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

시진핑·푸틴·최용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상 상 2015. 9. 11. 17:20

[중앙일보]입력 2015.09.11 01:02 / 수정 2015.09.11 10:47

 

박근혜 대통령이 3일 천안문광장에서 펼쳐진 열병식에 참석했다. 미국의 동맹국인 민주국가 지도자로서는 유일하게 행사에 참가했다. 다른 지도자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속마음을 들여다볼 수는 없다. 독재국가 지도자들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상상해볼 수는 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열병식은 나의 지도력을 증명하는 부인할 수 없는 증거야. 이 순간까지 계속한 반일(反日) 프로파간다는 효과가 좋았어. 덕분에 상하이 주식 시장 붕괴에 따른 난처함이 상당 부분 상쇄될 거야. 우리 아버지는 일본과 실제로 싸운 것은 국민당이라는 것을 잘 알고 계셨어. 아버지는 중국 공산당이 단독으로 중국을 해방시켰다고 끊임없이 인민에게 주입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하셨지.

 

 나는 서구 지도자들이 전승절 행사에 안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 하지만 우리 외교부가 일하는 걸 보면 화가 나.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등 아시아에서 아무도 안 왔어. 그래도 한국의 박 대통령은 여기 있어. 크게 도움이 되지. 여섯 차례 정상회담으로 중·한 관계가 새로운 수준으로 격상됐어. ·한 무역이 한국에 얼마나 이득이 되는지 보여줬지. 중국의 성장률이 떨어져 한국인들의 신경이 곤두섰다는 낌새가 보이지만 말이야.

 

 난 박 대통령이 뭘 바라는지 알아. 내가 북조선에 압력을 더 넣는 거지. 평양에서 최고사령관행세를 하고 있는 위험한 아마추어에게 굴욕감을 주는 것은 즐거운 일이긴 해. 또 우리는 더 이상 북한과 순망치한(脣亡齒寒) 관계가 아니야. 하지만 계속 반복해서 말하지만 북한에 대한 우리의 핵심적인 입장은 변하지 않았어. 북조선이 불안정하게 되거나 정권이 바뀔 만큼 압력을 넣는 일은 결코 없을 거야. 서울에 상징적인 제스처는 보여줄 수 있지. 전례 없는 것들까지 말이야. 하지만 북조선에 물리적인 압력을 추가하는 일은 없어.

 

 박 대통령도 알고 있을 거야. 판단력이 좋거든. 그는 지난달 남북 위기를 솜씨 있게 처리했지. 능력을 과시해 남조선 국내정치에서 얻은 게 많아. 과거사 문제로 일본과 공동전선을 펴자는 우리 측 제의를 박 대통령은 수용하지 않았지. 그는 이번엔 중··일 대화를 하자고 우리에게 압력을 넣고 있지. 어쨌든 그의 방중은 우리 프로파간다에 도움이 되는 선물이야. 함께 일본 제국주의와 싸웠다는 것은 양국 우호의 소중한 토대야. 그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 재개관식에 참석한 것도 중국이 한국의 해방을 도왔다는 모양새를 만드는 데 도움이 돼. 이런 식의 게임이 계속될 거야. 부침도 있겠지만 게임을 잘 끌고 가다 보면 미국의 아시아 동맹 네트워크에 틈이 생길 거야. 그러다 보면 우리는 워싱턴과 세계의 공동지배(condominium)를 추구할 수 있을 거야. 워싱턴이 우리의 동북아 세력권을 받아들이고 태평양에서 충돌을 피하게 되는 거지. 도전은 많아. 국내 경제, 아시아 역내 문제, ·미 관계··· 하지만 우리가 갈 길은 이 길 하나야.

 

 최용해 북한 노동당 비서=이런 치욕을 당하다니!!! 나를 맨 구석에 앉혔어. 미국의 괴뢰 박근혜가 시진핑, 그 부인 펑리위안(彭麗媛)과 중앙을 차지하고 있는데 말이지. 중국 놈들은 정말 우리 최고의 원수야. 중국은 미국 못지않은 위협이야. 우리가 핵이 필요한 이유는 중국 때문이기도 해. 만약 박근혜가 우리에게 중국 카드를 쓰려고 한다면 우리는 막강한 핵 억지력으로 그가 틀렸다는 것을 입증할 거야. 한 방만 먹여도 중국은 뒷걸음칠 걸.

 

 그런데 낌새가 안 좋아. 김정은은 성질이 변덕스러워. 중국의 홀대가 나 때문이라고 몰아세우면 어떡하지? 중국이나 박근혜 때문이라고 김정은의 분노를 반드시 돌려놔야 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중국은 위험한 나라라고 내게 경고한 참모들의 말이 맞는 것 같아. 돈 자랑과 오만함이 하늘을 찌르는군. 하지만 당장은 중국이 아니라 서구에 수모를 안겨줄 필요가 있어. 우크라이나는 어머니인 러시아의 자식이야. 항상 그래왔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는 종이호랑이야. 하지만 그 실체를 천천히 보여줘야 해. 그래야 유럽이 국방비를 계속 삭감하지. 미국은 계속 망설이고 비틀거리고 말이야.

 

 그러려면 중국이 아주 유용해. 중국은 미국의 등을 겨누는 단검과 같지. 이번 열병식에 온 세계 지도자들이 많지 않은 게 나로서는 기분이 좋아. 하지만 한국의 박 대통령이 여기 왔어. 정말 흥미로워. 한국인들은 거의 항상 미국·서구 편을 들지. 그의 열병식 참석은 서구에 반항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어. 어쩌면 박 대통령을 설득해 북한을 통과하는 파이프라인을 건설하면 러시아산 가스를 팔 수 있겠어. 우리는 고객이, 서울은 한반도 평화가 필요해. 파이프라인은 미국의 정책을 무력화시키는 데도 쓸모가 있어.

 

 중국 중앙방송(CC-TV) 중계로 행사를 지켜본 어느 중국 시민=천안문광장의 탱크를 보니 1989년 천안문 사태가 생각나는군. 학생들의 외침이 무시됐지. 수많은 나라가 민주화됐어. 89년에는 이제 우리 차례라고 희망했었지.

 

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부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