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본기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제 28대 보장왕 (38)

상 상 2012. 4. 13. 19:09

< 당나라의 4차 침입 >

 

14 년 (AD 655) : 봄 정월. 이에 앞서 우리가 백제·말갈과 함께...

[번역문]

14년(655) 봄 정월. 이에 앞서 우리가 백제·말갈과 함께 신라의 북쪽 변경을 침범하여

33성을 빼앗았으므로, 신라 왕 김춘추(金春秋)가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원조를 구하였다.

2월에 고종(高宗)이 영주도독 정명진(程名振)과 좌위중랑장 소정방(蘇定方)을 보내

군사를 거느리고 와서 공격하였다.

 

여름 5월에 [정]명진 등이 요수를 건너니,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 군사가 적은 것을 보고 문을 열고 귀단수(貴端水)를 건너 마주 싸웠다.

 

[정]명진 등이 분발하여 [우리 군사를] 공격해서 크게 이기고 천여 명을 죽이고

사로잡았으며, 그 외곽과 촌락을 불지르고 돌아갔다.

 

15 년 (AD 656) : 여름 5월에 서울에 쇠가 비처럼 떨어졌다...

[번역문]

15년(656) 여름 5월에 서울에 쇠가 비처럼 떨어졌다. 겨울 12월에 사신을 당나라에 보내 황태자의 책봉을 축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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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국사기 원본 출처: http://koreandb.nate.com/history/saki/

 

2. 해설 및 분석:

 

1) 신라는 수나라가 고구려를 침략한 틈을타서 고구려의 성을 빼앗은 적이 있었습니다.

고구려는 수양제와 당태종도 물리치자 군사를 돌려 신라의 북쪽 변경을 쳐서 33성을 빼앗습니다.

 

이에 신라 태종 무열왕 김춘추가 당나라에 원조를 구하자

당나라는 이를 구실로 정명진과 소정방을 보내 고구려를 공격합니다.

 

2) 정명진등이 요수를 건너오니 고구려가 당나라 군사가 적을 것을 보고 귀단수를 건너 마주싸웁니다.

이쪽 전투에서 당나라 군의 힘이 다하니 더 이상 나가지 못하고 당나라 군은 퇴각합니다

 

 

※ 오늘 기사와 관련있는 신당서 동이열전

 

[영휘(永徽)] 6년(A.D.655; 高句麗 寶藏王 14)에 신라(新羅)가 고려(高[구,句)]麗)와 말갈(靺鞨)이 36성(城)을 빼앗아갔음을 호소하고,

천자(天子)께서 불쌍히 여겨서 구원해 줄 것을 빌었다.[註121]

조서를 내려 영주도독(營州都督) 정명진(程名振)과 좌위중랑장(左衛中郞將) 소정방(蘇定方)에게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치게 하였다.

신성(新城)에 이르러 고려병(高[구,句]麗兵)을 무너뜨리고 외성(外城) 및 촌락(村落)에 불을 놓고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