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들끓는 이슬람권 "트럼프 미쳤다"… 독일·영국·프랑스도 반대

상 상 2017. 12. 8. 20:03

출처: 조선일보, 입력 : 2017.12.08 03:00

 

[화약고 된 예루살렘]

트럼프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수도"중동에 전운 감돌아

 

터키·요르단 등 곳곳 反美 시위, 하마스 "새 인티파다 운동 전개"

이라크 단체 "美軍 공격명분 생겨"우방 사우디마저 우려 표명

EU "암흑의 시기로 돌려놓을 것"·유럽 '대서양연맹'에도 균열

 

 

6(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한다고 밝힌 직후 팔레스타인 각지에서는 시위대가 길거리로 뛰쳐나왔다. 이들은 성조기와 이스라엘 국기를 불태웠고, 유대인들이 예수의 탄생지라고 믿는 베들레헴의 크리스마스트리 전등도 꺼버렸다. 팔레스타인 교육부는 이날 휴교령을 내리고 교사와 학생들에게 항의 집회에 참가할 것을 독려했다.

 

유혈 충돌을 예고하는 강경 발언도 쏟아졌다.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은 TV 연설에서 "(트럼프의) 이번 조치가 종교전쟁을 부추기고 팔레스타인을 끝나지 않을 전쟁으로 인도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 하마스는 트럼프를 향해 "지옥의 문을 연 결정"이라며 비난하면서 "8일부터 새로운 인티파다 운동을 전개하겠다"고 선언했다. '주민 봉기'라는 뜻의 인티파다(intifada)는 팔레스타인의 대대적인 독립투쟁을 의미한다. 1987년부터 6년간 진행된 첫 번째 인티파다 당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스라엘에 테러를 가하고, 이스라엘군이 이에 보복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며 수많은 희생자를 낳았다. 이웃 이슬람 국가들에서도 과격한 반미(反美) 시위가 이어졌다. 터키 이스탄불에서는 미국 영사관에 시위대가 몰려와 "살인자 미국은 중동에서 떠나라"는 구호를 외쳤다. 요르단 수도 암만,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등지의 시위대는 "트럼프는 미쳤다"고 했다.

 

이슬람권은 똘똘 뭉치고 있다. 아야톨라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는 트위터에 "중동을 불안하게 하고 (미국이) 전쟁을 시작하려 한다"며 트럼프를 비난했다. 미국의 오랜 우방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살만 국왕도 "세계의 강경 무슬림을 도발하게 할 것"이라며 우려를 표시했다. 이라크 무장단체 '하라카트 헤즈볼라 알누자바'는 성명을 내고 "이라크에 주둔하는 미군을 공격할 이유가 생겼다"며 무력 행동에 나서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반면, 이스라엘은 "아름다운 선물"(레우벤 리블린 대통령)이라며 트럼프의 결정을 치켜세웠다.

 

트럼프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한 직후 국제사회 반응 정리 표 트럼프의 이번 결정으로 얽히고설킨 중동 정국은 더 꼬여 버렸다. 특히 1993년 오슬로평화협정 이후 국제사회가 일관되게 추진해온 '2국가 해법'이 무용지물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2국가 해법'1967년 중동전쟁으로 정해진 경계선을 기준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국가를 각각 건설해 다툼을 중단하자는 평화 유지 방안이다.

 

트럼프의 예루살렘 수도 인정으로 미국과 유럽 사이의 '대서양 연맹'에도 균열이 생기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유엔 결의에 위배되는 유감스러운 결정"이라고 했고,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미국의 결정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전에도 트럼프는 파리기후변화협정 탈퇴, 이란 핵합의 파기 등으로 사사건건 유럽과 충돌해왔다. 페데리카 모게리니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트럼프의 결정에 대해 "암흑의 시기로 돌려놓을 것"이라고 했다.

 

유럽 국가들은 '예루살렘 사태'에 적극 개입할 의사도 내비치고 있어 미국과 외교적으로 충돌할 수도 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외무장관은 7"앞으로 수십 년간 벌어질 테러와 불안정을 피하기 위해 영국은 중동에서 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랍 국가들이 미국을 향해 분노를 쏟아냈지만 막상 실행에 옮길 만한 실질적인 대응책은 없다는 분석도 있다. 이슬람 맹주 국가를 놓고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이 여전히 패권 다툼을 벌이고 있어 트럼프를 향해 한목소리를 낼 수 있을지 미지수다. 시리아, 이라크, 리비아, 예멘 등은 내전(內戰)으로 황폐화돼 미국에 공동으로 대응할 여력이 없는 상태다.

 

손진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