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매일경제, 기사입력 2013.03.27 17:02:54 | 최종수정 2013.03.27 17:33:05
한중연 `조선시대 한글편지 서체 자전` 펴내
조선 왕 가운데 최고 명필은 선조였다. 선조는 중국 사신들이 그 필적을 얻기 위해 애를 썼을 정도로 유명했다. 선조는 시집간 딸들에게 자주 한글 편지를 보내 안부를 묻는 다정다감한 아버지였다.
굳은 신념과 정신으로 일국을 좌지우지하던 명성황후 한글 편지는 그의 강인한 기질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줄을 맞추는 데 전혀 신경 쓰지 않고 흘림체로 거침없이 이어 썼다. 그의 편지는 140여 편이 전해진다.
조선시대 왕을 비롯해 왕비와 공주가 쓴 한글 편지(언간ㆍ諺簡)를 집대성한 `조선시대 한글 편지 서체 자전`이 나왔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어문생활사연구소(소장 황문환)는 그동안 단편적으로 소개되거나 개별 편지첩에 실려 있던 한글 편지 중 대표적인 편지를 모아 `조선시대 한글 편지 서체 자전`을 펴냈다.
자전 편찬 작업에는 서체학, 문자학, 국어국문학 등 분야별 전문가 31명이 참여했다. 5년여 동안 조선시대 한글 편지 1500여 건을 분석해 조선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87명 한글편지 400여 건을 담아냈다.
어절, 음절, 자보를 비교해 서체 간 관련성과 차이점을 파악할 수 있도록 편집했다.
현재까지 발굴된 왕의 친필 편지는 선조, 효종, 현종, 숙종, 정조 편지가 있다.
북벌을 추진했던 효종은 필체도 거침없고 시원시원했다. 효종이 쓴 한글 편지 필체를 보면 활달하고 진취적인 기품을 엿볼 수 있다. 불행했던 개인사를 딛고 성군이 된 정조도 필체가 힘찼다. 반면 현종은 필체가 아기자기하고 다정다감했으며 숙종은 획 하나하나를 정성 들여 썼다.
인조 계비인 장렬왕후, 효종의 비 인선왕후, 현종의 비 명성왕후, 숙종의 비 인현왕후도 모두 뛰어난 달필이었다. 특히 인현왕후는 궁체 완성자로 평가받는다. 혜경궁 홍씨 편지는 아들 정조가 세손에 책봉되기 전인 원손 시절에 시누이인 화순옹주에게 보낸 한글 문안편지 1편이 남아 있다. 흘림체로 `한중록` 서체와 비슷하며 편지 끝에 `빙궁`(嬪宮)이라고 서명했다.
공주가 쓴 한글 편지 중 온전하게 전하는 것은 효종 둘째딸인 숙명공주 편지 한 편뿐이다.
왕실 편지를 대필한 궁녀들 한글 편지를 비롯해 송시열 이동표 정경세 등 사대부 한글 편지, 추사 김정희와 그의 부친 김노경 한글 편지, 추사에게 글과 그림을 배운 흥선대원군 한글 편지 등도 실려 있다.
황문환 어문생활사연구소장은 `조선시대 한글 편지 서체 자전`은 "난해한 문자 판독은 물론 서체적 조형미가 뛰어나 한글 서예 창작 서체로 응용, 컴퓨터 폰트 개발, 패션 산업, 서체 디자인 등 예술과 산업에 활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품격까지 구비하고 있어 그 가치가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배한철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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