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조선일보, 입력 : 2014.03.13 05:50
6·25전쟁 때 유엔군 총사령관 맥아더는 그 권위가 거의 신(神)이었다. 전쟁 발발 넉 달 가까이 지난 1950년 10월 15일 맥아더는 태평양 섬 웨이크에서 미국 대통령 트루먼을 만났다.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한 지 한 달 뒤였다. 그는 놀랍게도 군(軍)통수권자인 대통령에게 경례도 하지 않았다. 만남의 장소는 당초 호놀룰루가 고려됐으나 맥아더가 자신이 있는 일본사령부에서 멀다며 워싱턴에서 4700마일 떨어진 웨이크섬으로 트루먼을 오게 했다. 트루먼은 섬으로 가면서 "내일 '신의 오른팔'을 만나 얘기해야 한다"고 적었다.
맥아더는 인천상륙작전을 준비하면서도 워싱턴 합참의 반대를 의식해 보고를 최대한 지연시켰다. 그의 참모가 워싱턴에 가서 보고한 날이 D데이 하루 전이었다. 합참은 이미 발동이 걸린 인천 상륙을 저지할 시간이 없었다. 미국에서 출판된 6·25 관련 서적 '가장 추운 겨울' '가장 어두운 여름'은 맥아더의 오만과 독선을 대단히 비판적으로 적고 있다. 하지만 많은 한국인은 맥아더를 남한의 공산화를 막아낸 최고의 군인으로 친다.
이런 시각차는 어디서 오는가. 워싱턴의 한국전 참전기념비는 '전혀 알지도 못하는 나라, 결코 만난 적도 없는 사람들을 지키려는 국가의 부름에 응한 우리의 아들딸들을 기린다'고 돼 있다. 백선엽 장군에 따르면 6·25 때 미군을 지휘했던 리지웨이 사령관은 '미국의 합법적인 정부가 내린 합법적인 명령에 따라'라는 말을 습관적으로 썼다. 참전기념비의 '국가의 부름'과 리지웨이의 '합법적 정부의 명령'은 같은 말이다. 하지만 이 말을 뒤집으면 미군은 한국이 아니라 미국을 위해 파병된 것이라는 얘기다. 미국은 미국 입장에서 민주주의와 군율을 어긴 맥아더의 항명을 중시한 반면 우리는 우리 입장에서 대한민국을 기사회생시킨 그의 인천상륙작전을 높이 평가하는 것이다.
입장이 다르면 결정도 달라진다.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의 운명을 좌우하는 수많은 결정이 내려진 6·25 상황을 복기하다 보면 아찔한 순간이 많다. 미국은 참전 결정은 신속히 했지만 초반에 낙동강 전선까지 밀리자 곧바로 철군 계획을 세웠다. 미국은 대통령과 국무장관·합참의장 등 거의 모든 수뇌부가 인천상륙작전을 무모하다며 반대했다. 전장 지휘관과 합참의 생각이 달랐고 백악관과 국민 여론이 따로 놀았다. '가장 어두운 여름'의 저자 빌 슬로언은 '미국 건국 이후 국가 지도부가 그토록 혼란스럽고 의견이 갈리고 자신감이 없었던 적은 드물었다'고 적었다.
이제 우리는 전쟁을 잊고 통일을 논한다. 북한 붕괴는 불시에 올 수 있지만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느냐가 문제다. 우리 힘이 없을 때 느닷없이 펼쳐진 8·15 해방 정국과 6·25전쟁 상황은 우리 뜻대로 통제할 수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주변 강대국에 통일의 중요성을 누누이 강조해 우리의 지분을 키워놓지 않고 북한과의 교류로 통일 교두보를 쌓는 노력을 지속하지 않는다면 북한 붕괴는 강대국의 입김대로 굴러가는 무서운 상황을 펼쳐놓을지 모른다.
여시동 프리미엄뉴스부 차장 |
'나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향후 10년, 대한민국의 위기와 기회 (0) | 2014.03.27 |
|---|---|
| 한국이 '아시아판 크림 반도'가 안 되려면 (0) | 2014.03.19 |
| '통일 대박론'보다 시급한 북한 급변 대비책 (0) | 2014.03.05 |
| '통일은 대박'이 말도 안된다고 ? (0) | 2014.03.05 |
| 외국인의 눈에 비친 '통일 대박' (0) | 2014.03.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