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2%나 쪼그라든 세계 무역액

상 상 2016. 2. 19. 18:08

출처: 조선일보, 입력 : 2016.02.19 03:06 | 수정 : 2016.02.19 03:27

 

[한국경제 78%가 무역인데수출액 56조원 줄었다]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 6위로 한단계 올랐지만 '초비상'

GDP 대비 무역 비중 23%·33%·42%한국 유독 높아

 

- 세계는 이미 각자도생

공급과잉·저유가단가 하락교역보다 내수 활성화에 초점

- 한국, 무역으로 성장 시대 끝나

규제 풀어 ·투자 끌어들이고 '가계보다 기업 중시' 풍토 바꿔야

 

전 세계 무역 규모가 급감하는 이상 현상이 심화되고 있어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암운을 드리우고 있다. 18WTO(세계무역기구)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무역량()은 전년보다 약간 늘어났으나(2.8% 증가) 유가 하락 등 여파로 수출 단가가 급감하는 바람에 세계 무역액()1년 전보다 11.8%나 급감했다. 2차 대전 이후 세계 무역액이 두 자릿수로 감소한 것은 글로벌 금융 위기 여파로 경기가 급랭한 2009(-22.5%)과 지난해뿐이다.

 

세계 무역 규모가 급격히 쪼그라들면서 세계 10대 수출 국가 중에 수출액이 증가한 나라는 단 한 나라도 없었다. 전통적 수출 강국인 독일(-11.1%)이나 일본(-9.4%) 모두 수출액이 10% 안팎으로 줄었다. 10대 수출국 중 상대적으로 수출 감소 폭이 작은 나라는 홍콩(-2.6%)·중국(-2.9%)·미국(-7.1%)·한국(-8.0%) 등이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세계 7위이던 수출 순위가 지난해 6위로 한 단계 올랐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전 세계는 '세계화'를 모토로 활발한 교역을 통해 성장을 이끌어내는 전략을 펴왔다. 실제로 매년 세계 무역 증가율이 세계 경제성장률의 두 배를 훨씬 넘어 '21의 법칙'이 정설로 굳어져 왔다. 그 과정에서 수출 주도 전략을 편 한국·대만·홍콩·싱가포르 등 아시아의 용 네 마리 성장 신화를 만들 수 있었다. 이들을 뒤따라 개혁·개방 정책을 앞세운 중국이 수출을 기반으로 고도성장을 이어가면서 세계 2위 경제 대국으로까지 올라섰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를 계기로 과거의 성장 공식은 깨지기 시작했다. 미국·중국·유럽 등 주요 국가들이 푼 돈은 60% 넘게 불었지만(2007년 약 38조달러201562조달러), 세계 경제는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다. 특히 교역이 세계의 성장을 주도해온 상황이 급변해 작년 세계 무역량 증가율(2.8%)은 세계 경제성장률(3.1%)에도 못 미쳤다.

 

전 세계에서 한국의 수출 순위는 글로벌 금융 위기 당시인 2008년만 해도 12위였으나 20099, 20107위로 뛰어오른 뒤 5년 만에 또다시 한 계단 올라 세계 6위가 됐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수출도 지난해부터 빠르게 줄고 있어 상대평가에서 선방한 것이지 절대평가 점수가 높아진 건 아니다. 우리나라는 2011년부터 4년간 무역 1조달러 시대를 열었으나 지난해 수출입액이 모두 줄면서 무역 1조달러 대열에서 뒷걸음질쳤다. 지난해 수출은 1년 전보다 8.0% 감소했다. 감소한 수출액은 458억달러(56조원)에 이른다.

 

세계 무역이 침체되는 것은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선진국들의 경기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 데다 석유화학·조선·철강 등 분야에서 중국발() 공급 과잉이 극심해지면서 제품 가격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또 무역으로 성장을 나누고 공생하자는 움직임보다 각국이 내수를 키워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길을 가겠다는 움직임이 강해지면서 국제 무역 침체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장은 "세계 경제성장률이 최근 3%대 초반까지 떨어지면서 국가 간 물동량이 둔화되고 있고, 저유가와 철강·조선·석유화학 등의 공급 과잉에 따른 수출 단가 하락까지 맞물려 글로벌 무역이 깊은 침체에 빠져들고 있다"고 말했다.

 

"무역, 예전처럼 활성화되기는 어렵다"

 

IMF와 세계은행은 2014년 공동 보고서에서 "글로벌 무역 증가율이 둔화되는 추세는 경기 변동과 상관없는 구조적 요인이어서 세계 경기가 회복되더라도 이전처럼 무역이 늘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2014년 기준 GDP 대비 수출입액 비중은 78%로 미국(23%)·일본(33%)·중국(42%) 등에 비해 현저하게 높다. 전 세계 교역이 구조적으로 늘어날 수 없다면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막대한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수출 증가율이 1%포인트 떨어지면 경제성장률은 0.2%포인트 떨어지는 것으로 추정한다. 유일호 부총리는 18일 한국경영자총협회 주최 최고경영자 연찬회 강연에서 "우리 경제를 둘러싼 외부 환경이 예상보다 더 어려워졌다"면서 "G2 리스크가 있는데, 내 생각엔 (일본과 유럽을 더해) G4 리스크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외부 리스크가 커지는 것을 우려했다.

 

수출 감소로 성장률이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선 내수 진작책이 절실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송병락 서울대 명예교수는 "규제를 확 풀어 중국·일본이 한국에 투자하지 않고서는 견디지 못하게 만들겠다는 정도로 판을 바꾸는 내수 확장책이 필요하다""아시아를 수출 시장으로만 보지 말고 우리의 부족한 내수를 보완하는 시장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존 리 허드슨연구소 수석 연구원은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낸 '동아시아는 새로운 성장 공식이 필요하다'란 기고문에서 "내수 기반 소비 경제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가계보다 기업을 우선시하는 풍토를 바꿔야 한다""기업에 투자 보조금을 주기보다는 소비를 진작할 수 있는 정책이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 새로운 성장 공식이 필요"

 

세계 무역이 최악으로 가는 와중에도 견디고 있는 우리나라 수출이 더 이상 무너지지 않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세계 수출 순위가 올랐다고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자동차·철강·휴대폰 등 우리나라의 5대 주력 수출 품목이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34.6%로 전년 대비 0.5%포인트 정도 줄었다. 대신 이를 화장품(증가율 54%)과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29%) 등으로 메워 순위 상승을 이뤄냈다. 문병기 국제무역연구원 수석 연구원은 "우리가 다른 국가에 비해 선전한 원인은 미흡하나마 수출 품목 다변화가 이뤄지는 데다 뷰티, 음식, 문화 콘텐츠 등 이른바 K3의 수출 증가, 그리고 중소·중견기업 수출 증가 등이 도움이 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새로운 수출 시장을 개척하고, 석유화학·조선 등을 보완할 주력 상품도 찾아내야 한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세계적 저성장으로 수출이 부진하리라는 우려가 있지만, 미국 성장률이 상승하고 중국 정부의 소비 주도형 성장 전략이 본 궤도에 오르면 우리나라 수출도 회복될 수 있다""·FTA(자유무역협정) 발효로 중국에 대한 수출이 늘어나고 인도·베트남 등 아시아 신흥 시장과 교역이 늘어나는 것도 희망적 요인"이라고 말했다.

 

방현철 기자, 이인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