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수말당초의 중국 상황(이밀, 왕세충, 두건덕, 이세민의 관계)-5

상 상 2014. 5. 28. 17:21

 

수말당초의 중국 상황(이밀, 왕세충, 두건덕, 이세민의 관계)-5

 

1. 상황 요약

2. 상황 분석 및 해설

3. 자치통감 기록

 

3. 자치통감 기록-2)

 

<자치통감: 당기1, 고제 무덕 원년(618)>

 

2

 

청하(지방)의 도둑 우두머리 두건덕이 장락왕이라고 참칭하였다.

3

병진일

우둔위장군 우문화급이 수양제를 강도궁에서 시해하고

진왕 양호를 황제로 세우며스스로 대승상이라고 칭하였다.

(우문화급 등의 효과군이 수양제를 시해하고 장안으로 돌아감-북상)

4

갑자일

이연이 태극전에서 황제에 즉위하였다.(당고조)

5

경오일

수양제가 죽었다는 소식이 동도(낙양)에 전해지자 동도유수 원문도와 왕세충이 월왕 양동을 황제로 세웠다.

(황제가 된 양동은 연호를 황태라고 썼기 때문에 황태주라고 부른다)

6

을유일

(12)

동도(낙양)에서는 우문화급이 서쪽으로 온다는 소식을 듣고 모두 떨고 두려워했다.

신축일

(28)

우문화급은 치중을 활대(하남성 활현)에 두고 군사를 이끌고 북쪽 여향으로 향하였다.

이밀과 우문화급이 기수를 사이에 두고 진을 쳤다.

서세적이 성밖에 깊은 해자를 파고 지키니 우문화급은 성에 다다를 수 없었다. 서세적이 해자에다 땅 길을 만들어 군사로 치니 우문화급은 대패하였고 그의 공격도구도 불태웠다.

 

이밀이 동도와 버틴 날짜가 오래되고 동쪽으로 우문화급을 막았으나 항상 동도가 그들의 뒤를 칠까 두려워 황태주에게 항복을 신청하고 우문화급을 토벌하여 속죄함을 받게 해달라고 청하였다.

황태주 양동이 이밀에게 태위 상서령 동남도 대행대 행군원수 위국공의 벼슬을 주며, 먼저 우문화급을 평정하고 그 다음에 조정에 들어와 정치를 보필하게 하였다. 원문도는 천하가 안정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기뻐하였으나 왕세충은 도둑에게 벼슬을 주었다고 화를 내었다. 원문도 등은 왕세충이 성을 가지고 우문화급에게 호응할까 의심하여 서로 틈이 생겼으나 겉으로는 친하게 지냈다.

7

 

이밀은 서쪽에 대한 염려가 없어지자 모든 정예의 병사를 가지고 동쪽으로 가서 우문화급을 공격하였다. 이밀은 우문화급의 군사들이 군량이 다하였다는 것을 알고 거짓으로 화해하자고 하였더니 우문화급이 기뻐하고 그의 군사들이 멋대로 먹게 하면서 이밀이 그들을 먹여주기를 바랬다. 마침 이밀의 밑에 있는 사람이 죄를 짓고 도망하여 우문화급에게 가서 그 사정을 다 말하니 우문화급이 크게 화를내고 영제거를 건너서 이밀과 동산 아래에서 싸웠다.

 

이밀이 떠도는 화살에 맞아 말에서 떨어져 혼절하자 오직 진숙보만이 그를 보위하여 죽음을 면하였다. 진숙보가 군사를 수습하여 싸워 우문화급이 물러났다.

 

우문화급은 급군에 들어가 군량을 구하고, 동군의 관리와 백성들을 고문하고 노략질 하여 쌀과 곡식을 책임지게 하였다. 왕궤 등이 감당하지 못하고 이밀에게 항복하였다. 동군의 무리들도 이밀에게 항복하였다.

 

우문화급은 이에 무리 2만으로 북쪽 위현으로 갔다.

을묘일

(12)

왕세충이 원문도를 죽이고 황태주(동도의 황제)에게 사과하니 황태주는 왕세충을 좌복야 총독내외제군사로 삼았다.

 

이밀이 장차 황태주를 조현하려고 하였는데 온(하남성 온현)에 이르러 원문도 등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금용으로 돌아갔다.

 

동도에 대기근이 들어 사전(私錢)이 넘치고 조악하여 태반은 석환을 섞었는데 가는 것이 마치 실과 같았고

쌀을 1곡에 8~9만 전()이었다.

