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북제의 멸망과정과 교훈

상 상 2013. 7. 5. 17:54

 

고구려와 중국의 관계-124(북제의 몰락)

 

북제가 고구려에서 나온 우리 민족 고씨가 세운 나라이니 북제에 대해서 조금 더 알아보자.

 

북제는 550년에 건국하였고 진(陳)나라와 북주는 함께 557년에 건국하여 북제는 이 두나라와 대립하였다.

진패선은 양나라 시절 북제세력을 꺾고 진(陳)나라를 건국하였기 때문에 진(陳)나라는 원초적으로 반북제(反北齊)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다가 북제의 북쪽에는 돌궐이 있었는데 북주와 돌궐은 동맹을 맺은 반면 북제는 돌궐을 정벌하였다.

따라서 북주와 돌궐이 손을 잡고 북제를 공략한다.

 

이러한 모습을 조금 살펴보면,

 

『(보정) 3년(563년) 수국공 양충으로 하여금 무리 1만을 이끌고 돌궐과 함께 (북)제를 정벌하도록 명하였다.

(양)충의 군대가 형령을 넘으니 사근(돌궐의 군주)이 기병 10만을 이끌고 와서 만났다.

 

다음해(564년) 정월 (북)제의 주군을 진양에서 공격했으나 이기지 못하였다.

이해(564년)에 사근(돌궐의 군주)이 다시 사신을 보내 물건을 바쳐오며, 다시 동쪽 정벌을 청하였다.

조서로 양충으로 하여금 병사들을 이끌고 옥야(진)을 나가고 진공 (우문)호에게 낙양으로 진격해 호응하라고 명하였다. (우문)호와 만나 싸우는데 불리하자 사근이 (군사를) 물려 돌아갔다.

 

(보정)5년(565년) 조서로 진공 (우문)순, 대사도 우문귀、신무공 두의、남안공 양천 등으로 하여금 가서 (사근의) 딸을 맞이하도록 명하였다.』(주서 권50, 이역열전 하 돌궐전)

 

그 다음,

북제와 북주는 동위와 서위 시절부터 서로 잡아먹으려고 싸웠던 사이이다.

따라서 북주와 진(陳)나라는 반북제(反北齊)라는 공통의 목표가 있었다.

 

그래서 진(陳)나라는 북제와 싸웠고(573년), 이때 북제는 충격을 받았으며

북주 역시 북제와 싸워 북제는 드디어 멸망하였던 것이다.(577년)

북제는 진(陳)나라와 북주 양쪽의 공격을 받는 공동의 적이 되어 멸망하였던 것이다.

 

종합적으로 보았을 때,

북제는 북쪽에서 돌궐, 서쪽에서 서위 및 북주, 남쪽에는 진(陳)나라와 싸움으로써 주위의 모든 나라와 싸웠던 것이다.

한마디로 외교의 대실패로 북제는 멸망했다고 볼수 있다.

 

 

조금 더 나가, 북제가 멸망하는 마지막 모습을 보자.

 

1) 576년 12월 경술일(6일) 진주(晉州) 전투에서 대패한 것이 북제 멸망의 결정타가 되어

2) 576년 12월 신유일(17일) 진양(북제의 핵심 거점이자 제2의 수도)에서도 대패하고

3) 577년 1월 계사일(19일) 북제의 서울 업(鄴) 전투마저도 대패하여 수도를 빼앗겨 진나라로 도망하다가

4) 577년 1월 기해일(25일) 북제의 군주인 안제(安帝: 이름 고위)와 그 태자 (고)긍이 청주에서 생포됨으로써 북제는 멸망하고 만 것이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몰락 원인을 살펴보면,

 

첫째,

진주 전투에서는 북제가 진주를 공격할때 북주 황제의 군대가 갑자기 구원해 올 것이 걱정되어 진주 성 남쪽에서부터 황하로 흘러 들어가는 지류까지 길고 커다란 물웅덩이(해자)를 파놓았는데 결국 북주의 본대(本隊)가 오자 양쪽 군대가 긴 물웅덩이 양쪽에 대치하였는데, 북제가 그 길고 커다란 물웅덩이를 다시 메꾸고 북주 군대를 공격하다가 북주의 군대가 되받아 치자, 북제의 군대가 조금 밀리는 것을 보고 크게 겁을 먹어 북제 황제와 근신들이 황급히 도망치는 바람에 북제 군대 전체가 무너진 것이었다.

