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통일신라와 당의 관계-71, 신당서 발해전-2)

상 상 2015. 4. 16. 17:19

통일신라와 당의 관계-71, 신당서 발해전-2)

 

차례

 

. 관련 사료

1. 구당서 토번전()

2. 구당서 토번전()

3. 신당서 토번전

4. 구당서 돌궐전

5. 신당서 돌궐전

6. 구당서 측천본기

7. 신당서 측천본기

8. 구당서 거란전

9. 신당서 거란전

10. 구당서 발해전

11. 신당서 발해전

12. 구당서 숙종본기

13. 구당서 회홀전

14. 신당서 회홀전

15. 구당서 남조전

16. 신당서 남조전

17. 구당서 신라전

18. 신당서 신라전

19. 삼국사기 신라본기

 

.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

1. 이진충의 난 이전

2. 이진충의 난

3. 돌궐족 묵철의 침공

4. 안사의 난

5. 토번의 침공

6. 토번의 침공 이후

7. 민란의 발생과 남조의 침공

8. 황소의 난

9. 절도사의 시대

10. 당의 멸망

 

. 통일신라와 당

1. 통일신라 이후의 당나라 약사

2. 신구당서에 의한 통일신라와 당

3.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의한 통일신라와 당

4. 사료를 통합해서 본 통일신라와 당의 관계

 

 

. 관련 사료

11. 신당서 발해전

 

신당서 북절열전 발해전(219) 출처:

1) 번역문: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통사/ 중국정사조선전/ 新唐書/ 北狄列傳/ 渤海

2) 원문: 新漢籍全文(http://hanchi.ihp.sinica.edu.tw/ihp/hanji.htm) /免費使用//正史/新唐書/列傳/ 卷二百一十九下/ 北狄/ 渤海

번 역 문

원 문

6)10년 뒤에 무예(武藝)가 대장(大將) 장문휴(張文休)를 파견하여 해적(海賊)을 거느리고 등주(登州)를 치니, 현종(玄宗)은 급히 문예(門藝)를 파견하여 유주(幽州)의 군사를 동원시켜 이를 공격하는 한편, 태복경(太僕卿) 김사란(金思蘭)을 사신으로 신라(新羅)에 보내어 군사를 독촉하여 발해(渤海)의 남부를 치게 하였다. 마침 날짜가 매우 추운 데다 눈이 한길이나 쌓여서 군사들이 태반이나 얼어 죽으니, 공을 거두지 못하고 돌아왔다. 무예(武藝)가 그 아우에 대한 원한이 풀리지 않아서 자객(刺客)을 뽑아서 동도(東都)에 들여 보내어 길에서 저격케 하였으나, 문예(門藝)가 그들을 물리쳐서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 하남(河南)에서 자객(刺客)들을 체포하여 모두 죽였다.

後十年武藝遣大將張文休率海賊攻登州帝馳遣門藝發幽州兵擊之使太僕卿金思蘭使新羅督兵攻其南會大寒雪袤丈士凍死過半無功而還武藝望其弟不已募客入東都狙刺於道門藝格之得不死河南捕刺客悉殺之

 

7)무예(武藝)가 죽자, 그 나라에서 사시(私諡)로 무왕(武王)이라 하였다. 아들 흠무(欽茂)가 왕위(王位)에 올라 연호를 대흥(大興)으로 고치니, [현종(玄宗)] () 및 도독(都督)을 세습하라는 조서를 내렸다. 이에 흠무(欽茂)는 경내(境內)에 사면령을 내렸다. 천보(天寶)(742~755) 말년에 흠무(欽茂)가 도읍을 상경(上京)으로 옮기니, 옛 도읍지에서 3백리 떨어진 홀한하(忽汗河)의 동쪽이다. 현종(玄宗)의 시대가 끝날 때까지 29번 조헌(朝獻)하였다.

武藝死其國私謚武王子欽茂立改年大興有詔嗣王及所領欽茂因是赦境內天寶末欽茂徙上京直舊國三百里忽汗河之東訖帝世朝獻者二十九

 

8)보응(寶應) 원년(762)[대종(代宗)] 조서(詔書)를 내려 발해(渤海)를 나라로 인정하여 흠무(欽茂)를 왕()으로 삼고, 검교태위(檢校太尉)[031]로 진수(進授)하였다. 대력(大曆) 연간(766~779)25번 조공(朝貢)하고, 일본(日本)의 무녀(舞女) 11명을 조정에 헌상하였다. 정원(貞元)(785~804) 때에 동남쪽 동경(東京)으로 [도읍을] 옮겼다.