기사일

(26)

하간(하북성 하간시) 군승 왕종은 두건덕이 1년을 공격해도 떨어뜨리지 못하였는데,

수양제가 흉한 일을 만났다는 소식을 듣고 상례를 선포하고 성위에 올라가 모든 사람이 곡을 하였다

두건덕이 사자를 보내 조문하니 왕종이 항복하였다.

제장들이 그가 죽이고 다치게 한 군사들이 많았는데 힘이 다하자 항복한 것이니 죽이자고 하였으나 두건덕은 그가 충신이라고 하며 영주(하간군을 개명한 것) 자사로 삼았다. 이 소식을 듣고 하북의 군현들이 다투어 두건덕에게 귀부하였다. 이에 두건덕이 낙수에 도읍을 정하고 사는 곳을 금성궁이라고 하며 백관을 갖추었다.

9

임자일

(10)

이밀은 적양을 죽이고 나자 교만하고 자랑스러워하며 군사들을 애휼(愛恤)하지 않았다.

낙구창을 열어 사람들이 쌀을 마음대로 가져가게 하였는데 어떤 사람들은 가져가다가

힘이 모자라 쌀을 길에 버려 창고가 있는 성에서 곽문까지 쌀이 몇 촌이나 두껍게 깔려 수레와 말이 밟고갔고 여러 도적들이 와서 밥을 먹는 사람은 그 가족과 어울러서 거의

1백만이나 이르렀으며 옹기 그릇이나 바가지가 없어서 가시나무로 짠 광주리로 쌀을 씻으니 새어나온 쌀이 낙수의 양쪽 가에 10리에 이르러 이를 바라보면 흰 모래 같았다.

 

이밀은 동도의 군사가 자주 패하고 미약하며 장상(將相)들이 서로 죽이고 있어서 조석간에 평정될 것이라고 생각하였는데 왕세충이 대권을 오로지 하고서 장사(將士)들에게 후하게 상을 내리고 무기를 잘 수리하고 관리하면서 역시 몰래 이밀을 빼앗으려고 기도하였다.

 

그때 수나라의 군사들은 식량이 부족하였고 이밀의 군사들은 의복이 부족하였는데 왕세충이 교역하자고 청하자 이밀이 곤란하다고 하였지만 장사 병원진 등이 사사로운 이익을 구하여 이밀에게 허락하도록 권하였다.

 

이보다 먼저 이밀에게 귀부하는 동도사람이 하루에도 100명을 헤아렸지만 이미 식량을

얻고나자 항복하는 사람은 더욱 적어졌고 이밀은 후회하여 중지 시켰다.

 

이밀은 우문화급을 격파하고 돌아왔지만 그의 힘센 졸병들과 좋은 말들이 대부분 죽었고 사졸들은 피곤하고 병이 들었다.

 

왕세충은 그들이 피폐한 틈을 타서 그들을 치고자 하였으나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로 되지 않은 것을 걱정하여 마침내 좌군 위사 장영통이 주공을 꿈에 세 번 보았다고 속이고 왕세충에게 뜻을 일러주게 하였는데 마땅히 군사들을 챙겨서 서로 도와 적을 치라고 하는 것이었으니 마침내 주공을 위하여 사당을 세우고 병사들이 나갈때마다 번번히 먼저 기도하였다.

 

왕세충은 정예의 병사 2만명과 말 2천필을 가려 뽑아 훈련시켰다.

임자일

(10)

왕세충이 군사를 내보내 이밀을 쳤는데 깃발위에는 모두 영통이라는 글자를 써넣어 군사의 위용이 아주 왕성하였다.

계축일

(11)

왕세충이 언사(하남성 언사현)에 이르러 통제거의 남쪽에 군영을 설치하고 통제거 위에 세 개의 다리를 만들었다.

 

이밀은 왕백당을 남겨두어 금융을 지키게 하고 스스로 정예의 군사를 이끌고 언사를 나가서 망산(낙양 북쪽)에서 막으며 그들을 기다렸다.

정지절이 내마군을 거느리고 이밀과 북망산 위에서 함께 군영을 마련하였는데 선웅신이 외마군을 거느리고 언사성의 북쪽에 군영을 마련하였다.

