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통일신라와 당의 관계-160,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4), 이진충의 난 -1)

상 상 2015. 11. 20. 17:45

통일신라와 당의 관계-160,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4), 이진충의 난 -1)

 

차례

 

. 관련 사료

1. 구당서 토번전()

2. 구당서 토번전()

3. 신당서 토번전

4. 구당서 돌궐전

5. 신당서 돌궐전

6. 구당서 측천본기

7. 신당서 측천본기

8. 구당서 거란전

9. 신당서 거란전

10. 구당서 발해전

11. 신당서 발해전

12. 구당서 숙종본기

13. 구당서 회홀전

14. 신당서 회골전

15. 구당서 남조전

16. 신당서 남조전

17. 구당서 신라전

18. 신당서 신라전

19. 삼국사기 신라본기

 

.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

1. 이진충의 난 이전

2. 이진충의 난

3. 돌궐족 묵철의 침공

4. 안사의 난

5. 토번의 침공

6. 토번의 침공 이후

7. 민란의 발생과 남조의 침공

8. 황소의 난

9. 절도사의 시대

10. 당의 멸망

 

. 통일신라와 당

1. 통일신라 이후의 당나라 약사

2. 신구당서에 의한 통일신라와 당

3.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의한 통일신라와 당

4. 사료를 통합해서 본 통일신라와 당의 관계

 

 

.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

1. 이진충의 난 이전

2. 이진충의 난

1) 연표

2) 연표 분석 및 해설

3) 요약

 

1) 연표

이 연표는 이제까지 올린 신구당서 측천황후 본기, 거란전, 발해전, 돌궐전 등의 관련 사료를

연도순으로 풀어서 작성한 것임.

 

이진충의 난(696 ~ 697)

기 사

696

5영주(營州)성 곁에 있던 거란 수령 송막도독 이진충과 그 손위 처남 귀성주 자사 손만영이 도독 조문홰를 죽이고군사를 일으켜 반란을 일으키고영주를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진충은 스스로 가한이라고 일컬었다.

을축일응양장군 조인사우금오대장군 장현우우무위대장군 이다조사농소경 마인절 등 28명의 장군에게 명하여 토벌하도록 명하였다.

<이상 구당서 측천황후 본기>

 

[측천] 만세통천 연간(696~697), ()만영이 그 여동생의 남편 송막도독 이진충과 함께 영주도독 조홰에게 업신여김을 당하자 두 사람이 마침내 병사를 들어 ()홰를 죽이고 영주에 웅거해 []란을 일으켰다. ()진충은 곧 굴가의 후손으로 우무위대장군 겸 송막도독[등의 관직]을 두루 지냈다. ()진멸(이진충)은 이어 스스로를 무상가한이라 칭하고 ()만참(손만영)을 대장으로 삼아 전봉(前鋒)에 서서 땅을 빼앗게 했는데 [그들이] 향하는 곳마다 모두 항복시켜 십여 일만에 병사가 수만 []에 달했고 진격하여 단주(檀州)에 침범했다.

<구당서 북적열전 거란전>

 

굴가가 죽고[나서 그의 무리들이] 해와 연결해 반란을 일으키자 행군총관 아사덕추빈 등이 송막도독 아복고를 사로잡아 동도(낙양)에 바쳤다. 굴가에게는 2명의 손자가 있었는데 [한 명은] 고막리라 불렀고 좌위장군·탄한주자사로 삼았고 귀순군왕에 봉했다. [또 한 명은] ()진충이라 불렀고 무위대장군·송막도독으로 삼았다. []오조에게는 손자가 있었는데 ()만영이라고 불렀고 귀성주자사로 삼았다. 이즈음 영주도독 조문홰가 교만하고 허욕이 많아 자주 그의 아랫사람들을 업신여기니 ()진충 등이 모두 원망하였다. ()만영은 본래 시자(侍子)로써 입조하여 중국의 [지세가] 험난한 지 평탄한 지를 알고 있었고 좌우에서 [그가] 난을 일으킬 것이라고 의심하지 않았으나 곧 [이진충과] 함께 병사를 들어 ()문홰를 죽이고 영주(營州)에서 도적질을 하고 반란을 일으켰다. ()진충은 스스로를 무상가한(無上可汗)이라 부르며 ()만영을 장수로 삼고 병사를 내보내 사방을 [공격하고] 약탈하여 향하는 곳마다 번번이 항복시켰으나 [그 기간이] 스무 날도 안 되었고 [거느린] 무리가 수 만이었으나 망령되이 10만이라 하였고 숭주를 공격해 토격부사(討擊副使) 허흠적을 사로잡았다.<신당서 북적열전 거란전>

가을 7춘관상서양왕 ()삼사에게 명하여 안무대사로 삼고납언 요숙에게 명하여 부(안무대사)로 삼았다. 황제(측천)가 이진충을 이(진멸)손만영을 ()만참으로 고쳤다.

