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유라시아 호령한 고조선 기마군단…8000㎞ 초원길에 한민족DNA

상 상 2016. 1. 4. 17:58

출처: 매일경제, 입력 : 2016.01.03 18:24:50 수정 : 2016.01.04 10:58:39

 

세계4대문명보다 1000년 앞선 고대 `훙산문화` 존재

`스키타이` 암각화·고분군, 한반도의 유목문화와 연결

 

최승진 기자

김석동 명예기자 지평인문사회대표

 

매경 명예기자 리포트 / 김석동의 실크로드 대장정 ① ◆

 

중국 랴오닝성 네이멍구자치구 접경지역. 뉴허량(牛河梁) 2지구 유적지는 드넓은 땅에 지붕을 올린 채 발굴작업이 지속되고 있었다. 붉은 흙으로 넓게 다져진 이 땅에는 옛 신전이 들어섰던 터와 여신의 묘가 있던 터 등이 곳곳에 남아 있다. 1983~1985년 이 지역에서는 기원전 3500~3000년께 초기 중앙집권국가 흔적을 보여주는 적석총, 여신묘, 대형 제단, 옥기 등 유적·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이들 유물의 발견은 계급이 완전 분화되고, 사회적 분업이 이뤄진 중앙집권국가가 존재했음을 입증한다. 이 문명은 중국사에도 나타나지 않는, 그동안 중국이 자신들의 문명이나 문화라고 주장한 바 없었던 지역에서 홀연히 나타났다.

 

세계 4대 문명권보다 적어도 1000년 이상 앞서는 고대문명으로, 세계역사와 문화사를 다시 쓰게 하고 있다. 이것이 '훙산문화'.

 

네이멍구자치구 츠펑(赤峰)시 인근 샤자뎬이란 촌락에서 발굴된 '샤자뎬하층문화'는 기원전 2400~1500년 청동기시대에 지금의 롼허·랴오허 사이 요서지방에 강력한 중앙집권국가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이 문화 역시 중국의 황하문명과는 전혀 다른 독자적인 문명권이다.

훙산문화와 샤자뎬하층문화는 단군조선과 그 선대 문명이 아니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 한민족 고대국가인 배달국·고조선의 존재와 직결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면 한민족의 유래와 고대 역사가 밝혀지는 무대가 새롭게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훙산지역 일대에서 많은 적석총이 발굴되고 있는데, 이는 한민족 고대 묘제다. 현지 안내인은 이곳 사람들은 예로부터 적석총을 '가오리 무(고구려 묘)'라고 부른다고 알려줬다.

 

유라시아 대초원에서 '기마군단' 역사가 전개됐다. 북방민족인 흉노, 선비, 돌궐, 몽골, 여진 등은 최강의 제국을 건설해 세계사 중심 무대에서 대활약했다. 그러나 이들은 기록을 별로 남기지 않았고, 유럽은 이들에 대해 무지하거나 인색했다. 그래서 기마군단 역사는 왜곡되고 잊힐 수밖에 없었다. 이들 역사는 이제 당연히 새롭게 평가돼야 한다.

 

한민족의 고조선은 이들보다 훨씬 앞서 유라시아 스텝(중앙아시아·동아시아 내륙부에 위치한 초원지대) 동부지역에 기념비적인 고대국가를 건설하고 동북아를 장악하는 대역사를 시작했다. 중앙아시아에서 출발해 바이칼 호를 지나 몽골고원과 대싱안링 산맥을 건너 남하하면서 문명권을 이뤄낸 한민족 삶의 흐름이 2500년의 유라시아 기마민족 역사로 이어졌다고 해야 할 것이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1931'조선상고사', 북한학자 리지린은 1963'고조선 연구'를 썼다. 이어 1982년에는 러시아의 유엠 푸진이 '고조선 역사'를 썼다. 이들이 쓴 고조선은 우리가 아는 고조선이 아니다. 적어도 기원전 24세기께 존재했던 이 나라는 더 이상 신화가 아니다. 세계사를 주도한 '유라시아 기마군단' 원류로서 역사에서 다시 자리매김돼야 한다. 역사는 그 땅의 과거사가 아닌 민족 삶의 흐름이다.

고조선이란 동아시아 최강의 국가가 어떻게 형성됐고 또 이어졌는지, 이제 그 역사가 한민족 성장 DNA를 설명해 줄 차례다. 헤로도토스에 의해 최초로 역사에 기록된 기마군단은 '스키타이'. 중앙아시아에서는 기원전 9세기께 말의 기동력을 활용한 강력한 전투집단, 스키타이가 등장했다. 이들은 메데(메디아·기원전 8세기에 이란 고원 서북부에 메디아인이 세운 왕국)를 정복하고, 페르시아 다리우스 왕의 70만 대군을 격파하는 등 가공할 전투력을 과시하면서 중앙아시아와 우크라이나 일대를 장악했다.

 

헤로도토스는 '역사'에서 기록을 남겼다. "스키타이는 아시아 유목민으로 그들이 추격하는 자는 아무도 벗어나지 못하고, 아무도 그들을 따라잡을 수 없다. 도시도 성채도 갖지 않고 어디를 가나 집을 가지고 다니며 모두 말 위에서 활을 쏠 줄 알았다."

 

스키타이의 전술·전법은 이후 등장하는 기마군단의 전형이 됐다. 그런데 스키타이의 대규모 고분, 금문화, 암각화, 청동무기, 마구, 동물 모양 장식 등과 유사한 유적과 유물이 기마군단이 활약하던 땅과 한반도에서도 발굴되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스카타이 문화는 거대한 고분으로 대표된다. 땅속 목곽 위에 돌무지와 흙으로 덮은 무덤으로 무기·마구·동물장식 등 청동 유물이 발굴됐다.

 

스키타이인들은 황금을 숭배 대상으로 해 카자흐스탄과 신장웨이우얼북부지역에서 금동기구들이 다수 출토됐다. 바위에 새겨진 그림, 암각화는 알타이지역(중앙아시아 고원 지대로 몽골·중국·카자흐스탄·러시아 4국 국경이 접하는 지역)에서 발견되고 있다.

 

한반도에서도 적석총·금관 등 황금문화는 물론 많은 유목문화 흔적이 남아 있고, 울주군 천전리 암각화와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등 알타이 암각화와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 다수의 암각화도 존재한다. 스키타이와 한민족 문화 간 연관성에 대해서는 앞으로 많은 관심과 연구가 필요하다.

 

[김석동 명예기자 / 도움 = 최승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