 

왕세충이 수백의 기병을 파견하여 통제거를 건너서 선웅신의 군영을 공격하니 이밀이 배행엄과 정지절을 파견하여 이를 도왔다. 배행엄이 먼저 달려가서 적에게 가다가 떠도는 화살에 맞아 땅에 떨어졌는데 정지절이 이를 구하고 몇 명을 죽이자 왕세충의 군사들이 한쪽으로 쏠렸고 마침내 배행엄을 안고서 겹으로 말을 타고 돌아 왔으며 왕세충의 기병에게 쫒기면서 창에 갑옷이 찔려서 구멍이 났는데 정지절이 몸을 돌려서 그 삭(긴 창)을 꺾어버리고 아울러 쫒아온 사람을 목 베니 배행엄과 모두 죽음을 면하였다.

마침 해가 저물어 각기 군사를 거두어 군영으로 돌아갔다.

이밀의 날랜 장수 손장락 등 10여 명이 모두 중상을 입었다.

 

이밀은 우문화급을 새로이 격파하여 왕세충을 가볍게 보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벽루를 만들지 아니하였다.

 

왕세충은 밤에 200여 기병을 파견하여 북산으로 잠입시켜서 계곡 속에 숨겨두고 군사들에게 명령을 내려서 모두 말에게 먹이를 주고 욕식(아침 일찍 하는 식사)하게 하였다.

갑인일

(12)

날이 밝아 올 무렵에 왕세충은 군사를 이끌고 이밀에게 가까이 갔다.

이밀이 군사를 내어 대응하였는데 아직 열도 제대로 갖추지 아니하여 왕세충이 군사를 풀어서 그들을 쳤다.

 

왕세충은 먼저 모양이 이밀 같은 사람을 하나 찾아서 묶어 숨겨 두었다가 싸움이 바야흐로 무르익었을 때 끌어다 진을 친 곳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북을 치게 하면서 말하였다. “이미 이밀을 붙잡았다사졸들이 모두 만세를 불렀다.

 

그리고 숨어있던 병사들이 나타나서 높은 곳에 올라갔다가 내려오며 말을 달려서 이밀의 진영을 짓누르며 불을 멋대로 놓아 그 여막을 태웠다.

 

이밀의 무리들은 크게 붕괴되었고 그 장수 장동인과 진지략이 모두 항복하였는데 이밀은 1만 여명과 더불어 말을 달려 낙구로 향하였다.

 

이밀이 장차 낙구성으로 들어가려 하니 병원진이 사람을 파견하여 몰래 왕세충을 끌여들였다.

 

이밀이 이를 알았으나 왕세충의 군사가 반쯤 낙수를 건너기를 기다려 그를 치기로 하였다.

 

왕세충의 군사가 도착하였는데 이밀의 척후 기병이 때를 맞추어 깨닫지 못하여 장차 출전할 때 쯤에는 왕세충의 군사들은 모두 이미 건넜다.

 

선웅신 등이 또 군사를 챙겨서 스스로 점거하고 이밀은 스스로 지탱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휘하에 있는 경무장한 기병을 거느리고 호뢰(하남성 형양현 서북쪽)로 달아났고 병원진은 드디어 성을 들어 항복하였다.

 

이밀이 자살하여 무리들에게 사과하고자 하였다.

왕백당이 이밀을 안고서 큰 소리로 울다가 기절하니 무리들도 모두 슬퍼서 울었는데 이밀이 다시 말하였다. “여러분이 다행히 서로 버리지 않는다면 마땅히 함께 관중(당나라)으로 귀부하여야 하고 나 이밀 자신은 비록 공로를 세운 것이 없지만 여러분은 반드시 부귀해짐을 보장 받을 것이오.“

 

이밀을 쫒아서 입관(함곡관 안으로 들어감-당나라로 들어감)한 사람이 무릇 2만명이었다.

신미일

(29)

우문화급이 위현(하북성 대명현 서북쪽)에 도착하니 무리들은 대부분 도망하였고 우문화급도 실패할 것을 알고서 한탄하며 말하였다.

인생이란 진실로 마땅히 죽어야 하는 것인데 어찌 하루라도 황제가 되지 않을쏘나!” 이에 진왕 양호를 독살하고 황제의 자리에 올랐으며 국호를 허()라하고 연호를 고쳐서 천수라고 하였으며 백관을 두었다.

12

신미일

당고조가 이밀을 파견하여 산동(낙양지역)으로 가서 그 나머지 무리 가운데 아직 항복하지 않은 사람들을 거둬들이게 하였다.

경자일

(30)

이밀이 도림에서 반란을 일으켜성언사가 추격하여 목을 베었다(구당서 고조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