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와 중국의 관계-236, 당나라때-60 (14. 돌궐전 분석 및 해설④)
차례
1. 구당서 돌궐전 2. 구당서 고조본기 3. 구당서 태종본기(상) 4. 구당서 태종본기(하) 5. 구당서 고종본기(상) 6. 구당서 고종본기(하) 7. 구당서 동이열전 8.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당과의 관련부분) 9. 신당서 돌궐전 10. 신당서 고조본기 11. 신당서 태종본기 12. 신당서 고종본기 13. 신당서 동이열전 14. 신구당서 돌궐전 분석 및 해설 15. 신구당서 고조본기 분석 및 해설 16. 신구당서 태종본기 분석 및 해설 17. 신구당서 고종본기 분석 및 해설 18. 신구당서 동이열전 분석 및 해설 19.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분석 및 해설 20. 고구려와 당나라의 관계
14. 신구당서 돌궐전 분석 및 해설④ 1) 돌궐과 당나라의 관계 2) 돌궐의 멸망 3) 돌궐전의 기록에 관하여 4) 돌궐전에 나오는 사실관계의 규명 및 해설
3) 돌궐전의 기록에 관하여
어느날 세민이가 깡패에게 붙들려 금품을 빼앗기고 일기장에 쓴 글
무슨 말을 한 것인가? 결국 깡패들에게 심하게 두들겨 맞았다는 말이고 깡패들에게 가진 것을 다 빼앗겼다는 말이다. 그리고 깡패들은 금품을 뜯었으니 갔다는 말이다.
그것을 분풀이 할데가 없으니 글에다가 분풀이를 한 것이다. 남에게 실컷 당하고 글로 분풀이를 하는 것은 중국 사람들의 괴상한 습관이다. 즉, 글을 가지고 장난 치는 것이다. 중국 역사가 다 그렇고 중국 사서라는 것은 대개 이런 것이다.
지금 위의 글을 보면 깡패에게 맞았다는 말도 없고 깡패들에게 금품을 뜯긴 일도 없으며 오히려 깡패를 물리쳤다고 되어 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어거지 글을 가지고 깡패를 물리쳤다고 주장을 하는 것이 중국인들이고 사대주의 한문쟁이들이며 식민사관의 개들이다.
구당서 돌궐전을 보자
윗 글에서 핵심적인 말은 무엇인가?
1) 싸우지 않고 옥과 비단을 주었다. 2) 편교 위에서 동맹을 맺었다. 그리고 돌궐은 돌아갔다
이게 무슨 말인가? 결국 꼼작 못하고 금품을 다 빼앗겼다는 말이다. 그리고 돌궐은 좋은 말 몇마디 해주고 갔다는 말이다.
다시말해서 당태종이 돌궐에게 꼼짝 못하고 금품을 다 빼앗기고 그것을 분풀이 할 데가 없으니 글에다가 분풀이를 한 것이고 글 가지고 장난 친 것이다. 중국 사서의 전형적인 모습 그대로다
지금 위의 글을 보면 당태종이 돌궐에게 싸우지도 못하고 금품을 뜯겼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별의별 이야기를 다 만들어 놓고 있다.
첫째, 옥과 비단을 돌궐에게 뜯겼다는 말이 없다. 물론 싸우지도 못했다는 말도 없다. 그저 「내가 지금 군사를 거두어 싸우지 않고 옥과 비단을 먹이면」이라는 가정법을 쓰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윗문장 대로라면 싸움을 못한 일도 없고 옥과 비단을 준 일도 없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이때 당태종이 돌궐에게 막대한 금은보화를 빼앗겼다는 것은 중국인들 자신이 더 잘안다. 필자 2년 전쯤에 중국 본토에서 만든 정관의 치(貞觀之治)라는 TV 역사극을 본 일이 있는데 (지금도 있는 ‘채널 CHING’ http://ching.hyundaimedia.com에서 보았음) 거기에서도 당태종이 돌궐에게 금품을 뜯긴 사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따라서 저런 식의 되먹지 못한 말장난은 이제 중국인들도 다 아는 거짓말이다.
