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과 패수가 이같이 조선문명사상 중요한 지방으로써
천여 년 동안 그 고유의 위치를 잃고 천여리나 이사하여
평안도의 작은 지방으로 떠나 거기서 자리잡게 된 것처럼 보인 것은
위증한 서적의 소행이라고 하겠지만,
그러나 이 같은 위증이 행세되어
제2패수, 제2평양인 대동강, 평양이
제1패수, 제1평양인 헌우락, 평양의 위치 역사 기타 모든 것을 빼앗게 됨은 어찌된 까닭이냐.
1) 조선민족의 대외적 실패로 말미암음이니,
동북 양국(신라와 발해)이 서로 대치하다가
북국(발해)은 거란과 여진에게 남아있던 종족이 전멸되고 토지도 전부 잃어
북국 해북 등 명사는 겨우 삼국시대의 옛 사람이 남긴 다 없어지고 흩어진 책의 글자로 남아있을 뿐이되어,
이제 제2의 평양 패수가 평양 패수가 되고,
제1의 평양 패수는 깊이 다른 지역에 침몰하여 평양 패수란 이름도 보전치 못함이라.
2) 조선 문헌의 결핍과 망실함에 말미암음이니,
그와 같이 조선민족의 대외세력이 미약하매
일체 고대의 문화나 무력을 자랑할 만한 고적과 문헌은 모두 매장 혹 불태워져버리고,
오직 노예적 비열과 은둔 선비적 깨끗한 척으로 민족적 구차한 삶을 도모할새
신라 경덕왕은 북방 주군(州郡)을 남방으로 옮겨 설치하고,
김부식은 외교적 아첨을 드리는 글자로 지은 삼국사기를 간행하더니
몽고황제는 사책(史冊)을 가져다가 제멋대로 잘라내고 덧칠을 망령되게 덧붙이니,
이제 지리 연혁이 가장 큰 참변을 만나는 동시에 평양 패수의 실록이 모두 없어지고
오직 그 명칭만 존재하게 된 것이다.
그리되매 중국사가(史家)들이 위증한 문자가 온 세상에 횡행하나
여태까지의 학자들이 혹은 두려움에 꺼려서 그 위증을 위증이라 하지 못하며,
혹은 습관적으로 들어 그 위증을 위증인 줄 모르므로
해성 평양(古평양), 헌우란 패수(古패수)는 겨우 대수롭지 않은 야사가(野史家)의 귓속말로 남아있을 뿐이요,
평안도 패수(지금 패수- 대동강), 평양(지금 평양)만 행세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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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출처: 조선사연구초(인터넷 판 - 위키문헌)
http://ko.wikisource.org/wiki/%EC%A1%B0%EC%84%A0%EC%82%AC_%EC%97%B0%EA%B5%AC_%EC%B4%88
2) 참고문헌: 조선상고문화사(외), 비봉출판사, 2008년판
3) 지금 올리는 ‘평양패수고’는 ‘조선사연구초’ 안에 있는 글임
* 조선사 연구 초(朝鮮史硏究草), <저자: 신채호>
가. 고사상(古史上) 이두문 명사 해석법
나. 삼국사기(三國史記) 중 동서(東西) 양자(兩字)의 상환(相換) 고증(考證)
다. 삼국지 동이열전 교정
라. 평양 패수고
마. 전후 삼한고(前後 三韓考)
바. 조선역사상 일(一)천년래 제일 대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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