기 | 천가 3년(562년) 윤2월 기유일, 고구려왕 고탕을 영동장군으로 삼았다. | ※ 신라에 대해서는 왕으로 삼았다는 기록이 없음 |
< 북제서 > ※동이열전이 없음 | 내 용 | 문선제 본기 | 천보 원년(550년) 9월 계축일, 산기상시、거기장군、영동이교위、요동군 개국공、고려왕 (고)성을 사지절、시중、표기대장군、영호동이교위로 삼고,왕과 공은 예전처럼 하였다. | 무성제 본기 | 하청 4년(565년) 2월 갑인일,조서로 신라국왕 김진흥을 사지절、동이교위、낙랑군공、신라왕으로 삼았다. | 후주 본기 | 무평 원년(570년) 2월 계해일,백제왕 여창을 사지절、시중、표기대장군、대방군공으로 삼고,왕은 예전과 같이 하였다. |
< 주서열전 > 나라 | 내 용 | 고려 | 고조(高祖)가 탕(湯)을 상개부의동 대장군 요동군개국공 요동왕에 배수했다. 그 지역은 동쪽으로는 신라에 이르고 서쪽으로는 요수를 지나니 [동서(東西)가] 2천리요, 남쪽은 백제와 인접하고 북쪽은 말갈과 이웃하니 [남북(南北)이] 천여리(千餘里)이다. 국도(國都)는 평양성으로, 그 성은 동서가 6리이며 남쪽으로는 패수에 닿아 있다. | 백제 | 구태란 사람이 처음으로 대방에 나라를 세우니, 그 땅의 경계는 동쪽으로 신라에 닿고 북쪽으로 고구려와 인접하며, 서쪽과 남쪽으로는 모두 큰 바다로 경계지어져 있다. 동서의 길이는 450리이고 남북은 900여리이다. 도읍은 고마성(固麻城)이다. | ※신라전은 없음 |
< 수서 동이열전 > 나라 | 내 용 | 고려 | 그 나라는 동서가 2천리, 남북이 1천여리이다. 국도(國都)는 평양성으로 장안성이라고도 하는데, 동서가 6리이며 산을 따라 굴곡이 지고 남쪽은 패수에 닿아 있다. 또 국내성과 한성)이 있는데, 모두 도회지(都會地)로서 그 나라에서는 「삼경(三京)」이라 일컫는다. 신라와는 늘 서로 침공하고 약탈하여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고조는 사신을 [파견하여] 원(元)에게 상개부의동삼사를 제수하는 한편, 요동군공을 세습시키고 옷 한벌을 내려 주었다. 원(元)이 표문을 올려 사례함과 아울러 상서(祥瑞)를 축하하면서 왕으로 책봉하여 줄 것을 청하였다. 고조는 특별히 원(元)을 책봉하여 왕으로 삼았다. | 백제 | 개황 초(A.D.581~600)에 그 나라의 왕 여창이 사신을 보내어 지방물건을 바치니, 창(昌)을 상개부 대방군공 백제왕으로 삼았다. | 신라 | 고조는 진평(眞平)을 상개부 낙랑군공 신라왕으로 삼았다. |
< 구당서 동이열전 > 나라 | 내 용 | 고려 | 그 나라는 평양성에 도읍하였으니, 곧 한(漢) 낙랑군의 옛 땅이다. 장안에서 동쪽으로 5천 1백리 밖에 있다. 동으로는 바다를 건너 신라에 이르고, 서북으로는 요수를 건너 영주에 이른다. 남으로는 바다를 건너 백제에 이르고, 북으로는 말갈에 이른다. | 백제 | 일찍이 마한의 옛 땅으로서 경사(京師)에서 동으로 6,200리 밖에 있으며, 대해(大海)의 북쪽, 소해(小海)의 남쪽에 위치한다. 동북으로는 신라에 이르고, 서쪽으로는 바다를 건너 월주에 이르며, 남쪽으로는 바다를 건너 왜국에 이르고, 북쪽으로는 바다를 건너 고려에 이른다. | 신라 | 그 나라는 한대(漢代)의 낙랑 땅에 있으니, 동쪽과 남쪽은 모두 큰 바다에 연하여 있고, 서쪽은 백제와 접하였으며, 북쪽은 고려와 인접하였다. |
여기서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1) 최초로 고구려 왕을 요동군과 연결시킨 나라는 북위였음을 알 수 있다. 2) 북제서는 북위가 고구려와 요동군을 연결시킨 것에 더하여, 백제와 대방군, 신라와 낙랑군을 연결시켰다.(한반도 지리에 대한 무지의 결과 임) 3) 주서는 백제의 시조가 구태라고 하면서 구태가 대방군에 나라를 세웠다고 하면서 백제와 대방군을 다시한번 연결시켰다. 4) 수서는 거기에다가 국도(國都)는 평양성이라는 말과 함께 고구려와 요동군, 백제와 대방군, 신라와 낙랑군을 연이어 연결하였다. 5) 구당서 고조 본기에 고구려와 요동군, 백제와 대방군, 신라와 낙랑군은 또한번 연결시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