둘째, 기왕 나간 김에 더 나가서 소설을 써 놓았다. 예를들면... 『내가 돌궐의 병사를 보니 비록 많으나 정돈되지 않았고, 군신들의 생각은 오직 재물의 이익만 본다. 가한이 홀로 위수 서쪽에 있었는데, 추장들은 모두 와서 나를 찾아오니 내가 그로 인하여 그 무리를 습격하면 그 기세는 썩은 나무를 꺾듯이 쉬울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이미 (장손)무기와 이정에게 영을 내려 유주에 복병을 설치한 뒤 기다리라고 하였는데 오랑캐가 만약 되돌아 달아난다면, 복병이 그 앞에서 막고, 대군이 그 후미를 뒤쫓아, 뒤집어 엎어버리기는 손바닥 뒤집기와 같았다.』 느니,
『내가 싸우지 않은 것이, 즉위한지 얼마 되지않아 나라를 위하는 도리이고 안정에 힘써야 하기 때문이며, 한번 오랑캐와 싸우면 사상자가 있기 때문이다.』느니
『또 오랑캐가 한번 패하면 혹 당연히 두려워하여 덕을 닦으면서도 우리에게 원한을 맺어, 근심이 작지 않기 때문이다.』느니 이런 소설을 써서 앞에다 붙여놓고 있다.
아니, 사상자가 날까봐 전쟁을 못하고 오랑캐가 패하면 자기들에게 원한을 맺을까봐 돌궐을 치지 않았다?
그러면 4년 뒤에는 왜 군사 10만을 동원하여 돌궐을 쳐서 멸망시켰는가? 그때는 사상자 걱정을 안했다는 말인가? 돌궐을 쳐서 멸망시키면 자기들에게 원한을 맺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는 말인가?
이런 앞뒤가 맞지 않는 소설을 버젓이 여기에 쓴 것은 오직 「당태종이 꼼작 못하고 금품을 다 빼앗겼다」는 사실을 감추려고 한 짓일 뿐이다.
이런 것은 명백한 소설로써 거짓이며 이런 것이 여기에 있을 수 있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 일어난 시점과 사서를 쓴 시점이 다르게 때문이다.
다시말해서 위수지맹이 일어난 때는 서기 626년 7월(당고조 무덕 9년)이고 당태종이 돌궐을 멸망시킨 것은 서기 630년(정관 4년)이며 구당서를 쓴 것은 서기 940~945년(오대 후진 고조 천복 5년~후진 출제 개운 2년)이기 때문이다.
즉, 당태종이 돌궐을 멸망시켜 결과가 나온 후 당태종 실록에 시점을 소급하여 위수지맹이 일어난 때에 「내가 이렇게 이렇게 할 수 있었다」라는 상상을 써 놓은 것이고, 그러한 당태종 실록을 바탕으로 서기 940~945년에 구당서를 썼기 때문이다.
다시말해서 결과를 보고 거기에 맞추어 나중에 제멋대로 소설을 썼다는 말이다.
셋째, 그 위에 있는 소우의 말과 당태종의 말도 다 소설이자 거짓말이다. 아니 지금 양쪽 진영에 수만명의 대군이 칼을 뽑고 서로 죽이려는 일촉즉발의 살벌한 상황에서 소우와 당태종이 저렇게 한가하게 긴 말을 주고 받을 수 있는가? 세계 어느 전쟁사에 일촉즉발의 살벌한 상황 하에서 저렇게 한가한 긴 말을 주고 받은 예가 있는가? 일촉즉발의 살벌한 전쟁터에서 말을 길게 할 수 있는가? 한마디로 있을수 없는 소설을 쓴 것이고 상상을 쓴 것에 불과하다.
이런 소설을 쓴 것도 당태종이 돌궐에게 싸우지도 못하고 금품을 뜯겼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쓴 것이며 긴 말을 꾸며 사람들로 하여금 주의를 딴데로 돌려 눈속임을 하려고 한 것 일뿐이다.
더 가소로운 것은 이런 어거지 문장을 근거로 당태종이 오히려 돌궐을 물리쳤다고 주장하는 것들이다.
개가 웃을 일이다!..............
이런 말도 않되는 어거지 주장을 하는 것이 중국인들이고 사대주의 한문쟁이들이며 식민사관의 개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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