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매일경제, 기사입력 2015.06.15 17:20:17 | 최종수정 2015.06.15 17:21:18
갑자기 닥쳐온 메르스가 우리 전체의 관심을 사로잡고 우리의 대처 능력을 시험하고 있다. 그 와중에 중요한 외교 사안인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도 연기되었다. 한·미 관계는 이제 이러한 돌출 변수를 잘 처리할 수 있을 만큼 탄탄해져 있다. 사실 한국 외교의 최대 과제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생산적인 균형을 잡아나가는 것이다. 한·미동맹과 한·중협력이라는 두 토끼를 동시에 잡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는 우리 외교에는 절체절명의 과제다. 그 성패에 따라 우리나라의 안정과 번영은 물론 북한 문제의 관리 내지는 한반도 통일의 향배와 과거사 수정주의를 표방하고 나선 일본을 다루는 방안도 커다란 영향을 받게 된다. 그 첫걸음은 미국과 중국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동아시아에 관한 한 미국의 과거, 현재, 미래의 역할은 지구상 다른 어떤 지역과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긍정적이고 생산적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민주시장경제를 동아시아에 가지고 왔다. 이를 이용해 일본이 먼저, 그리고 동아시아 4룡(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이 뒤를 이었고, 이제 중국의 역사적인 부상이 진행되고 있다.
동아시아는 이제 역사상 경험하지 못한 번영과 평화를 누리고 있다. 미국도 최대 수혜자 중 하나다. 모두 미국이 이 지역으로 가지고 온 시장경제라는 패러다임을 동아시아 국가들이 성공적으로 소화한 덕분이다. 동아시아의 마지막 음지로 남은 북한 문제도 결국 자력으로 성공하든지 아니면 붕괴로 그렇게 되든지 북한 지역이 시장경제의 패러다임을 받아들이게 될 때 해결된다. 미래의 미국 역할도 필수적이다. 미국이 이 지역에서 다자안보 체제가 출현하기 이전에 철수할 경우, 동북아는 삽시간에 긴장과 불안정 속으로 빠져들 것이다. 중국에 홀로 대비하기 위해 일본은 핵무기를 포함한 본격적인 재무장의 길로 들어서고, 중국이 이에 따라 군비 경쟁에 나서고, 우리는 그 사이에서 어려운 선택과 해결책이 없는 고민에 빠지게 된다.
이러한 명확한 그림을 놓고도 우리 내부에서는 미국이 한반도에서 철수할 때 한반도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느니, 통일 한국이 중립을 추구해야 한다느니 하는 검토되지 않은 견해가 표출되고 있다. 하루빨리 정리되어야 할 생각들이다.
중국에 대해서도 그렇다. 일본과 일부 미국 식자층에서는 중국이 한·미·일이 공유하는 민주시장 경제 가치를 가지고 있지 않다느니, 결국 헤게모니를 추구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평화를 위태롭게 할 것이므로 이에 대비해야 한다느니 하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그들의 지정학적인 이익에 따른 편견이다.
그런데 중국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우리나라에서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편향된 시각을 역수입해 영향을 받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들은 중국이 몽골의 원나라나 만주족의 청나라를 제외하면 과거 천 년 동안 단 한번도 헤게모니를 위해 국경 밖으로 진출한 적이 없다는 역사적인 사실도 외면하고, 또 그러한 문화와 전통을 가진 중국이 새롭게 헤게모니를 추구하는 외교 정책을 구사하려면 적어도 수 세대, 아니면 수 세기에 걸친 변화와 적응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사실을 외면하고자 하는 것이다. 또 이들은 시장경제의 핵심 사상인 자유방임 철학은 도교의 무위사상이 18세기 프랑스의 중농주의 사상가들에 의하여 `레세페르(자유방임)`로 번역돼 서양에 전파된 것이라는 사실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G2 중의 한 나라와 동맹을 맺고 다른 한 나라와는 국경을 접하고 있는 유일한 나라다. 이제 명실상부한 지구상 2대 강대국, 즉 G2로 불리는 미국과 중국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우리는 세계에서 우리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위치와 장점을 알아야 한다. 미국과 중국은 모두 21세기 태평양 시대의 안정화 세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들 사이의 경쟁은 정면충돌을 상정하는 서양 장기가 아니라 `충돌 없는 기정사실화`를 상정하는 동양 바둑의 형태를 띠게 될 것이다. 우리는 역사와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G2에 대해 우리만이 가지고 있는 깊은 이해와 철학과 비전을 십분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최영진 연세대 국제대학원 석좌교수·전 주미대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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