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의 '100년 마라톤'과 韓의 벼락치기 대선
출처: 조선일보, 입력 : 2017.04.10 03:05
중국을 상대로 침략전쟁을 벌인 적도 없는 한국을 향해 평범한 중국인들이 단시간에 적대적으로 돌변하는 게 놀라웠다. 그들이 원인으로 꼽는 사드 이슈는 일반인이 이해하기 쉬운 것도 아니다. 불매운동이나 궐기대회 같은 행동이야 공산당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이 뒤에 있다고 생각하면 그만이지만 길거리에서 만나는 평범한 중국 이웃들의 공격적인 태도에 당황했다. 택시를 타고 가다 '한국 간다'는 한마디 했다가 기사로부터 "내리라"는 요구를 받고 황당해하는 중국인 부부의 동영상이 나돌 정도니 말 다 했다. 한 한국 특파원은 한인촌에서 영업하는 헤이처(黑車·택시 영업을 하는 자가용)를 탔는데 기사가 거의 취조하듯 위협적인 태도로 일관해 내릴 때까지 불안했다고 한다. 택시 기사, 가게 점원, 옆집 주민 등 당성(黨性)에 목매는 공산당원도 아닐 듯한 서민들조차 그런다. 지난 25년 한·중 우호를 도로아미타불로 만드는 그들의 행동에 원로 교민들도 '충격'이라고 말한다.
여러 해석이 나오지만 '어디 소국 주제에!'라는 뿌리 깊은 중화주의가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를 봐도 사드 얘기에는 '小韓國' '小棒子(한국인을 낮춰 부르는 말)'라는 표현이 빠지지 않는다. 미국에 이은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으로 올라서자, 지난 수십 년간 봉인돼 있던 대국 의식이 역사상 만만했던 한국을 상대로 표출된 게 아니냐는 설명이다. "5000년 역사상 수많은 왕조의 흥망성쇠를 지켜본 중국인의 사유 속엔 역사란 되풀이된다는 주기성의 사고가 있다"고 한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의 칼럼니스트 기드온 래치먼의 주장이 실감 나는 현실이다. 한국이 아무리 민주주의가 꽃피고, 기적 같은 경제성장을 이뤘다고 해도 결국은 중화를 받들던 나라라는 인식이 뿌리 깊은 것이다.
중국의 꼼수 보복을 보면서 또 하나 깨닫게 되는 것은 이 나라가 이웃을 병법(兵法)적 사고로 대한다는 점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중국 전문가인 마이클 필즈베리는 "중국인들은 21세기를 살고 있지만 그들의 전략적인 사고는 2500년 전 전국(戰國)시대의 약육강식 프레임에 머물러 있다"며 "그것이 바로 손자병법"이라고 지적한다. 그의 말대로, 중국은 사드 배치에 대해서도 논의 단계에선 한국 사회를 겁줘서 내분을 유도하고 결국 지레 포기하도록 하려다가 그 단계를 지나자 관광객의 발길을 끊고 서서히 경제 보복까지 가는 한 수 한 수마다 손자병법을 따르고 있다.
필즈베리는 미국 지도자들에게 '민주화된 미래 중국'이라는 허상을 버리라고 단언한다. 그는 미국을 밀어내고 세계 초강대국으로 가는 중국의 거대한 계획을 '100년의 마라톤'이라고 했다. 100년의 마라톤, 그 결승점이 다가올수록 중국과 이웃 나라들 간 갈등은 숙명적일 수밖에 없다. 그 중국 곁에서 한국은 지금 벼락치기 대선을 치르며 우리끼리 지지고 볶는다. 대선 주자로 나선 사람들을 향해 "우리의 지정학적 미래에 대해 고민해 봤는가"라고 묻기 무안해질 정도로 우리끼리 싸움이 치열하다. 중국의 사드 보복을 보면서, 혹은 북핵 타격론이 나오는 와중에 열린 미·중 정상회담을 보면서 밤잠을 설쳤다는 후보가 진정 한 명이라도 있는가. 그런 이가 있다면 그에게 표를 줄 것이다..
이길성 베이징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