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매일경제, 입력 : 2017.01.31 17:53:16 수정 : 2017.01.31 20:13:30
10여년전엔 독일도 스마트공장에 반신반의 정부연구소가 주도해 프로젝트 일단 시작 머뭇거릴 여유없어…사업모델은 추후 발굴
◆ 4차 산업혁명 성공의 조건 2부 ① / 4차 산업혁명 발상지 獨자르브뤼켄 가보니 ◆
사진설명 독일 암베르크에 있는 지멘스 공장. 암베르크 공장의 자동화율은 75%가 넘는다. [사진 제공 = 지멘스]
독일연방인공지능연구소(DKFI)가 위치한 독일 서부 공업도시 자르브뤼켄. 1월 중순 4차 산업혁명의 발상지라고 할 수 있는 이곳을 찾았다. 한국보다 한참 앞서 4차 산업혁명을 추진했으니 그 선점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앞선 자의 여유 따윈 찾아보기 어려웠다. 현지 연구원들은 오히려 막다른 길에 도달한 이들에게서나 풍기는 독기를 품고 있었다.
황종운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유럽연구소 스마트융합그룹연구단장은 "독일의 '인더스트리 4.0'(제조업 부문 4차 산업혁명을 일으키겠다는 독일 국가정책)에 대한 연구는 진지하고 활발하다"며 "이들에게는 절박함이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독일은 2000년대 초반부터 자국에 닥쳐 올 제조업 위기를 체감하고 있었다. 중국의 저비용 노동력이 전 세계 제조업의 단가 경쟁력을 추락시키고 있었기 때문에 독일 제조업은 말 그대로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로 변해야 했다. 수익성을 따지기 이전에 생존의 문제였던 것이다.
황 단장은 "독일도 처음에는 스마트공장을 어떻게 세울지에 대한 활발한 토론을 진행했는데, 나중에 보니 토론에 시간을 허비할 게 아니라 먼저 (인더스트리 4.0에 맞는) 시스템부터 갖추고 확산시켜야겠다는 생각에 이르게 됐다"고 말했다.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고민을 해결하고 떠난 것이 아니라, 일단 출발부터 한 다음 길을 찾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DKFI 주도로 2005년 시작된 '스마트팩토리KL' 프로젝트는 오늘날 독일의 4차 산업혁명 국가정책인 '인더스트리 4.0'의 원류로 일컬어진다. 기업들이 서로 모여 기술을 교환하고 협력을 통해 정보기술(IT)·인공지능과 제조공장을 결합시키는 논의를 하는 일종의 민간협회다. 자르브뤼켄은 결국 전 세계 4차 산업혁명이 태동한 발상지인 셈이다.
그런데 12년이 지났지만 이 협회는 아직도 절박한 초심 그대로다. 2주에 한 차례 그룹별로 의견을 주고받는 전화회의에서 이런 모습은 적나라하게 등장한다. 특정 기술을 두고 열린 토론을 할 것 같지만 사실 상대방이 어떤 연구를 하는지 속내를 파악하기 위해 포커게임 같은 실랑이를 벌이는 장(場)이 되기 때문이다.
연간 1만5000유로라는 회원비가 있지만 '뒤처지면 안 된다'는 심정 때문에 많은 기업들이 참여하면서 서로를 정탐한다. 2005년에 7개 기업이 처음으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47개로 회원사가 늘었고, 최근에는 중국 화웨이도 참여 의사를 밝혔다. 통상 다른 협회들이 기획을 담당하면서 심포지엄을 열거나 의견 교환에 역점을 두는 반면, '스마트팩토리KL'은 실제 회원사들과 함께 한발 진전된 기술을 생산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김흥남 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원장은 "독일의 의지와 절박함을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평가했다.
독일 제조업 전반에 감도는 이런 절박함은 이 나라가 갖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의 선구적 이미지와는 이질적이다.
세계경제포럼(WEF) 설립자인 클라우스 슈바프 회장이 창안한 것으로 알려진 '4차 산업혁명'은 사실 독일 '인더스트리 4.0' 정책집에 처음 등장했던 용어다. 독일은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당선된 이듬해인 2006년부터 범정부 차원에서 제조업 혁신을 위한 연구개발 전략을 세웠다.
2012년에는 공식적으로 '인더스트리 4.0'이라는 명칭을 붙였고, 2013년 '플랫폼 인더스트리 4.0'이라고 바꾸어 이제는 단순한 제조업 자동화를 넘어 제조업 자동화의 국제표준(플랫폼)을 만들겠다고 나서고 있다.
누구보다 제조업이라는 산업을 중심으로 한 4차 산업혁명에서는 오래된 역사를 가진 나라가 독일이다. 중소기업들의 제조업 기술력에 있어서는 한국에 한참 앞서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작 독일은 '여유 따위는 우리에게 허락되지 않는다'는 자세로 4차 산업혁명에 임하고 있다. 그 배경에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23%를 차지하는 제조업의 높은 비중이 있다.
글로벌 컨설팅회사인 딜로이트와 미국 경쟁력위원회가 3년마다 세계 각국의 제조업 경쟁력 지수를 발표하는데, 2013년 전 세계 2위였던 독일은 지난해 3위로 떨어졌다. 값싼 노동력의 중국은 그렇다 치더라도 기술진보가 두드러지는 미국 앞에 독일의 제조업은 목까지 물이 차는 느낌을 받고 있다. 임채성 건국대 교수는 "GDP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35%에 육박하는 한국의 위기감이 독일만큼 충만한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독일이 추진해 온 '인더스트리 4.0'에 문제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기존 기업들은 변화의 필요성을 절감하지 못했다. 향후 경제성에 대한 불확실성과 정보 노출 위험성 때문에 기업들은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독일이 이 문제를 대응한 방법은 '변화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절박함에서 나온 협력이었다.
독일 정부와 민간은 '인더스트리 4.0' 문제 해결을 위해 2014년에 '플랫폼 인더스트리 4.0'을 설립하고 종업원 250명 미만 기업 60개를 선정해 스마트 공장화를 적용시키기로 했다.
이는 선정된 대기업(종업원 1만5000명 이상) 숫자 64개와 맞먹는다. 황 단장은 "중소기업도 제조업 경쟁력 향상을 위한 4차 산업혁명에 동참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정부와 산업계의 의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 신현규 차장(팀장) / 라스베이거스 = 손재권 특파원 / 임성현 기자 / 김대기 기자 / 자르브뤼켄(독일) = 원호섭 기자 / 박은진 기자 / 김연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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