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통일신라와 당의 관계-347,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192, 8. 황소의 난-18)

상 상 2017. 7. 28. 20:52

통일신라와 당의 관계-347,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192, 8. 황소의 난-18)

 

차례

 

. 관련 사료

1. 구당서 토번전()

2. 구당서 토번전()

3. 신당서 토번전

4. 구당서 돌궐전

5. 신당서 돌궐전

6. 구당서 측천본기

7. 신당서 측천본기

8. 구당서 거란전

9. 신당서 거란전

10. 구당서 발해전

11. 신당서 발해전

12. 구당서 숙종본기

13. 구당서 회홀전

14. 신당서 회골전

15. 구당서 남조전

16. 신당서 남조전

17. 구당서 신라전

18. 신당서 신라전

19. 삼국사기 신라본기

 

.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

1. 이진충의 난 이전

2. 이진충의 난

3. 돌궐족 묵철의 침공

4. 안사의 난

5. 토번의 침공

6. 토번의 침공 이후

7. 민란의 발생과 남조의 침공

8. 황소의 난

9. 절도사의 시대

10. 당의 멸망

 

. 통일신라와 당

1. 통일신라 이후의 당나라 약사

2. 신구당서에 의한 통일신라와 당

3.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의한 통일신라와 당

4. 사료를 통합해서 본 통일신라와 당의 관계

 

 

.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

8. 황소의 난

1) 연표(자치통감 요약을 기초로 작성)

 

 

1) 연표 - 18

내용(자치통감 요약)

884

녹안홍을 흥원유흐로 삼았다(1)

위박절도사 낙행달에게 '낙언정'이라는 이름 하사(1)

황소의 군대가 아직도 강하여 충무절도사 주급, 감화절도사 시부, 선무절도사 주전충이

지탱할 수 없어 하동절도사 이극용에 구원요청(1)

이극용이 번한(番漢) 군사 5만을 거느리고 천정관을 나갔는데 황하 다리가 완성되지 않아, (삼문협)과 하중(河中)에서 황하를 건너 동쪽으로 갔다.(2)

동천절도사 양사립은 서천절도사 진경선, 환관 전령자 형제가 권력과 황제의 은총이 대단하여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에 환관 전령자가 양사립을 좌천시키자 반란을 일으켜 진경선을 토벌한다는 명분으로 부성(涪城)에 주둔하고, 면주()를 습격 하였으나 실패(2)

 

진경선을 서천, 동천 산남서도의 도지휘, 초토, 안무, 처치등사로 삼았다(215)

 

양사립은 격문을 보내 진경선의 열가지 죄를 열거하고, 스스로 15만 군대로 달려가 죄를 묻겠다고 하였다. 이에 양사립의 관직을 깎고 미주방어사 고인후을 동천유후로 삼아 5천군()을 거느리고 이를 토벌하게 하였다(33) :

동천절도사 양사립의 난(8842~6)

주전충이 황소의 와자채(瓦子寨.백성의 집에 만든 영채)를 뽑았는데,

황소의 장수 이당빈과 왕건유가 주전충에게 항복하였다.(3)

무주 사람 왕진이 자사 황건을 잡아 전류에게 항복하였다. 의승절도사 유한괸이 그의 장수

누뢰를 파견하여 왕진을 죽이니 포양진장 장괴는 전류의 군사를 불러 무주를 공격하여

누뢰를 사로잡아 가지고 돌아갔다.(3)

 

고병의 조카 고우가 여용지의 죄상을 고발하였으나 고병은 이를 무시하고 고우를 지 서주사로 좌천시켰다. 떼도적 진유가 서주를 공격하니 고우는 여주에 구원을 요청하였으나 여주자사 양행민은 그의 장수 이신복의 계략을 써서 도적들을 물리쳤다.(3)

다른 떼도적 오형과 이본이 서주(舒州)를 공격하니 고우는 달아났고 고병은 그를 죽였다.

려주(廬州)자사 양행민은 그의 장수 오아와 장훈을 파견하여 오형과 이본을 사로잡아 참수하고 도아를 섭사주자사로 삼았다. 진종권은 그의 동생을 파견하여 여주를 노략질하고 서성을 점거하니 양행민이 그의 장수 전군을 파견하여 격퇴하였다.(3)

전 항주자사 노심중이 황주에 손님으로 있다가 악주자사 최소가 죽자, 3천 군()을 모아 이를 점거하였다. 무창(武昌)의 아장 두홍도 악주(岳州)자사를 내쫓고 그를 대신하였다.

황소가 진주를 300일간 포위 했으나 진주자사 조주 형제와 무리는 마음이 더욱 굳어 있었다. 이극용이 마침 허, , , 연의 군사들을 진주에서 만났는데 이때 황소의 장수 상양은 태강(太康)에 주둔하고 있었는데,(3)

 

여러 군사가 나아가 태강(太康)을 뽑았다(43)

황소의 장수 황사업은 서화(西華)에 주둔하였는데 여러 군대가 공격하니 황사업은 달아났다. 황소가 이 소식을 듣고 두려워 군사를 고양리(高陽里)로 물리니 진주의 포위는 마참내 풀렸다. 주전충은 황소가 곧 도착할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대량(大梁)으로 회군함.(4)

 

큰 비가 내려 황소의 군영은 물위에 떠 있었는데 이극용이 곧 도착한다는 소식에 동북쪽 변주로 향하였고, 위지를 도륙하였다.(53)

상양은 정예기병 5천으로 대량(大梁)을 압박하고 번대(繁台)에 도착하였는데, 선무의 장수

주진과 방사고가 그를 쳐서 물리쳤다.

 

주전충이 이극용에게 급하다고 알리니 이극용이 충무도감사 전종이와 더불어 허주(許州)를 출발하여(56) 중모(中牟) 북쪽의 왕만도(王滿渡)에서 황소군을 대파하여, 1만여를 죽이니 황소군은 드디어 붕괴되었다.(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