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사연구초

평양 패수고(平壤浿水考: 단재 신채호) - 4

상 상 2011. 7. 3. 18:38

 

4. 제3의 착오

제3의 착오는 위조한 문자를 찾아 그 핵심을 명백하게 밝히지 못함이라.

이를테면,

 

1) 여태까지 학자들이 한서(漢書) 제기(帝紀) 무제(武帝) 원봉(元封) 3년 진번, 임둔에 대한 주(註)

 

신찬이 말하기를 무릉서에 의하면 임둔군은 그 치소(治所)가 동이현(東暆縣)이고 장안(長安)에서 6138리 떨어져 있으며

15개의 현이 있다. 진번군은 그 치소가 삽현(霅縣)이고 장안에서 7640리 떨어져 있으며 15개의 현이 있다."

(臣瓚曰 茂陵書臨屯郡治東暆縣 去長安六千一百三十八里十五縣眞番郡治霅縣 去長安七千六百四十里十五縣)에 근거하여

진번 임둔의 위치를 탐색하는 유일한 재료를 삼았으나,

 

그러나 그 소위 무릉서(茂陵書) 즉, 사마상여(司馬相如)가 지었다는 책이 과연 믿을 만한 책이냐.

 

사기나 한서에 사마상여가 무릉서를 지었다는 기록이 없을 뿐더러

한서 사마상여전에 의거하면

사마상여가 죽은 뒤 5년만에 무제가 사마상여의 위패를 후토사(后土祠:대지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한 사당)에 처음 세웠다고 하고,

 

사기 봉선서(封禪書)나 한서 비사지(祀志)에 의거하면

무제가 원수(元狩) 2년(서기전 121년)에 비로소 후토사(后土祠)을 세웠으니,

 

그러면 사마상여가 죽은 해는 원수(元狩) 2년의 5년 전인 원삭(元朔) 3년(서기전 126년)이요,

진번, 임둔 양군의 설치는 원삭(元朔) 3년에서 18년 후인 원봉(元封) 3년(서기전 108년)이니,

 

원봉(元封) 3년(서기전 108년) 진번, 임둔의 설치할 때 벌써 죽은지 18년이 넘은 사마상여가 무릉서를 지어

진번, 임둔 양군의 명칭 위치 및 그 속현의 수를 말하였다 하면 이는 비사학적인 요괴담이 될 뿐이니

 

위에 있는 한서의 주(註), “신찬이 말하기를 무릉서에 의하면(臣瓚曰 茂陵書...)”이 위조임이 또한 명백하지 아니하냐.

 

2) 선배유학자들이 한서 지리지 낙랑군의 소속인 조선(朝鮮), 염한(䛁邯), 패수(浿水), 함자(含資),

점선(黏蟬), 수성(遂成), 증지(增地), 대방(帶方), 사망(駟望), 해명(海㝠), 열구(列口), 장잠(長岑), 둔유(屯有),

소명(昭明), 루방(鏤方), 제해(提奚), 혼미(渾彌), 탄렬(吞列), 동이(東暆), 불이(不而), 잠태(蠶臺), 화려(華麗),

사두매(邪頭昧), 전막(前莫), 부조(夫租)등 25현과

 

그 주(註)의 “패수는 서쪽으로 증지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 "대수는 서쪽으로 대방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

"열수는 서쪽으로 점선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

(浿水西至増地入海” “帶水西至帶方入海” “列水所出西至黏蟬入海) 등의 말에 의거하여

 

패수, 대수, 열수 3수(水)를 곧 지금 대동 임진 한강 3수(水)로 잡고,

3수(水)의 출입에 의하여 각 현의 소재지를 알아내려 하였으나,

 

그러나 이 설(說)이  전술(前述)한

“상곡부터 2천여리의 종점인 만반한이 요양 등지가 되고,

요양의 서남인 해성현의 헌우락이 패수가 된다.”고 한 위략 흉노전 조선전 등과 맞지 아니하니,

한서 지리지의 일부분인 낙랑군의 본문과 본주(本註) 모두가 위조임이 명백하다.

 

중국 역사책은 거의 그 독특한 병적인 자존성이 있는 춘추필법을 계승한 환자들의 저작(著作)인 고로,

비록 저작자가 직접 쓴 서적이 그대로 존재할지라도

저들을 상대로 한 전쟁이나, 저들과 관계된 강토의 문제 같은 것은 저들의 기록을 맹신함이 옳지 않은데,

 

하물며 위조한 무릉서나 낙랑군 지리지에 의거하여

아주 먼 옛날(上古)에 국경 문제의 쟁점이 되는 패수와 평양의 위치를 구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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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서 본기에 있는 문장중에서 신찬의 주석이 위조임을 밝혀낸 단재선생의 능력에 감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많은 중국 사서에서 '찬설시야'라고 해서 신찬의 주석이 진실로 받아들여지는 것을 볼때, 

신찬의 주석이 위조임을 밝혀낸 단재선생의 뛰어남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또한, 단재선생께서 신찬의 주석이 위조임을 밝혀내는 과정을 보면  

엄청난 분량의 문장이 있는 사기와 한서를 이 잡듯이 뒤져 그 속에 몇개 되지도 않는 조선에 관한 글귀를 찾아냈다는 것과

그 수많은 사건이 기록된 사기와 한서의 내용을 전부 꿰뚫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기 같은 책은 지금 우리가 번역된 것을 보고있지만 그 전부를 읽는 것도 어려움을 느끼고

사기 구석구석에 있는 내용까지 훤히 꿰뚫어 아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임을 알 수 있는 바,

 

단재선생께서는 한문 원문으로 된 원본을 막힘없이 또, 세세한 내용까지 책 전체를  꿰뚫고 

한서까지도 역시 세세한 내용까지 전부 파악해  그 둘을 비교 검토하여 시시비비를 가리시고     

그 결론 또한 매우 날카롭고 정확합니다.

 

역사학자로써 이같이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우리역사를 가르쳐 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단재선생을 따르고 존경하는 것입니다.  

  

1) 출처: 조선사연구초(인터넷 판 - 위키문헌)

http://ko.wikisource.org/wiki/%EC%A1%B0%EC%84%A0%EC%82%AC_%EC%97%B0%EA%B5%AC_%EC%B4%88

 

2) 참고문헌: 조선상고문화사(외), 비봉출판사, 2008년판

 

3) 지금 올리는 ‘평양패수고’는 ‘조선사연구초’ 안에 있는 글임

 

 * 조선사 연구 초(朝鮮史硏究草), <저자: 신채호>

 

가. 古史上 이두문 명사 해석법

나. 삼국사기(三國史記) 중 동서(東西) 양자(兩字)의 상환(相換) 고증(考證)

다. 삼국지 동이열전 교정

라. 평양 패수고

마. 전후 삼한고(前後 三韓考)

바. 조선역사상 일(一)천년래 제일 대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