 

엄청나게 길고 커다란 물웅덩이(해자)를 팠을 때도 인적 에너지가 엄청나게 소모되었는데

양쪽 대군이 대치한 그 살벌한 순간에 그 길고 커다란 물구덩이를 다시 메꾸어 엄청난 인적 에너지를 대량으로

고갈시킴으로써 결정적 순간에 군사들이 힘을 쓰지 못하게 한 것이 대패한 결정적 원인이 되었다.

그 살벌하고 결정적 순간에 힘을 북돋워도 이길지 말지 하는 판에 노동으로 힘을 다써 지치게 한 것은

적을 너무 깔본 것으로 생각된다. 적의 진영을 보고 저것들 쯤이야 하는 생각으로 자기군대의 반을 투입하여

엄청난 물구덩이를 메꾸고 나머지 반으로 쳐도 충분하다는 생각으로 물구덩이를 메꾸었으나 힘을 비축하고 있던

북주의 군대들이 사력을 다해 들이치자 앞에 있었던 노가다부대가 힘을 못쓰고 쓰러졌고

이것을 본 북제의 황제 측근들이 황제의 안위만을 지나치게 걱정하여 앞뒤 가릴 것 없이

황급히 도망치는 바람에 힘있는 전투부대마저도 그냥 무너져 버린 것이다.

 

살벌한 칼바람이 난무하는 전쟁에서 한번 꺾이면 전원이 살겠다고 제각기 도망친다.

이때는 군법도 소용없고 군대 조직도 소용없으며 명령이고 뭐고도 없고 졸병이나 장교나 할 것없이 모두 다 제각기 뿔뿔이 흩어져

도망치기 바쁘다. 엄청난 공포에 휩싸이고 넋이 나가 손가락으로 톡 치기만해도 쓰러진다.

이래서 북제의 수십만 대군이 한꺼번에 무너진 것이다.

 

여기서 대패한 결정적 원인은 전투를 앞두고 병사들의 힘을 고갈시킨 것이다.

그리고 군심(軍心)의 이반에 있다(그 엄청난 물구덩이-해자를 파라고 할때는 언제고 다시 메꾸라고 할때는 언제냐?)

 

그 배경에는 적을 너무 깔 본데에 있다.

 

우리 민족은 남을 쉽게 깔보는 단점이 있다.

우리 민족의 일파인 고씨가 세운 북제가 그 엄청난 힘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한순간에 허무하게 무너진 것은

우리 민족의 단점인 남을 너무 쉽게 보고, 앝보는 습관 때문이다.

(깔보지 않았으면 엄청난 물구덩이를 메꾸고 공격하려고 하지 않았을 것임) 

 

이러한 모습은 관구검의 난 때도 그대로 볼수 있다.

 

동천왕 20년(246년) 관구검이 쳐들어오자 동천왕은 보병과 기병 2만 명을 거느리고

비류수 가에서 맞아 싸워서 이기고, 3천여 명의 머리를 베었다.

또 군사를 이끌고 다시 양맥(梁貊)의 골짜기에서 싸워서 또 이기고, 3천여 명을 베거나 사로잡았다.

 

이렇게 되자 동천왕은 여러 장수들에게

“위나라(조조의 위나라)의 대군이 오히려 우리의 적은 군대보다 못하고,

관구검이란 자는 위나라의 명장이지만 오늘 [그의] 목숨이 내 손아귀에 있다.”고 말하며

적을 깔보고는 드디어 철기(鐵騎) 5천명만을 거느리고 위나라 군대를 깔아뭉갰다.

 

사지(死地)에 들어간 위나라 군대는 죽게된 마당이니 죽기살기로 싸우게 되어 동천왕이 대패하고 말았다.

이래서 고구려 군대는 무너지고 위나라 군대는 드디어 고구려의 수도 환도성까지 밀고 들어왔던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교훈을 되새기면서 우리 민족은 남을 너무 쉽게 보는 버릇을 고쳐야 하고

남을 너무 쉽게 깔보는 습관을 고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와같이 한순간에 무너져 또다시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다.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하고 그 모든 것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민족은 이 하나의 단점만 고쳐도 상당히 잘나갈 수 있다.

예를 들어서, 삼성이 잘 나가는 것은 모든 위험에 철저히 대비하기 때문이다.