<구당서 측천황후 본기>

 

7월 신해일춘관상서 무삼사를 유관도 안무대사로납언 요숙을 부(안무대사로) 삼아거란에 대비하였다.

<신당서 측천 본기>

 

측천은 그들이 반란을 일으킨 것에 노하여 조칙을 내려 ()만영의 이름을 고쳐 ()만참(萬斬)이라 하고 ()진충은 ()진멸(盡滅)이라 했다.

<구당서 북적열전 거란전>

가을 8장현우조인사마인절과 이진멸(이진충)이 서협석 황마곡에서 싸웠으나관군(당나라 군사)이 패배하여()현우와 ()인절 모두 적에게 사로잡혔다.

<구당서 측천황후 본기>

 

조칙을 내려 우금오대장군 장현우· 좌응양위장군 조인사· 사농소경 마인절 등에게 병사를 거느리고 그들을 토벌하게 했다. [이들은] ()만참(손만영)과 서협석곡(西硤石谷)에서 전투를 벌였으나 관군은 패하고 ()현우와 ()인절은 함께 적에게 사로잡혔다. ()만참(손만영)[] 기세를 타서 그의 무리를 거느리고 유주로 들어가 인리(人吏)를 죽이고 [재물을] 약탈했다.

<구당서 북적열전 거란전>

9우무위대장군건안왕 ()유의에게 명하여 대총관으로 삼고 거란을 토벌하였다.

토번이 양주(涼州)를 침구하여도독 허흠명이 적에게 잡혔다.

이진멸(이진충)이 죽으니그 무리 손만참(손만영)이 대신 그 무리를 통솔하였다.

<구당서 측천황후 본기>

 

청변도대총관· 건안군왕 무유의가 비장(裨將)을 보내 그를 토벌하려 했으나 물리칠 수 없었다. 이어 이진멸(이진충)이 죽자 ()만참(손만영)[그를] 이어 그의 무리를 다스렸다.

<구당서 북적열전 거란전>

 

발해말갈의 대조영은 본래 고구려의 별종이다. 고구려가 멸망하자 ()조영은 가속(家屬)을 이끌고 영주(營州)로 옮겨와 살았다. 만세통천 연간(696)에 거란의 이진충이 반란을 일으키니, ()조영은 말갈의 걸사비우와 함께 각각 [그들의 무리를] 거느리고 동쪽으로 망명하여 요해지를 차지하여 수비를 굳혔다. ()진충이 죽자, 측천(무후)가 우옥검위대장군 이해고에게 명하여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그 여당(餘黨)을 토벌케 하니, (이해고는) 먼저 걸사비우를 무찔러 베고, 또 천문령을 넘어 ()조영을 바짝 뒤쫓았다. ()조영이 고구려·말갈의 무리를 연합하여 ()해고에게 항거하자, 왕사(王師:당나라 군사)는 크게 패하고 ()해고만 탈출하여 돌아왔다.

<구당서 북적열전 발해말갈전>

 

만세통천 원년(6969) 토번 4만의 무리가 갑자기 양주성(涼州城) 아래에 이르렀는데, 도독 허흠명은 처음에 이를 알아채지 못하고 경무장한 부대를 이끌고 순찰하다가 적을 만나 오래 싸웠으나 힘이 다하여 전사했다. 이때 토번은 다시 사자를 보내 화평을 구하니 측천(則天)이 이를 허락하였다. 이윽고 논흠릉이 안서의 4개 진에서 철군할 것을 청하고, [서돌궐] 10(十姓)의 땅을 분할해 달라고 했으나, 측천(則天)은 끝내 허락하지 않았다.<구당서 토번전>

겨울 10손만참(손만영)이 기주를 공격하여 함락시키고자사 육보적을 죽였다.

<구당서 측천황후 본기>

 

()만참은 또 별수(別帥) 낙무정· 하아소(何阿小)를 보내 유군전봉(遊軍前鋒)으로 삼고 기주(冀州)를 공격해 함락시켜 자사 육보적을 죽이고 관리와 자녀 수천 명을 죽였다.<구당서 북적열전 거란전>

11(손만영이) 영주(瀛州) 속현을 함락시켰다.

