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통일신라와 당의 관계-203,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47, 안사의 난-16)

상 상 2016. 3. 9. 18:51

통일신라와 당의 관계-203,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47, 안사의 난-16)

 

차례

 

. 관련 사료

1. 구당서 토번전()

2. 구당서 토번전()

3. 신당서 토번전

4. 구당서 돌궐전

5. 신당서 돌궐전

6. 구당서 측천본기

7. 신당서 측천본기

8. 구당서 거란전

9. 신당서 거란전

10. 구당서 발해전

11. 신당서 발해전

12. 구당서 숙종본기

13. 구당서 회홀전

14. 신당서 회골전

15. 구당서 남조전

16. 신당서 남조전

17. 구당서 신라전

18. 신당서 신라전

19. 삼국사기 신라본기

 

.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

1. 이진충의 난 이전

2. 이진충의 난

3. 돌궐족 묵철의 침공

4. 안사의 난

5. 토번의 침공

6. 토번의 침공 이후

7. 민란의 발생과 남조의 침공

8. 황소의 난

9. 절도사의 시대

10. 당의 멸망

 

. 통일신라와 당

1. 통일신라 이후의 당나라 약사

2. 신구당서에 의한 통일신라와 당

3.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의한 통일신라와 당

4. 사료를 통합해서 본 통일신라와 당의 관계

 

 

.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

1. 이진충의 난 이전

2. 이진충의 난

3. 돌궐족 묵철의 침공

4. 안사의 난.

1) 연표

2) 분석 및 해설

3) 요약

 

 

2) 안사의 난, 분석 및 해설 - 11()

 

아무튼 7621026일 회홀의 등리가한이 직접 이끌고 있는 10만 대군이 중심이 된

회홀과 당나라 연합군이 사조명 군에 대한 공격을 개시하자 2일만인 1028일에 낙양을 함락한다.

 

사사명이 759927일 낙양을 점령한 이래 7621026일까지

당나라가 3년을 넘게 해결 못한 일을 회홀은 단 2일만에 해결한 것이다.

 

이것을 보아도 회홀과 당나라의 국력 격차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신구당서에는 회홀이 당나라에 조공을 했다느니

당나라가 회홀을 책봉을 했다느니 하고 있으니

개가 웃을 일이며 조공과 책봉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아무튼 낙양이 함락됨에따라 사조의는 범양(북경)으로 도주한다.

 

해를 넘겨,

 

76319일 이후 사조의가 범양에 도착하였으나 반란이 일어나 들어가지 못하고,

평주로 달아났으나 복고회은의 아들 복고창과 회흘의 무리가 2천여 리를 추격해

평주(平州) 석성현(石城縣: 하북성 난현))에 이르러

[사조의]의 머리를 잘라 걸고 돌아옴으로써 하북이 모두 평정되었다.

 

그리고, 763130일 사조의의 수급이 장안에 도착함으로써 안사의 난이 완전히 끝을 맺는다.

이렇게 오로지 외세에 의해 목숨을 부지했던 것이 안사의 난 당시의 당나라였던 것이다.

 

당나라는 왜 이 지경까지 되었을까?

 

그것은 668년 고구려의 평양을 차지하면서부터 이다.

그때부터 고구려 부흥군이 일어나고 그러자 당나라가 고구려 지역에 군대를 파견하여

이로부터 동쪽에서 신라와 고구려 부흥군이 연합하여 당나라와 싸우자,

서쪽에서도 토번과 전쟁이 일어나 서쪽에서 패하니

동쪽에만 군사력을 집중하여 무려 5년이나 전쟁을 하였지만

결과는 두 번에 걸친 신라의 대승으로 끝났다.

 

그 결과 당나라는 평양에서 요동성으로 다시 요동성에서 신성으로 쫓겨났다.

이렇게 동쪽에서 밀려나자 동쪽에서는 고구려에 대해 간접지배(기미정책)로 전환하고,

서쪽 토번과만 전쟁을 하였으나

 

또 토번에게 패하자 그동안 숨죽이며 지내오던 돌궐에게 분풀이 공격을 하였는데

이것이 또하나의 커다란 실수가 되었다.

 

이로부터 다시 돌궐이 일어나 당나라와 전쟁을 하게 되어

당나라는 또다시 북쪽 돌궐과 서쪽 토번이라는 2개의 전쟁을 치르게 된다.

그런 식으로 당나라가 또다시 군사력을 소진하는 가운데 커다란 사건이 터진다.

 

그것이 바로 696년에 터진 이진충의 난이다.

이진충의 난이 일어나자 당나라는 또다시 커다란 군사력 소진을 하게 되고

이 여파로 발해가 건국하여 옛 고구려 지역에서 다시는 발을 못 붙이게 되고

돌궐이 다시 강대해져 당나라는 돌궐에게 심하게 시달리면서

또다시 군사력 소진을 겪게 된다.

 

서쪽에서는 토번에게 시달리자 공주를 바치고 하서구곡을 바치며 겨우 평화를 얻었으나

계속하여 당이 토번을 배반하며 전쟁을 도발을 하여 군사력 소진을 하고 있었고

이진충의 난 이후 다시 활동하는 거란에 대해서는 공주를 바쳐가며 달래다가

거란의 반란이 또다시 일어나자 군사력을 투입하였으나

결국에는 또다시 패하여 이쪽에서도 군사력 소진이 있어

당나라의 군사력은 고갈 될대로 고갈되어가고 있었다.

이러한 불안한 시기에서 또다시 당나라를 뒤흔든 사건이 터졌다.

 

그것이 바로 755년에 터진 안록산의 난이다.

그것은 669년부터 86년간 지속적으로 일어난 당나라의 군사력 소진으로 인한

당나라의 군사력 고갈은 고갈 될대로 고갈이 된 상황에

이로인한 국력의 고갈이 심각하게 되어

당나라가 이미 지칠대로 지친 상태에서 안록산 난이 일어난 것이다.

그래서 회홀이라는 이름없는 나라가 당나라를 두 번씩이나 살려주게 된 것이다.

 

이러하였기 때문에 신당서 북적열전 찬자평(撰者評)에서

천보(742~755)이후로는 중국이 깨어지고 상하여,

천자의 군대가 북으로는 황하를 건너지 못하고

서쪽으로는 진주(秦州빈주(邠州)에 그치고 말았다.고 한 것이다.

 

진주(秦州): 감숙성 천수현-甘肅省 天水縣, 장안 서쪽 279km

빈주(邠州): 서성 빈현-陜西省 彬縣, 장안 북서쪽 96km

 

그런데 무슨 당나라가 조공책봉 체제로 동아시아를 지배했다느니

기미정책으로 동아시아를 간접 지배하였다느니 하는

얼토당토한 거짓말 사기를 치는가?

그리고 왜놈들의 그 말이 사실인줄 알고

동아시아는 당나라의 조공책봉 체제 하에 있었으므로

당연히 고구려와 신라는 당나라의 지배하에 있었다고 떠드는

식민사관의 개들이 떠벌리는 말이 개수작 아니고 또 무엇이겠는가?

 

하여튼 역사에 무지한 것들이 역사 전문가를 자처하고,

역사 사기꾼들이 역사학자라고 자처하는 식민사관의 개들이 펼치는 꼴을 보면 참으로 가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