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고구려와 중국의 관계-54(북위 때⑳: 고도목, 두 번째 글)

상 상 2013. 1. 23. 18:18

 

윤 6월 기미일(9일)

.......(중략)......

고도목(高道穆)이 말하였다.

“지금 승여는 방랑하고 주상은 근심하며 신하는 욕을 당합니다.

대왕께서는 1백만의 무리를 장악하고 천자를 도우며 제후를 호령하시니

만약 군사를 나누어서 대나무 뗏목을 만들고 있는 곳에서 흩어져 건너면

손가락질 하는 사이에 이길수 있을 것인데 어찌하여 이것을 버리고 북쪽으로 돌아가

원호로 하여금 다시 다 모으기를 마치고 천하에 군사를 징발할 수 있도록 하십니까?

이것이 이른바 살모사를 키워 큰 뱀을 만드는 것이니 후회하여도 따라잡을 길이 없습니다.”

※참고

이때의 상황은 이렇습니다.

 

경종(제19대 효장제, 원자유)이 북쪽으로 가자 이주영이 나서서 군대를 몰고 낙양으로 향하여

황하에서 이주영 군대와 원호 군대가 서로 대치하였습니다.

 

이때 원호 쪽에서 다리를 다 파괴하고 황하를 굳게 지키자

이주영 군에서는 강을 건널 배가 없어 북으로 돌아갔다가 후일을 도모하자고 논의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때에 고도목이 위와같이 말한 것입니다.

즉, “북쪽으로 돌아가지 말고 대나무 뗏목을 만들어 황하를 건너면 이길수 있다.”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은 황문랑 양간의 말과 같은 것으로

이주영은 이 주장을 채택하여 황하를 건너 원호와 진경지를 괴멸시키고 낙양을 다시 찾습니다.

 

 

7월(가을)신사일(2일)에

위의 주군이 비로소 궁전으로 들어갔다. 고도목을 어사중위(御史中尉)로 삼았다.

 

황제의 누나인 수양공주가 가다가 경계를 단속하고 길을 깨끗이 하는 법령을 범하자

적봉(赤奉)을 쥔 병사가 꾸짓었으나 멈추지 않자 고도목이 병사를 시켜서 그 수레를 부수어버렸다.

(※적봉,赤奉:중위 앞에 가면서 길을 정리하는 병사가 가진 붉은 몽둥이)

 

공주가 황제에게 울면서 하소연하니 황제가 말하였다.

“고중위는 맑고 곧은 인사이며 저들이 행하는 것은 공적인 일이니 어찌 사사로이 그를 책망할 수 있겠는가?”

 

고도목이 황제를 알현하였는데 황제가 말하였다.

“내 집의 누나가 통행 길에서 법을 범하였으니 매우 부끄럽게 여기노라”

 

고도목이 관을 벗고 사죄하니 황제가 말하였다.

“짐이 경에게 부끄러운데 경이 어찌 사과하는가!”

 

이에 위에서는 세전(細錢)이 많아져서 쌀 한말이 거의 1천 전이 되자 고도목이 표문을 올려서 말하였다.

“시장에서 구리의 값은 81전으로 한 근을 얻을 수 있으니 사사로이 만든 얇은 동전을 만들면 한 근에 200을 만들게 되므로

이미 중대한 이익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또 무거운 형벌을 그들에게 시행하니 죄에 저촉된 사람은 비록 많으나 간악하게 주조하는 것은 더욱 많아졌습니다.

지금 동전은 오수(五銖)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으나 이수(二銖)의 실속도 없으며 그것을 물 위에 놓으면 거의 가라않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것은 마침내 따라하는 것이 물들어 가는데 법으로 막는 것이 절실하지 않고 조정에서는 이를 놓친 것이니

저들이 다시 무슨 죄이겠습니까!

의당 큰 동전으로 다시 주조하고 글자로는 연호를 싣고 그 처음을 기록하면 곧 한 근으로 만드는 것이 70전에 그칠 것입니다.

사사롭게 주조하는 비용을 계산하면 스스로 이윤이 날수 없고 곧바로 내놔도 이익이 없게 되니

스스로 그만두겠다는 마음을 들게 할 것인데 하물며 다시 엄격하게 형벌을 널리 시행함에 있어서야!”

......(중략).......

위의 주군이 그 말을 따랐는데 비로소 영안오수전(永安五銖錢)을 주조하였다.

 

※참고

이주영이 낙양을 다시 찾자 경종(제9대 효장제, 원자유)이 궁전에 들어간 것입니다.

 

이때 고도목은 황제(제9대 경종, 효장제 원자유)의 누나인 수양공주가 법령을 어겼다고

사람을 시켜 수양공주의 수레를 부수어 버립니다.

 

그리고 황제(제9대 경종, 효장제 원자유)에게 아뢰어 영안오수전(永安五銖錢)을 주조합니다.

 

 

530년 4월 갑술일(29일)

위에서는 관중을 평정하였기 때문에 크게 사면하였다.

묵기추노, 소보인이 낙양에 도착하였지만 창합문 밖에 있는 거리 속에 내버려 두니 사인과 여자가 모여서 구경하길 무릇 사흘이었다.

단양왕 소찬이 표문을 올려서 소보인의 목숨을 살려달라고 청하였는데, 이부상서 이신준, 황문시랑 고도목이 평소 소보인과 친하여 그를 도우려고 하여 위의 주군에게 말하였다.

“소보인이 반역하였지만, 그 일은 이전의 조정에서 있었습니다.”

 

마침 응조(應詔: 황제의 고문) 왕도습이 밖에서 도착하자 황제가 왕도습에게 물었다.

“밖에서 들은 것이 무엇인가?”

 

대답하였다.

“오직 이 상서(이신준)와 고 황문(고도목)은 소보인과 친밀하여 나란히 말을 하면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지위에 있으니

반드시 그를 온존하게 할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또 두 사람은 소보인이 반역한 것은 이전의 조정 시절에 있었다고 하나 소보인이 묵기추노의 태부였으니

어찌 폐하의 시대가 아니겠습니까? 역적을 행한 신하가 잘려지지 아니하면 법을 어디에서 시행하려고 하십니까?“

 

황제는 마침내 타우서에서 소보인에게 사약을 내리고 목기추노의 머리를 큰 저자에서 베었다.

 

※참고

위(북위)에서 관중을 평정하였다고 하는데 이때의 상황은 이렇습니다.

 

이주영이 낙양을 탈환하고 경종(제9대 효장제, 원자유)이 궁궐로 들어가자 이주영은 다시 진양(태원)으로 갔습니다.

 

이때, 묵기추노와 소보인이 관중(섬서성 중부)을 침범하여 소요를 일으키자

이주영은 자기 일족 이주천광을 사지절 도독이옹이기제군사(都督二雍二岐諸軍使) 표기대장군 옹주자사로 삼고,

하발악과 후막진열을 좌대도독과 우도독으로 삼아서 이주천광의 부장이 되어 그들를 토벌하게 하였습니다.

 

이에 이주천광군이 묵기추노와 소보인을 사로잡고 그들 군대를 괴멸시켰습니다.

그래서 관중을 평정하였다고 한 것이며, 포로로 잡힌 묵기추노, 소보인이 낙양에 도착하였고 한 것입니다.

 

이에 이부상서 이신준, 황문시랑 고도목이 소보인과 평소 친하여 그를 도우려고

위의 주군(경종, 제9대 효장제, 원자유)에게 말 한 것인데

성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만 고도목이 대단한 권한을 가졌음을 알수는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