<구당서 측천황후 본기>

 

만세통천 원년(696)거란 수령 이진충손만영이 (당을) 배반하고 반란을 일으켜(주 도둑)부를 공격하여 함락시키자묵철이 사신을 보내 말씀을 올렸다:「청컨대 하서의 항복한 주민들을 돌려주신다면즉시 부락의 병사와 말을 통솔해 국가(당나라)를 위하여 거란을 쳐서 토벌하겠습니다.제서로 허락하였다.

<구당서 돌궐전>

697

2왕효걸과 소굉휘 등이 병사 18만을 거느리고 손만참(손만영)과 협석곡에서 싸웠으나왕사(당나라 군대)가 패하여()효걸은 진영에서 죽었고()굉휘는 무기를 버리고 달아났다.

<구당서 측천황후 본기>

 

또 하관상서 왕효걸· 좌우림장군 소굉휘에게 명하여 병사 7[]을 거느리고 그들의 뒤를 따르게 했다. ()만참(손만영)과 동협석곡(東硤石谷)에서 전투를 벌였으나 ()효걸은 진영에서 죽었고 ()굉휘는 무기를 버리고 달아났다.

<구당서 북적열전 거란전>

5우금오대장군하내왕 ()의종을 대총관으로우숙정어사대부 누사덕을 부대총관으로우무위위대장군 사타충의를 전군총관으로 삼아병사 20만을 거느리고 손만참(손만영)을 토벌하도록 명하였다.

<구당서 측천황후 본기>

 

또 조칙을 내려 좌금오대장군· 하내왕 무의종을 대총관으로 삼아 어사대부 누사덕을 부대총관으로 삼고 우무위장군 사탁충의를 전군총관으로 삼아 병사 30[]을 거느리고 그들(손만영의 무리)을 토벌하게 하였다. 이어 해() 및 돌궐의 무리가 그들의 후방을 불시에 공격하고 유약자들을 노략질하였다.

<구당서 북적열전 거란전>

 

묵철이 드디어 거란을 공격하여 토벌하자(거란) 부족의 무리가 크게 무너져그 가구(家口)가 다 잡혔으며묵철은 이로부터 병력과 무리가 점차 강성하여 졌다. ()측천은 바로 사신을 보내 묵철을 특진힐질리시 대선우입공보국 가한으로 책봉하였다.

<구당서 돌궐전>

 

[묵철에게] 좌위대장군 귀국공을 제수하고, 좌표도위장군 염지미를 [돌궐] 부락에 보내 [묵철을] 천선가한(遷善可汗)으로 책봉했다. 묵철이 바로 군대를 이끌고 거란을 공격했는데, 마침 []진충이 죽자 송막 부락을 습격해 손만영 처자와 군수 물자를 모두 얻었고 추장들도 무너뜨렸다.

<신당서 돌궐전>

6손만참(손만영)이 그 집안의 노예에게 살해되니나머지 무리가 크게 무너졌다.

<구당서 측천황후 본기>

 

()만참(손만영)은 그의 무리를 버리고 경기병[輕騎] 수천 명을 [이끌고] 동쪽으로 달아났다. 전군부총관 장구절이 수백 [명의] 기병을 거느리고 숨어서 그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만참(손만영)[처지가] 궁하고 고생스러워지자 곧 그의 가노(家奴)와 경기병을 [거느리고] 야밤에 달아나 노하(潞河) 동쪽에 도달하여 안장을 풀고 수풀 아래서 쉬[고 있]었는데 그의 종이 그를 참수했다. 장구절이 그의 머리를 동도(낙양)에 전했고 이로 말미암아 그의 남은 무리가 마침내 돌궐에 항복하였다.

<이상 구당서 북적열전 거란전>

 

[이때] 마침 거란과 해()가 모두 돌궐에게 항복을 하므로 길이 막혀서 측천(무후는 [그들을] 토벌할 수 없게 되었다. ()조영은 마침내 그 무리를 거느리고 동으로 가서 계루(桂婁)부의 옛 땅을 차지하고, 동모산에 웅거하여 성을 쌓고 살았다.

<구당서 북적열전 발해말갈전>

 

[]후가 그가 [거란을] 공격한 것을 좋게 여겨 다시 조칙을 내려 []지미에게 부절을 갖고 가서 묵철을 특진 힐질리시대선우 입공보국가한에 책봉하게 했다. 명령이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돌궐이] 바로 영[]와 승주를 공격해 마음대로 죽이고 약탈했다가 지키고 있던 장군에게 패배했다.

<신당서 돌궐전>

9거란의 이진멸(이진충) 등이 평정되어천하에 대사면령을 내리고연호를 신공으로 바꾸었으며큰 잔치 7일을 하사하였다.<구당서 측천황후 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