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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서 전쟁암운 걷어낼 해법

상 상 2016. 9. 22. 18:17

출처: 매일경제, 기사입력 2016.09.21 17:38:22 | 최종수정 2016.09.21 17:40:19   


독일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1989119일 이후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와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은 급진전되고 있는 독일 통일에 노골적으로 반대했다. 두 정상은 다시 제1, 2차 세계대전 같은 악몽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를 강하게 제기했다. 이들의 적극적인 주장으로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서독 동독이 참여하는 6자회담에서 동서독 통일문제를 논의하기로 했다. 하지만 헬무트 콜 서독 총리의 생각은 달랐다. 6자회담 틀로 들어가면 통일이슈가 안갯속으로 빠져들 수 있다고 판단한 그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러시아 대통령과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달려갔다. 고르바초프에게는 막대한 경제 지원과 동독 주둔 러시아군 철수비용 일체 부담을 약속했다. 부시 대통령에게는 유럽에서 나토체제가 더 굳건해질 것이라고 설득했다. 당시 미국·러시아 패권시대의 구도를 읽고 입맛 당기는 카드를 들이대 경제 및 정치통일까지 1년 안에 마무리 지은 것이다. 여기에는 물론, 서독의 막강한 경제력을 기반으로 한 대동독 동방정책이 주춧돌 역할을 했다.

 

우리나라는 지금 어디쯤 와 있나. 북한은 벌써 다섯 번째 핵실험을 강행했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예고했다. 미국은 북핵 선제타격 방침을 정하고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우리 내부에서는 핵무장론이 나온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보론코프 국제원자력기구(IAEA) 대사는 "한반도에서 핵전쟁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미 국방부 기밀문서를 근거로 한반도에서 핵폭탄 1발이 터지면 서울에서만 62만명이 사망할 것이라는 시나리오도 나왔다. 우리 일각에서는 100만명의 희생을 각오하고라도 이번에 북한 정권을 끝장내자는 주장도 나온다. 무서운 얘기다. 희생을 피할 방법이 있는데 이렇게 꼭 대규모 살상자를 내야 하는가.

 

설사 이런 희생을 치르더라도 우리 주도의 통일을 이룬다는 보장이 없다. 북한을 완충지대로 놓고 미국과 맞서고 있는 중국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중국은 북한 내 급변사태를 대비해 해마다 압록강, 두만강을 넘나드는 도상훈련을 하고 있다.

 

한반도의 평화는 스스로 지켜야 한다. 확고한 방위력을 갖춰야 하고, 모든 수단을 동원해 최악의 상황을 막아야 한다.

 

이 대목에서 꽉 막힌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열었던 고 정주영 회장의 소떼방북을 되새겨본다. 정 회장은 19984월 소 500마리를 끌고 판문점을 통해 방북하겠다고 제안했다. 식량난으로 고생했던 김정일 체제지만 선뜻 받지 못했다. 북한은 중국 경유를 제안했다. 정 회장은 거절하고 1000마리를 보낼 테니 판문점을 열라고 통보했다. 결국 정 회장은 `1000+1`마리를 현대에서 만든 트럭 100대에 실어 1(616), 2(1030)에 걸쳐 북한에 보냈다. 1마리는 앞으로도 계속 대북사업을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특히 정 회장은 소떼에 임신한 소들을 포함시켜 북한을 감동시켰다. 소떼방북을 계기로 남북관계 돌파구가 열렸고 금강산 관광이 시작됐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간 남북정상회담(20006)이 이뤄졌고 개성공단사업이 시작됐다. 당시 소떼방북은 CNN을 통해 전 세계에 생방송됐고 한반도를 화해의 평화지역으로 인정받게 했다. 정치인이나 관료들 머리에서는 나올 수 없는 돌파구였다.

 

초긴장 상태인 남북상황에서 정 회장처럼 남북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는 해법이 나오길 소망한다. 그러려면 일단 남북 간 대화채널부터 가동해야 한다. 중국 삼국 대립시대를 비롯해 수많은 전쟁 와중에도 `특사`가 가동됐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김일성 북한 주석을 만나고 온 것도 남북관계가 극도의 긴장관계였던 19725월이었다. 이후 2개월 만에 7·4남북공동성명이 나왔다.

 

한반도에서 전쟁의 암운을 걷어내고 화해, 협력,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는 리더십이 가동돼야 한다. 북한의 무력 도발에 대비한 사드 배치 등 실질적인 준비를 해야 한다. 콜 총리처럼 미국, 중국 등 강대국을 설득할 수 있는 배짱과 지혜도 발휘돼야 한다. 어디로 튈지 모를 김정은을 매니지(manage)할 전략도 필요하다. 특히 북한 내 흔들리는 엘리트들과 새로운 시장경제세력으로 등장한 장마당 상인들의 변화 열망을 북한체제 변화로 이끌 전략이 있어야 한다. 이것은 차기 대통령을 꿈꾸는 후보가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요건이다.

 

한반도를 평화롭게 지켜낼 철학과 전략이 없는 후보는 대통령 자격이 없다. 그런 선수는 대권후보 대열에 끼지 마라. 역사와 국민 앞에 죄짓는 짓이다.

 

[서양원 편집국 국차장 겸 레이더총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