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통일신라와 당의 관계-348,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193, 8. 황소의 난-19)

상 상 2017. 8. 2. 21:05

통일신라와 당의 관계-348,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193, 8. 황소의 난-19)

 

차례

 

. 관련 사료

1. 구당서 토번전()

2. 구당서 토번전()

3. 신당서 토번전

4. 구당서 돌궐전

5. 신당서 돌궐전

6. 구당서 측천본기

7. 신당서 측천본기

8. 구당서 거란전

9. 신당서 거란전

10. 구당서 발해전

11. 신당서 발해전

12. 구당서 숙종본기

13. 구당서 회홀전

14. 신당서 회골전

15. 구당서 남조전

16. 신당서 남조전

17. 구당서 신라전

18. 신당서 신라전

19. 삼국사기 신라본기

 

.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

1. 이진충의 난 이전

2. 이진충의 난

3. 돌궐족 묵철의 침공

4. 안사의 난

5. 토번의 침공

6. 토번의 침공 이후

7. 민란의 발생과 남조의 침공

8. 황소의 난

9. 절도사의 시대

10. 당의 멸망

 

. 통일신라와 당

1. 통일신라 이후의 당나라 약사

2. 신구당서에 의한 통일신라와 당

3.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의한 통일신라와 당

4. 사료를 통합해서 본 통일신라와 당의 관계

 

 

.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

8. 황소의 난

1) 연표(자치통감 요약을 기초로 작성)

 

 

1) 연표 - 19

내용(자치통감 요약)

884

황소의 장수 상양이 감화절도사 시부에게 항복(88458)

 

황소의 장수 상양이 감화절도사 시부에게 항복하고,

별장인 이당, 곽존, 갈종주, 장귀패, 장귀후는 선무절도사 주전충에 항복

왕만도(王滿渡) 전투(58)

황소는 변주(汴州)를 넘어 북으로 가는데 이극용이 쫓아가서 봉구(封丘)에서 또 깨뜨렸다(9)

밤에 다시 큰 비가 내리니 황소군은 놀라고 두려워서 동쪽으로 도망하였는데 이극용이 이를 쫓아서 조성과 광성을 지났다. 황소가 나머지 무리를 거두니 근 1천 명이었는데

동쪽으로 도망하여 연주(充州)로 갔다.(10)

이극용이 뒤쫓아가서 원구(冤句)에 이르니 따르는 사람이 부족하여 변주()로 돌아가

양식구해 다시 추격하여 황소의 어린 아들과 부인 등을 얻음(11)

동천유후 고인후가 덕양(德陽)에 주둔하고 양사립은 녹두관을 점거하고 이를 막았다

(513)

선무절도사 주전충. 변주()성의 연회에서, 술취한 하동절도사 이극용이 무시하자,

밤에 습격, 겨우 탈출케 함(514)

이극용의 부인 유씨의 설득에 군을 이끌고 떠남

주전충과 이극용, 원수지간 됨

고인후. 12개영채 세워 녹두관(鹿頭關)포위, 밤에 양사립군()의 습격을 격퇴(517)

보탐자(步探子) : () 안에서 첩보를 담당하는 자,

샛길로 가서 정탐한다하여 이름을 붙인것

감화절도사 시부가 그의 장수 이사열을 파견하여 1만군()을 거느리고 황소를 뒤좇았다(520)

고인후가 녹두관 아래에서, 매복으로 양사립 군() 대파하니, 재주로 돌아갔는데 진경선이 군사 3천을 발동하여 고인후에게 보태니 재주(梓州)를 포위하였다.(523)

 

동천절도사 양사립이 고인후에 호응한, 부하장수 정군웅의 봉기에 자결(63).

고인후를 동천절도사로 삼았다.

무녕장수 이사열이 상양과 함께 황소를 뒤쫓아 하구(瑕丘)에서 패배시켰다.

황소의 무리는 거의 다 없어지고 태산(泰山)의 낭호곡(狼虎谷)에 도착(615)

황소의 난 종결(884617)

 

황소의 생질인 임언이 황소와 형제 그리고 처자의 머리를 베어 감화절도사 시부에게 가려고 하였는데 사타의 박야군을 만나 이를 빼앗겼고 아울러 임인의 머리를 베어서 시부에게 바쳤다.

황소의 난 종결(884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