寶應元年詔以渤海為國欽茂王之進檢校太尉大曆中二十五來以日本舞女十一獻諸朝貞元時東南徙東京

9)흠무(欽茂)가 죽으니, 사시(私諡)로 문왕(文王)이라 하였다. 아들 굉림(宏臨)은 일찍 죽고, 족제(族弟) 원의(元義)1년간 왕위(王位)에 올랐으나 의심이 많고 포학하여 나라 사람들이 그를 죽이고, 굉림(宏臨)의 아들 화여(華璵)를 추대하여 왕()으로 삼았는데, 다시 상경(上京)으로 환도(還都)하고 연호를 중흥(中興)으로 고쳤다. [화여(華璵)] 죽으니, 시호는 성왕(成王)이다.

欽茂死私謚文王子宏臨早死族弟元義立一歲猜虐國人殺之推宏臨子華璵為王復還上京改年中興謚曰成王

10)흠무(欽茂)의 작은 아들 숭린(嵩隣)이 왕위에 올라 연호를 정력(正歷)으로 고치니, 조서(詔書)를 내려 우효위대장군(右驍衛大將軍)을 제수(除授)하고 왕()을 세습시켰다. 건중(建中)(780~783)· 정원(貞元)(785~804) 사이에 모두 4[사신(使臣)] 왔다. [숭린(嵩隣)] 죽으니, 시호는 강왕(康王)이다. 아들 원유(元瑜)가 왕위에 올라 연호를 영덕(永德)으로 고쳤다. [원유(元瑜)] 죽으니, 시호는 정왕(定王)이다. 아우 언의(言議)가 왕위에 올라 연호를 주작(朱雀)으로 고치고, 아울러 모든 세습제도를 전례(前例)에 따랐다. [언의(言議)] 죽으니, 시호는 희왕(僖王)이다. 아우 명충(明忠)이 왕위에 올라 연호를 태시(太始)로 고쳤다. 1년만에 죽으니, 시호는 간왕(簡王)이다. 종부(從父) 인수(仁秀)가 왕위에 올라 연호를 건흥(建興)으로 고치니, 그의 4대 할아버지 야발(野勃)[()]조영(祚榮)의 아우이다. 인수(仁秀)는 자못 바다 북쪽의 여러 부()를 토벌하여 국토를 크게 개척한 공이 있다. 조서(詔書)를 내려 검교사공(檢校司空)을 제수(除授)하고 왕()을 세습시켰다. 원화(元和) 연간(806~820)에 모두 16번 조헌(朝獻)하였고 장경(長慶) 연간(821~824)4, 보력(寶曆) 연간(825~826)2번씩 각각 조공(朝貢)하였다. 대화(大和) 4(830)에 인수(仁秀)가 죽으니, 시호는 선왕(宣王)이다. 아들 신덕(新德)은 일찍 죽고, 손자 이진(彛震)이 왕위에 올라 연호를 함화(咸和)로 고쳤다. 이듬해에 조서를 내려 작위(爵位)를 세습시켜 주었다. 문종(文宗)의 시대가 끝나기까지 모두 12번 내조(來朝)하였고, 회창(會昌) 연간(841~846)에 모두 4번을 왔다. 이진(彛震)이 죽으니, 아우 건황(虔晃)이 왕위에 올랐다. [건황(虔晃)] 죽으니, 현석(玄錫)이 왕위에 올랐다. 함통(咸通) 연간(860~873)3번 조헌(朝獻)하였다.

