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리에르 조항
[중앙일보]입력 2017.04.14 02:50 | 종합 29면 지면보기
자국 우선 정책은 폭력의 전조 몰리에르 조항은 민족주의와 더 심각한 경제 후퇴를 초래 보복은 보복 불러 전쟁 낳을 뿐 진정한 독립은 폐쇄 아닌 나눔 타인과의 평화적 대면이 중요
.세상 어디 그렇지 않은 곳이 거의 없겠지만, 도처에서 난데없이 불쑥 등장하는 자국 우선 정책이 눈에 들어올 때가 있다. 그리고 이 같은 전개는 매번 영락없이 폭력의 귀환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전조였다.
이런 현상은 보통 지극히 작은 징후들로 그 시작을 알리는 경우가 잦았다. 사례를 보자. 1780년 무렵에는 유럽 전역에서, 당시까지 대부분의 오페라 각본에 썼던 이탈리아어를 자국 언어로 전환하는 것이 마치 불문율처럼 따라야 하는 필수적인 일이 되었다. 이렇게 해서 오스트리아 황제의 의뢰를 받은 모차르트는 독일어 각본의 오페라를 작곡해낸다. 1782년 ‘후궁 탈출’, 1791년 ‘마술피리’의 각본이 모두 독일어다. 이전까지 ‘피가로의 결혼’과 ‘돈 조반니’ 같은 걸작 오페라 각본들에 이탈리아어를 썼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유럽에서 민족주의와 전쟁으로 물든 25년이 시작된다. 물론 어느 하나가 다른 것을 직접적으로 촉발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민족주의가 지정학적 측면에서 발현되기 전 문화 속에서 먼저 윤곽을 드러낸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요즘 사회에 이런 종류의 미세한 징후들은 일일이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프랑스에서는 이른바 ‘몰리에르 조항’으로 통하는 프랑스어 관련 조항이 사례가 될 것이다. 이 조치는 공공 분야 입찰에 특정 조항 하나를 포함시킴으로써 공공 사업 현장에서의 프랑스어 사용 강제를 목표로 하고 있다. 피고용인이 프랑스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경우 고용주는 법원 공인 통역사에게 도움을 요청할 의무를 지게 된다. 이 조항이 겉으로 내세우는 목표는 무엇보다 안전과 과업 수행 측면에서 여러 참여원 사이의 의사소통 상황을 개선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노동자에게 현장에 도착한 첫날부터 프랑스어로 말할 것을 강제하는 ‘몰리에르 조항은’ 어떻게 보더라도 민족주의 출현의 전조다.
여기서 프랑스어의 중요성이나 프랑스어 보호를 논의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프랑스어를 하느냐 못하느냐를 선험적 배제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프랑스어 구사는 어디까지나 후천적 통합의 성과가 되어야 한다.
.프랑스에 있는 외국인 유학생이나 프랑스 대학생들의 영어 또는 중국어 수업 진행 금지나, 세계 각지에 적을 두고 있는 회사들과 협력하는 프랑스 기업에 회의 시 협력사 소속 국가 기반 언어 사용을 금지하는 걸 과연 상상이나 해볼 수 있겠는가. 프랑스 땅에 발도 들여놓기 전인 사람들에게 프랑스어 구사 의무를 강제로 못 박으면서 어떻게 외국인 유학생과 노동자 유치를 기대하겠는가.
이런 식으로 가면 세계 도처의 모든 정부가 동일한 조치를 취한다 해도 놀랄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때 가면 세르반테스 조항, 페소아 조항, 이븐루시드 조항, 루미 조항, 괴테 조항의 출현까지 목도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외국의 프랑스인들이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인가. 또 얼마나 많은 프랑스 기업들이 시장을 잃게 될 것인가. ‘몰리에르 조항’은 프랑스에 지금보다 더 심각한 경제적 후퇴를 야기할 것이다.
더 일반적인 관점에서 보자. 다른 사람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자 할 때는, 그들도 나와 똑같은 방식으로 대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만 하는 것이다.
보호주의를 하자고 나설 때에는 보복에 대해서도 예상해야 한다. 보복이 보복을 낳고, 그 끝은 전쟁일 것이다.
파국을 모면하려면 우리 스스로 자신을 가져야만 한다. 더 많은 사람이 우리 언어를 써주는 것이 우리 미래 역량의 열쇠인 만큼사람들이 우리 언어를 말하며 그들이 보유한 역량과 창의성을 우리나라로 가져다주기를 바란다면, 그들을 프랑스로 불러 맞이해야 한다. 특히 프랑스 고용주가 외국 국적의 피고용인에게 프랑스 자국민과 대비해 동일한 임금과 동일한 사회보장을 제공하도록 강제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그들은 굳이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매우 자연스럽게 프랑스어를 배울 것이다. 외국인 유학생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프랑스에 유학 왔지만, 수업만은 부분적으로 중국어나 영어로 이어 간다 해도 그들 역시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친구들과 같이 여가를 나누고 생활을 공유하며 아주 쉽게 프랑스어를 배울 것이다.
다른 모든 주요국이 그렇듯, 오늘날 프랑스는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이해관계와 다국적 협력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절대권력이라는 허상을 긍정하기 위해 이론을 제기할 수도 있겠지만 그 길 끝에는 자멸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진정한 독립과 현실의 권력은 고립과 폐쇄에 있지 않다. 그것은 타인과 그들의 역량, 재능에 대해 열등감 없는 평화적인 대면 속에서 존재를 드러낸다. 그들과 맞서 싸우기 위함이 아니라 함께할 수 있는 일을 나누기 위해서.
자크 아탈리 아탈리 에 아소시에 대표·플래닛 파이낸스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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