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사연구초

평양 패수고(平壤浿水考: 단재 신채호) - 3

상 상 2011. 7. 3. 11:12

3. 제2의 착오

 

제2의 착오는 평양과 패수와 관련된 고전(古典) 즉, 그와  관련된 사서(史書)의 본문을 잘 이해하지 못함이다.

 

이를테면 위략에

조선이...후에 자손들이 점차 교만해지고 사나워지자 연燕이 이에 장수 진개를 보내어 그 서방을 공격하여 2천 여리의 땅을 취하고

만반한을 경계로 삼았으므로 조선이 마침내 쇠약해졌다....

한(漢)이 노관을 연왕(燕王)으로 삼았을 때 조선과 연은 취(해동역사에 패로 개정)수를 경계로 삼았다."

(朝鮮…後子孫稍驕虐燕乃遣將秦開攻其西方取地二千餘里 至滿番汗爲界 朝鮮遂弱. …

及漢以盧綰爲燕王朝鮮與燕界於溴- 해동역사에 浿로 개정- 水)라 하고

 

사기 조선열전에

처음 연-燕나라의 전성기로부터 일찍이 진번조선(眞番朝鮮)을 침략하여 복속시키고, 관리를 두어 국경에

성과 요새를 쌓았다. 진(秦)이 연(燕)을 멸한 뒤에는 [그곳을] 요동 외요(外徼)에 소속시켰는데,

한(漢)이 일어나서는 그곳이 멀어 지키기 어려우므로, 다시 요동의 옛 요새를 수리하고 패수에 이르는 곳을

경계로 하여...위만은...북상투에 오랑캐의 복장을 하고서, 동쪽으로 도망하여 요새를 나와 패수를 건너...

왕검(王險)에 도읍을 정하였다(始全燕時嘗略屬眞番朝鮮 爲置吏 築鄣塞秦滅燕屬遼東外徼 漢興爲其遠難守

復修遼東故塞至浿水爲界 … 都王儉)"라 하고

 

사기 흉노전에

연의 장수 진개가 동호(胡)에 인질로 가 있었는데 그곳 사람들은 그를 매우 신임하였다.

그는 귀국한 후 동호를 불시에 쳐서 깨뜨려 물리치자 동호는 1천여리 물러갔다....

연나라 역시 조양에서부터 양평까지 장성을 쌓고 상곡 어양 우북평 요서 요동군을 설치했다."

(燕有賢將秦開 爲質於胡 胡人甚信之歸而襲破走東胡 東胡卻千餘里 … 燕亦築長城自造陽

至襄平 置上谷 漁陽 右北平遼西 遼東郡) 이라 한 바,

 

위의 세개의 책은 다 동일한 사실의 기록이다.

 

선배 유학자들이 혹 위략에 의거하여 흉노전의 1천여리를 2천여리의 오류라고 하고,

이에 의하여 패수를 대동강이라 하여 만반한을 대동강 이남에서 구하며,

 

혹 흉노전에 근거하여 위략의 2천여리를 1천여리의 오류라 하고,

이에 의하여 패수를 압록강이라 하여 만반한을 압록강 이남에 구하였다.

 

그러나 우견(愚見)으로 말하건대 위략의 2천여리나, 흉노전의 1천여리가

 어떤 곳으로 부터 기산(起算) 할 것인지를 묻지 않고

종점인 만반한을 찾는 것은 비상한 착오라 하노라.

 

흉노전으로 보면 진개가 저들이 말하는 소위 동호 즉, 조선을 물리치고

조양(造陽)으로부터 양평까지 장성을 쌓고

 

상곡(上谷: 지금 대동부,大同府), 어양(漁陽: 지금 북경 북 60여리의 폐현,廢縣), 우북평(右北平: 지금의 영평부,永平部),

요서(遼西: 지금의 노룡현,盧龍縣), 요동(遼東: 지금의 요양,遼陽)까지의 연장 2천 여리의 지방

곧 조선의 소유를 진개가 약탈하여 빼앗음이니,

2천여리는 곧 상곡(上谷)부터 기산(起算)하여 요양까지 이른 것이요,

 

만반한(滿潘汗)은 한서 지리지의 요동군의 문현(汶縣)과 반한현(潘汗縣)의 양 현이니,

문반한(문현과 반한현)의 연혁이 비록 전하지 아니하였으나

 

위략에는 만반한(滿潘汗)이라고 하고, 흉노전에는 양평이라 한 바,

양평은 한(漢) 요동군의 군치(郡治: 지금 요양,遼陽)인 즉,

문반한((汶潘汗)은 곧 요양(遼陽) 부근의 땅이며,

 

연(燕)은 조선과 만반한(滿潘汗)으로 경계를 정하였다가 한(漢)은 물러나

패수를 지켰은즉,  패수는 곧 요양 이서(以西)의 물이며

 

같은 지리지에  패수(沛水)가 번한현(潘汗縣)의 경계 바깥에서 흘러 나온다 한 바

지금 해성(海城) 헌우락(蓒芋灤)의 옛 이름이 패수인 즉

 

남약천(南藥泉)의 설(說)을 따라 패수(沛水)를 곧 패수(浿水)로 잡는 동시에

만반한(滿潘汗)을 곧 해성 동북, 요양 서남으로 잡음이 옳으며,

 

험독현(險瀆縣) 주(註)에 험독은 조선왕 만(滿)의 도읍, 즉 왕검성(王儉城)이라 하였은 즉,

왕검성(평양,平壤)인 험독은 지금 해성(海城)이 됨이 명백하거늘

 

이제 2천여리의 기점(起點)을 찾지 않고 종점(終點)을 찾으며

만반한의 연혁을 묻지 않고 그 위치를 억측해서 정하여 패수와 평양의 관계적 지방을 버리고

패수와 평양 왕검성의 연혁을 억지 주장하려 하니 어찌 실제에 부합(합)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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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출처: 조선사연구초(인터넷 판 - 위키문헌)

http://ko.wikisource.org/wiki/%EC%A1%B0%EC%84%A0%EC%82%AC_%EC%97%B0%EA%B5%AC_%EC%B4%88

 

2) 참고문헌: 조선상고문화사(외), 비봉출판사, 2008년판

3) 지금 싣고 있는 '평양패수고'는 '조선사연구초' 안에 있는 글입니다.

 

 * 조선사 연구 초(朝鮮史硏究草), <저자: 신채호>

 

가. 고사상(古史上) 이두문 명사 해석법

나. 삼국사기(三國史記) 중 동서(東西) 양자(兩字)의 상환(相換) 고증(考證)

다. 삼국지 동이열전 교정

라. 평양 패수고

마. 전후 삼한고(前後 三韓考)

바. 조선역사상 일(一)천년래 제일 대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