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

중국의 '찔러보기 外交'에 쩔쩔매는 한국

상 상 2015. 7. 6. 17:46

출처: 조선일보, 입력 : 2015.07.06 03:00

 

중국은 하나의 국가 목표를 잘게 쪼개 점진적으로 달성해 가는 능력이 뛰어나다. 중국의 오늘을 만든 개혁·개방정책도 실은 4개의 점(·경제특구)에서 시작해 선()으로 잇고 나중에 전 국토로 확대한 점진 전략이었다. 외교·군사 면에서도 중국은 '살라미 전술(소시지를 얇게 썰어 먹는 것 같은 단계적 협상술)'에 능하다. 1990년대 초 채택한 '도련(島鏈) 전략'이 대표적이다. 3단계로 이뤄진 이 전략은 미군이 장악한 남중국해와 인도양, 태평양에 대한 영향력을 단계적으로 키워가는 것이 목표다. 20여년이 지난 현재 시진핑 주석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태평양은 중국과 미국을 모두 수용할 만큼 넓다"고 큰소리칠 만큼 중국 해군력은 달라졌다.

 

중국은 이 살라미 전술을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에도 구사하고 있다. 이 문제를 먼저 제기한 쪽은 중국 민간 학자나 퇴역 군인들이다. 중국 군부의 대표적 매파인 인줘(尹卓) 예비역 해군소장은 작년 8월 국영방송인 CCTV 인터뷰에 나와 "사드의 한국 배치는 한·중 관계를 훼손할 수 있으며, 한국은 다른 나라의 핵 선제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위협했다. 민간 쪽에서 '군불'을 때면 다음엔 정부가 나선다. 류젠차오(劉建超) 외교부 부장조리(차관보)는 올 3월 한국에 와서 우리 외교부는 물론 국회까지 방문해 '사드 반대'를 강조했다. 창완췐(常萬全) 국방부장도 비슷한 시기 서울에서 같은 입장을 밝혔다. 이런 식으로 중국은 처음엔 민간인을 동원해 한국의 반응을 떠보다가 별 반발이 없으면 발언 수위를 높여 결국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굳히려 한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는 우리 정부가 초기부터 중국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반박하지 못하고 어정쩡한 태도를 보인 탓이 크다. 정부는 사드 채택 여부와는 별도로 처음부터 "한국의 생존문제에 중국은 내정간섭 하지 말라"고 못을 박아야 했다. 그리고 이 원칙을 일관되게 밀고 나가야 했다. 사드 문제에서 한국이 중국에 '저자세'를 취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무엇보다 중국이 치명적 공격 무기인 북한 핵은 놔두고 북의 핵공격에서 살아남기 위한 한국의 방어 수단만 문제 삼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만약 중국이 지금의 한국 입장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중국이 핵무기가 없다면, 그리고 인도나 러시아가 핵무기를 증강한다면, 중국은 미사일 요격 체계를 강화하지 않겠는가. 아니 국가 안보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중국은 어떤 희생도 무릅쓰고 핵개발에 뛰어들 나라이고, 실제로 그랬다.

 

중국은 최근 백두산에 둥펑-21 핵미사일 기지를 건설했다. 최대 사거리 3000인 이 미사일 기지는 한반도와 일본, 극동 러시아를 타격 범위에 두지만, 중국은 기지를 세우면서 주변국 입장을 물어보지 않았다. 물어볼 이유도 없다. 국가 안보란 그런 것이다. 자신을 지키는 수단을 강구하는데 누구 눈치를 본단 말인가. 중국이야말로 국가 안보를 포함한 '핵심 이익'에 대해 누구의 간섭도 허용해선 안 된다는 걸 잘 아는 나라다. 그런 중국이 한국의 생존이 걸린 사드나 주한미군 문제에 압력을 가하고 있다. 더욱 큰 문제는 중국의 부당한 내정간섭에 한국 박근혜 정부가 당당하게 대응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중국의 '찔러보기 외교'에 한국이 계속 쩔쩔맨다면 미국·일본은 물론 국제사회 전체가 한국을 우습게 볼 것이다.

 

지해범 동북아시아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