欽茂少子嵩鄰立改年正歷有詔授右驍衞大將軍嗣王建中貞元間凡四來謚康王子元瑜立改年永德謚定王弟言義立改年朱雀並襲王如故事謚僖王弟明忠立改年太始立一歲死謚簡王從父仁秀立改年建興其四世祖野勃祚榮弟也仁秀頗能討伐海北諸部開大境宇有功詔檢校司空襲王元和中凡十六朝獻長慶四寶曆凡再大和四年仁秀死謚宣王子新德蚤死孫彝震立改年咸和明年詔襲爵終文宗世來朝十二會昌凡四彝震死弟虔晃立玄錫立咸通時三朝獻

11)처음에 그 나라의 이 자주 학생들을 경사(京師)의 태학(太學)에 보내어 고금(古今)의 제도를 배우고 익혀 가더니, 이때에 이르러 드디어 해동성국(海東盛國)이 되었다. 국토는 5()· 15()· 62()이다. 숙신(肅愼)의 옛 땅으로 상경(上京)을 삼으니, [부명(府名)] 용천부(龍泉府)이며, ()[,()[,()[,]3()를 통치한다. 그 남부로 중경((中京)을 삼으니, [부명(府名)] 현덕부(顯德府)이며, ()[,()[,()[,()[,()[,()[,]6()를 통치한다. 예맥()의 옛 땅으로 동경(東京)을 삼으니,[부명(府名)] 용원부(龍原府), 책성부(柵城府)라고도 한다. ()[,()[,()[,()[,]4()를 통치한다. 옥저(沃沮)의 옛 땅으로 남경(南京)을 삼으니, [부명(府名)] 남해부(南海府)이며 옥()[,()[,()[,]3()를 통치한다. 고려([,])의 옛 땅으로 서경(西京)을 삼으니, [부명(府名)] 압록부(鴨淥府)이며, ()[,()[,()[,()[,]4()를 통치한다. 장령부(長嶺府)는 하()[,()[,]2()를 통치한다. 부여(扶餘)의 옛 땅에 둔 부여부(扶餘府)에는 늘 강한 군대를 주둔시켜 거란(契丹)을 방어하는데, ()[,()[,]2()를 통치한다. 막힐부(鄚頡府)는 막()[,()[,]2()를 통치한다. 읍루(挹婁)의 옛 땅에 둔 정리부(定理府)는 정()[,()[,]2()를 통치한다. 안변부(安邊府)는 안()[,()[,]2()를 통치한다. 솔빈(率賓)의 옛 땅에 둔 솔빈부(率賓府)는 화()[,()[,()[,]3()를 통치한다. 불열(拂涅)의 옛 땅에 둔 동평부(東平府)는 이()[,()[,()[,()[,()[,] 5()를 통치한다. 철리(鐵利)의 옛 땅에 둔 철리부(鐵利府)는 광()[,()[,()[,()[,()[,()[,]6()를 통치한다. 월희(越喜)의 옛 땅에 둔 회원부(懷遠府)는 달()[,()[,()[,()[,()[,()[,()[,()[,()[,]9()를 통치한다. 안원부(安遠府)는 영()[,()[,()[,()[,]4()를 통치한다. 또 영()[,()[,()[,]3()를 독진주(獨秦州)로 삼았다. 속주(涑州)는 그 곳이 속말강(涑沫江)과 가까운데, [속말강(涑沫江)] 이른바 속말수(粟末水)인 듯하다. 용원(龍原)의 동남쪽 연해는 일본도(日本道)이고, 남해는 신라도(新羅道)이다. 압록(鴨湪)은 조공도(朝貢道)이고, 장령(長嶺)은 영주도(營州道)이며, 부여(扶餘)는 거란도(契丹道)이다.

其王數遣諸生詣京師太學習識古今制度至是遂為海東盛國地有五京十五府六十二州以肅慎故地為上京曰龍泉府領龍渤三州其南為中京曰顯德府領盧興六州貃故地為東京曰龍原府亦曰柵城府領慶賀四州沃沮故地為南京曰南海府領沃椒三州高麗故地為西京曰鴨淥府領神正四州曰長嶺府領瑕河二州扶餘故地為扶餘府常屯勁兵扞契丹領扶仙二州鄚頡府領鄚高二州挹婁故地為定理府領定潘二州安邊府領安瓊二州率賓故地為率賓府領華建三州拂涅故地為東平府領伊比五州鐵利故地為鐵利府領廣歸六州越喜故地為懷遠府領達芝九州安遠府領寧常四州又郢涑三州為獨奏州涑州以其近涑沫江蓋所謂粟末水也龍原東南瀕海日本道也南海新羅道也鴨淥朝貢道也長嶺營州道也扶餘契丹道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