 

둘째,

북제의 수도 업에서도 패배한 것은

1) 재물을 풀어 군사를 모을 때 북제의 황제는 자기 재물이 풀리는 것을 아까워한 때문이다.

그 위험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재물을 아까워 했으니 재물보다 귀한 목숨을 바칠 리가 있겠는가?

위험한 순간에는 재물을 아낌없이 내 던져야 한다. 결정적 순간에 쓰자고 재물은 모으는 것이다.

 

2) 또한, 북제의 황제가 군사들을 격동시켜 싸우게 해야 하는 순간에 웃어 버린 때문이다.

그림으로써 신하 모두 웃게 되고 그것은 모든 군사의 마음을 풀어헤치게 해서

군사들로 하여금 전쟁하려는 굳센 마음을 없애 버린 것이다.

우리 민족이 명랑한 것은 좋지만 아무 때나 명랑한 것은 안된다.

 

3) 그 결정적 순간에 분위기를 바꿔야한다며 황제의 자리를 어린 아들에게 물려준 때문이다.

위험하고 결정적 순간에는 지도자를 중심으로 일치 단결해야 하는데 분위기를 바꾼다고

지도자를 바꾸어 버렸으니 군과 지도자가 한 몸이 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른바 군심(軍心)이 흩어진 것이다.

우리 민족은 지긋하지 못하고 너무 쉽게 바꾸는 버릇이 있는데 이는 좀 고칠 부분이 있다.

우리 민족은 시간이 좀 지나면 지루해 하는 버릇이 있다.

몇 년, 몇 십년을 꾸준히 밀고 나가지 못한다. 사람들이 지겨워서 배기질 못한다.

쉽게 빨리 바꾼다. 장소도 바꾸고, 사람도 바꾸고, 물건도 바꾸고, 분위기도 바꾸고, 계획도 바꾸고.....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펄펄 끓는 에너지가 있고 바람의 민족이라 그런지 잠시를 가만히 있지 못한다.

 

좋은 자질을 지닌 민족이다. 여기에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 하나 더 있다.

브레이크이다.

멈춰야 할때 언제든지 멈출수 있는 장치 말이다.

차가 아무리 잘나가면 뭐하나... 멈출 수 없으면 부딪히고 깨지고... 사고가 날 뿐이다. 사람이 죽고 다친다는 말이다.

 

또하나 필요한 게 있다.

하나의 핸들이다.

제각기 핸들을 돌려 어떤 자는 거꾸로 가게하고, 어떤 자는 차가 못가게 일일이 발목을 잡고,

어떤 자는 가시 밭길로 핸들을 돌리면서 꽃밭이라고 사기 치고...

 

온통 엔진에만 관심이 있고 나머지는 관심이 없다시피한다.

자동차에는 브레이크도 좋아야하고, 핸들도 좋아야 하고, 동력을 잠시 끊어놓는 클러치도 좋아야하고,

변속기도 좋아야 하고, 엔진 냉각 기관도 좋아야하고, 바퀴도 좋아야 하고, 충격 완화장치도 좋아야 하고

의자도 좋아야 하고, 디자인도 좋아야 하고........끝이 없다.

 

무슨 소리냐? 인재를 각 방면에 분산 배치해야 한다는 말이다.

엔진이 모든 권력을 차지하고 모든 것을 결정하는 우리민족의 습성은 고쳐야 할 것으로 보인다.

브레이크, 핸들, 클러치, 변속기.....등등에 권력을 나눠주고 그러한 역할을 하는 사람들에게 결정권을 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한 수많은 조직들이 다 활성화되고 그러한 것들의 조화로 자동차가 움직이게 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에너지가 많은 우리 민족이 크게 성공할 것으로 보인다.(분권화와 조화가 우리민족의 살길)

 

바람처럼 확 몰렸다가 바람처럼 흩어지는...

그게 우리 민족인데 여기에는 좋은 점도 있고 주의해야 할 점도 있다.

이러한 특성에서도 우리의 좋은 점은 살리고 나쁜 점은 주의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북제 멸망 이후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하면...

북제가 멸망하고 북주에서 양견(수 문제)이 나라를 빼앗아 수나라를 세웠으며

드디어 군사를 돌려 양광(나중에 수양제가 됨)이 진(陳)나라를 멸망시켜 중국을 통일하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