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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이 북핵·金 제거땐 주한미군철수' 카드…코리아패싱?

상 상 2017. 8. 1. 20:24

출처: 매일경제, 입력 : 2017.07.31 17:48:41 수정 : 2017.07.31 20:04:43

 

"완충지 실종 우려하는 에 주한미군철수 등 제안하면 적극적 역할 이끌어낼것"

·`붕괴 빅딜` 나서면 , 한반도서 주도권 잃을판


외교달인 키신저 前 美국무, 트럼프정부에 전략 제언

 

북한의 거듭된 도발에도 소극적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는 중국을 움직이기 위해 '북한 정권 붕괴 후 주한미군 철수'라는 협상 카드까지 거론되기 시작했다.

 

730(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미국 외교의 거장인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은 최근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 핵심 관료들과 만나 "중국의 적극적인 행동을 이끌기 위해서는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하다""북한 정권 붕괴 이후 상황에 대해 미국과 중국이 사전에 합의한다면 북한 핵문제 해결에 더 좋은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한이라는 완충지역이 사라질 것이라는 중국의 우려를 덜어주기 위해 북한 정권이 붕괴한 이후에는 한반도에서 주한미군이 철수하겠다는 약속 같은 것을 고려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키신저 전 장관의 이 같은 제안은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에게도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제이 레프코위츠 전 미국 국무부 북한인권특사도 729NYT 기고문에서 "한반도 정책에 급격한 변화가 필요하다""미국이 오랫동안 지지해왔던 '하나의 한반도' 정책 포기를 고려할 때가 됐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북한 문제 해결과 관련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중국과 협상하는 것"이라며 "중국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미국의 목표가 더 이상 한반도 통일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하게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반도 통일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통해 통일 이후 북한이라는 완충지대가 사라질 수 있다는 중국의 우려를 불식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 정권 붕괴 이후 주한미군 철수를 약속해 중국의 불안을 줄여야 한다는 키신저 전 장관의 의도와 같은 맥락이다.

 

앨런 롬버그 스팀슨센터 석좌연구원은 "중국은 결코 전력을 다해 북한에 압력을 가하지 않을 것"이라며 "중국은 전쟁과 혼란을 피하는 동시에 한반도 통일로 인해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과 국경을 맞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미국 조야에서는 주한미군 철수, '하나의 한반도' 원칙 철회와 더불어 한미상호방위조약 폐지 등이 거론되고 있다. 국방부 관료 출신으로 1990년대 남···4자 회담에 미국 대표단으로 참석했던 토드 로젠블럼 애틀랜틱카운실 연구원은 최근 폴리티코 기고문에서 "주한미군을 철수하고 필요하다면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끝내는 방식으로 중국의 북한 지원 중단뿐 아니라 김정은 북한 정권의 종식을 위한 협조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주장은 모두 중국으로 하여금 북한이라는 완충지대가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를 덜어줌으로써 북한 비핵화에 적극 나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논리에 근거한다. 문제는 미국과 중국이 한반도 문제를 놓고 '빅딜'에 나선다면 북한 문제 해결과 통일 등을 결정하는 주도권을 한국이 아닌 미국과 중국에 내주게 된다는 것이다. 일종의 '코리아 패싱'이다. 이는 박근혜정부 말기 탄핵 정국으로 인해 북한 핵문제를 놓고 코리아 패싱 논란이 일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다. 한국 정부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사회 작동 원리에 의해 코리아 패싱이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이 북한 핵문제 해결의 주도권을 가져야 한다는 문재인정부의 '운전대론'과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중 빅딜론이 부상할수록 한국의 입지가 좁아지는 것은 불가피하다. 이미 미국은 북한 문제 해결의 당사자가 한국이 아닌 미국이라고 인식하기 시작했다.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이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시점부터 한반도 문제는 한국의 문제가 아닌 미국의 문제로 변모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이 도발할 때마다 일본과 먼저 논의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한국 정부가 환경영향평가 절차를 이유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지연시키고 미국의 대북제재 입장과 달리 대화를 제의하는 등 '엇박자'를 보이면서 미국 정부 내에서 한국에 대한 신뢰가 줄어들었다. 미국은 또 북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당사국으로 한국이 아닌 중국을 지목하고 중국에 대한 '채찍''당근'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북한이 중국과의 관계는 중시하지만 남북 관계는 고려하지 않는 현실에 근거한다. 북한의 체제 유지에 필요한 교역의 대부분은 중국과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은 한국의 잇단 대화 제의에도 전혀 응답하지 않고 있다.

 

북한은 한반도 문제의 주도권을 미국이 갖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미국과의 물밑협상을 추구하거나 열망하고 있다. 해묵은 주제인 '통미봉남'이 일상화된 것이다. 통미봉남은 남한을 봉쇄하고 미국과 통한다는 뜻으로 코리아 패싱의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용어 설명>

 

코리아 패싱 : 한반도와 관련된 국제 이슈에서 한국이 소외된 채 주변국끼리만 논의가 진행되는 현상.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1998년 일본을 건너뛰고 중국만 방문하고 돌아가자 일본 언론들이 '재팬 패싱(Japan Passing)'이라 부른 데서 유래했다.

 

[워싱턴 = 이진명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