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구조적 침체는 이미 시작됐다

상 상 2016. 4. 21. 17:28

출처: 매일경제, 기사입력 2016.04.20 17:20:34 | 최종수정 2016.04.20 17:25:52

 

`떠오르는 태양`으로 불리던 위치에서 `지는 해`로 전락했던 일본은 장기침체 탈출에 몸부림치고 있다. 하지만 `바로 그때, 바로 그 사람(The Right Man at the Right Time)`이라는 표현처럼 벤 버냉키의 시의적절한 결단과 지휘 아래 디플레이션을 초입에서 저지한 미국과 달리, 일본은 디플레이션으로 가라앉은 20년 세월의 무게만큼 고착화된 경기침체를 벗어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런데 이제 한국 경제가 디플레이션 초입에서 더 나아가 `경기침체의 장기 구조화`로 향하고 있다. `잃어버린 20`에 돌입한 1990년대 초반 일본의 평균소비성향이 74%였는데, 2012년 우리나라 평균소비성향이 74%가 된 이래 최근 71%까지 하락한 것은 이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지표다.

 

특히 언급한 2012년은 생산자물가상승률이 마이너스에 돌입하며 생산 측면 디플레이션이 사실상 시작된 해이다. 즉 기업이 만들어낸 제품 가격이 본격 하락하기 시작했고, 이후 생산자물가는 지속적으로 떨어졌다. 이는 기업들이 판매 부진 내지 재고 누적에 노출됐음을 뜻하며, 투자와 일자리 창출이 난망하다는 의미이다.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는 `만성적 소비 감소와 이에 따른 과잉 저축``구조적 장기침체(secular stagnation)`의 핵심으로 강조한다. 경제발전 초기에는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증대시켜 자본을 축적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 단계를 넘었는데도 소비가 부족하면 과잉 설비로 경기침체에 시달리게 된다. 따라서 가처분소득 가운데 얼마가 소비되는지를 나타내는 평균소비성향의 지속적 감소는 침체의 구조화를 나타내는 위험한 신호이다. 서머스가 제기한 `구조적 장기침체`는 앨빈 한센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가 1930년대 주장했던 오랜 전통의 이론인데, 인구 증가나 기술 혁신으로 새로운 소비 수요를 창출하지 못하면 경기침체에 직면할 수밖에 없어 재정지출 확대로 대체수요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이론은 한센이 주장한 대규모 재정지출이 불가피했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경기가 살아나자 관심이 낮아졌다가 최근 다시 각광받고 있다.

 

그렇다면 일본처럼 장기 침체에 직면한 한국 경제의 돌파구는 무엇일까? 만성적인 소비 부족이 경기침체 구조화로 이어지며 실제 평균소비성향 감소가 나타나고 있다면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소비 증진을 위한 종합적이고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특히 현재처럼 장기 경기침체에 이미 돌입한 상태에서는 어느 한 정책만으로 상황을 반전시키기 어렵다.

 

복합적으로 추진돼야 할 핵심 정책으로는 금리 인하를 포함한 적극적인 통화정책, 소득 이전(移轉) 형태의 재정지출 확대, 소비대체 수요 확보를 위한 인프라스트럭처 투자 등이 있다.

 

다양하지만 소비 부진 타개라는 공통 목표는 분명하다. 거의 모든 국가들이 금리를 낮추고 적극적인 통화정책을 사용하는 이유는 가계가 소비를 줄이고 기업이 투자를 축소해 금융회사에 화폐자본을 쌓는 방식으로는 이득을 얻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저소득층의 경우 소득 대부분을 소비에 쓸 수밖에 없어 평균소비성향이 높다는 점을 고려해 재정지출 형태로 저소득층에 소득 이전을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부족한 수요는 인프라 투자로 보충하게 된다.

 

흔히 거시관리정책으로 불리는 이러한 요소들과 함께 구조개혁으로 한국 경제의 생산성을 높이고 장기적인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정권 초기도 아닌 대선 같은 정치 일정이 놓인 상황에서 이해관계자가 얽힌 구조개혁은 수사(修辭)에 그치고, 적시 합의를 통한 실행이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 그러한 상황에서 적시에 적절한 대응으로 소비 수요를 확보하지 못하고 시간만 허비한다면 한국 경제는 정말 더 헤어 나올 수 없는 심연(深淵)의 침륜(沈淪)에 빠질 것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