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통일신라와 당의 관계-68, 구당서 발해전-2)

상 상 2015. 4. 8. 18:09

통일신라와 당의 관계-68, 구당서 발해전-2)

 

차례

 

. 관련 사료

1. 구당서 토번전()

2. 구당서 토번전()

3. 신당서 토번전

4. 구당서 돌궐전

5. 신당서 돌궐전

6. 구당서 측천본기

7. 신당서 측천본기

8. 구당서 거란전

9. 신당서 거란전

10. 구당서 발해전

11. 신당서 발해전

12. 구당서 숙종본기

13. 구당서 회홀전

14. 신당서 회홀전

15. 구당서 남조전

16. 신당서 남조전

17. 구당서 신라전

18. 신당서 신라전

19. 삼국사기 신라본기

 

.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

1. 이진충의 난 이전

2. 이진충의 난

3. 돌궐족 묵철의 침공

4. 안사의 난

5. 토번의 침공

6. 토번의 침공 이후

7. 민란의 발생과 남조의 침공

8. 황소의 난

9. 절도사의 시대

10. 당의 멸망

 

. 통일신라와 당

1. 통일신라 이후의 당나라 약사

2. 신구당서에 의한 통일신라와 당

3.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의한 통일신라와 당

4. 사료를 통합해서 본 통일신라와 당의 관계

 

 

. 관련 사료

10. 구당서 발해전

 

당서 발해전 출처:

1) 번역문: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통사/ 중국정사조선전/ 舊唐書/ 北狄列傳/ 渤海靺鞨

2) 원문: 新漢籍全文(http://hanchi.ihp.sinica.edu.tw/ihp/hanji.htm) /免費使用//正史/舊唐書/列傳/ 卷一百九十九下/ 北狄/ 渤海靺鞨

                                            번       역       문

                    원             문

5)(개원) 20(732) ()무예가 그의 장수 장문휴를 보내어 해적을 거느리고 등주자사 위준을 공격하였다. (당 현종은) ()문예를 파견하여 유주에 가서 군사를 징발하여 토벌케 하고 태복원외경 김사란으로 하여금 신라에 가서 군사를 일으켜 발해의 남쪽 경계를 공격하도록 명하였다.(詔遣門藝往幽州徵兵以討之仍令太僕員外卿金思蘭往新羅發兵以攻其南境) 마침 산이 험하고 날씨가 추운 데다 눈이 한길이나 내려서 병사들이 태반이나 얼어 죽으니, 전공을 거두지 못한 채 돌아왔다. ()무예가 원한을 풀지 못하여 몰래 동도(낙양)에 사자(使者)를 보내어 자객을 빌어 천진교 남쪽에서 ()문예를 저격케 하였으나, ()문예는 자객들을 물리쳐서 죽지 않았다. (당현종은) 하남부에 명하여 그 적()들을 모두 잡아다 죽였다.

二十年武藝遣其將張文休率海賊攻登州刺史韋俊詔遣門藝往幽州徵兵以討之仍令太僕員外卿金思蘭往新羅發兵以攻其南境屬山阻塞凍雪深丈餘兵士死者過半竟無功而還武藝懷怨不已密遣使至東都假刺客刺門藝於天津橋南門藝格之不死詔河南府捕獲其賊盡殺之

6)(개원) 25(737) ()무예가 병으로 죽으니, 그의 아들 ()흠무가 왕위에 올랐다. (당현종은) 내시 단수간을 보내어 ()흠무를 책봉하여 발해군왕으로 삼는 동시에 그의 아버지를 뒤이어 좌효위대장군 홀한주도독으로 삼았다. ()흠무는 조명(詔命)을 받들고 경내에 사면령을 내리는 한편, ()수간의 편에 사신을 보내어 입조하고 공헌(貢獻)하였다. 대력2(767)에서 10(775)에 이르기까지 혹은 자주 사신을 보내와 조공하고, 혹은 해를 걸러 오기도 하였으며, 한해에 두 세번 오기도 하였다. (대력) 12(777) 1월에 사신을 보내어 일본국의 무녀 11명 및 지방물건을 바쳤다.4월과 12월에 사신이 다시 왔다. 건중 3(782) 5월과 정원 7(791) 1월에도 모두 사신을 보내와 내조하니, 그 사신 대상정을 위위경동정에 제수하여 본국으로 돌려 보냈다. 8월에 그의 왕자 대정한이 내조하여 숙위할 것을 청하였다. (정원) 10(794) 1월에 내조한 왕자 대청윤을 우위장군 동정으로 삼고, 그 아래 30여명에게도 차등을 두어 벼슬을 주었다.

二十五年武藝病卒其子欽茂嗣立詔遣內侍段守簡往冊欽茂為渤海郡王仍嗣其父為左驍衛大將軍忽汗州都督欽茂承詔赦其境內遣使隨守簡入朝貢獻大曆二年至十年或頻遣使來朝或間歲而至或歲內二三至者十二年正月遣使獻日本國舞女一十一人及方物四月十二月使復來建中三年五月貞元七年正月皆遣使來朝授其使大常靖為衛尉卿同正令還蕃八月其王子大貞翰來朝請備宿衛十年正月以來朝王子大清允為右衛將軍同正其下三十餘人拜官有差

7)(정원) 11(795) 2월에 내상시 은지섬을 보내어 대숭린을 책봉하여 발해군왕으로 삼았다. (정원) 14(798) 은청광록대부 검교사공을 가수(加授)하고, 발해국왕으로 진봉(進封)하였다. ()숭린의 아버지 ()흠무는 개원 연간(713~741)에 아버지의 지위()를 세습하여 군왕(郡王) 및 좌금오대장군이 되고, 천보 연간(742~755)에는 누차에 걸쳐 특진 태자첨사 빈객이 가수(加授)되었으며, 보응 원년(762)에 국왕에 진봉(進封)되고, 대력 연간(766~779)에는 계속하여 사공 태위를 더 제배(除拜)하였다. ()숭린이 습위(襲位)할 적에 다만 군왕(郡王)과 장군만을 제수하자, ()숭린이 사신을 보내어 도리상 [그럴 수 없음을] 피력하므로, 다시 책명(冊命)을 더 내렸다. 11월에 왕의 조카 대능신을 좌효위중랑장 노후(虜侯) 누번장으로 삼고, 도독 여부구를 우무위장군으로 삼아 방환(放還)하였다.

十一年二月遣內常侍殷志贍冊大嵩璘為渤海郡王十四年加銀青光祿大夫檢校司空進封渤海國王嵩璘父欽茂開元中襲父位為郡王左金吾大將軍天寶中累加特進太子詹事賓客寶應元年進封國王大曆中累加拜司空太尉及嵩璘襲位但授其郡王將軍而巳嵩璘遣使敍理故再加冊命十一月以王姪大能信為左驍衛中郎將虞候婁蕃長都督茹富仇為右武衛將軍放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