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농가 황폐화·물값 폭등·맹장수술 900만원? FTA 괴담 다 틀렸다

상 상 2017. 3. 13. 18:34

출처: 조선일보, 입력 : 2017.03.13 03:11

 

[한미 FTA 5]

 

한미 FTA 당시 퍼뜨린 괴담과 드러난 진실

 

한국 농업 망한다? - 농축산물 수입 줄고 수출은 늘어

광우병 창궐? - 광우병 이유로 수입 중단 없어

ISD가 한국 법·제도 무력화? - FTA 관련 한국정부 상대 소송 '0'

맹장수술 등 의료비 천정부지? - 맹장수술 45만원, 4만원 올라

수돗물 비싸 빗물 받아 써야? - 물값 1683.4, 64원 인상

 

지난 7일 오후 광주광역시 광산구 진곡산업단지 금형업체 고려정밀 공장. 3900규모 생산라인에서는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금형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이 회사 제품은 70% 이상이 미국 수출용. 나용석 대표는 "미국 주문 물량 납기를 맞추느라 정신이 없다"고 말했다. 2012년 한·FTA 발효 이후 2.9%이던 관세가 0%로 떨어지면서 고려정밀은 미국 수출 비중이 전보다 2배 이상 늘었다. 관세 인하로 가격 경쟁력이 생긴 덕분이다. 오는 15일로 발효 5주년을 맞는 한·FTA는 다양한 측면에서 우리 경제에 긍정적 효과를 가져왔다는 평가다. 하지만 국회 비준 당시엔 별의별 괴담이 사회를 혼란에 빠뜨렸다.

 

미국산 농축산물 수입 감소

 

대표적 괴담이 한·FTA 발효 이후 미국산 농축산물이 대거 밀려와 우리 농업이 황폐해질 것이란 우려였다. 하지만 미국산 농축산물 수입액은 2011755090만달러에서 지난해 685200만달러로 연평균 1.9% 감소했다. 옥수수 수입량이 연평균 11.4% 줄어 감소 폭이 컸고, 체리·오렌지 등 과일과 와인 수입액이 증가했다. 신승관 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장은 "미국산 과일 때문에 국내 과수 농가가 큰 어려움에 처했다고 보긴 어렵다"면서 "소비자 선택 폭을 넓혔다는 긍정적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우리 농축산식품 수출은 201141895만달러에서 지난해 71595만달러로 연평균 14% 증가했다.

 

'뜨거운 감자'였던 미국산 소고기 수입은 FTA 발효 후 연평균 9.6% 증가했다. 수입 소고기에서 미국산 비중은 201138.9%에서 지난해 45.3%로 늘었다. 하지만 광우병 때문에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중단한 사례는 발생하지 않았다. 미국 소가 광우병에 걸려 식품 안전에 이상이 있다고 판단하면 언제든 수입을 중단시킬 수 있다.

 

·FTA 근거 ISD 제소 '전무'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도 괴담 단골 소재였다. ISD는 한국에 투자한 기업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국제중재기구에 제소할 수 있게 하는 조항. 투자 자본이나 기업이 피해를 봤다는 결정이 나오면 한국 정부가 현금으로 배상해야 한다. 당시 민주노동당은 "ISD는 미국 투기자본이나 다국적 기업이 이윤 확대를 위해 우리 법·제도를 무력화시키는 독소 조항"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아직 이와 관련한 제소는 5년 동안 한 건도 없다. ISD3건 있긴 했지만 모두 한·FTA와는 무관했다. 2012년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우리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ISD는 한·벨기에 투자보장협정에 근거한 것이었다.

 

"맹장수술비 900만원"

 

"·FTA 이후 의료 민영화로 인해 맹장수술비가 900만원까지 오른다"는 괴담도 회자됐다. 하지만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맹장수술로 개인이 부담하는 비용(6인실 기준)201241만원에서 지난해 45만원으로 4만원 올랐다. "·FTA로 미국 기업이 상수도 공급권을 따면 물값을 올려 수돗물 대신 빗물을 받아 쓰는 일이 생긴다"는 내용도 인터넷을 달궜다. "미국과 FTA를 체결한 볼리비아에서 미국계 회사 벡텔이 상수도 사업을 유치한 다음 수도료를 올려 서민들이 수돗물 대신 빗물을 받아 쓰고 있다"는 글이 발단이었다. 그런데 볼리비아는 미국과 FTA를 맺은 적이 없을 뿐 아니라 상수도·가스·전력 같은 공공분야는 한·FTA 대상이 아니었다. 2015년 기준 전국 수돗물 평균 요금은 1683.4원으로 한·FTA 전보다 64원 올랐다.

 

·FTA로 서비스 시장을 개방하면 한국 서비스 산업이 무너지고 도박장과 성인산업, 피라미드 판매업이 쏟아져 들어올 것이란 관측도 나왔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거리가 멀었다. 다만 전체 서비스 교역에선 우리 적자 폭이 큰 편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한국 서비스 수지 적자는 201169억달러에서 201594억달러로 규모가 커졌다. 특히 지식재산권 사용료 지불액이 크게 늘었다.

 

손열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는 "당시 반대 진영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신자유주의에 대한 거부감, 초강대국과 양자 협상을 하기엔 준비가 덜 됐다는 불안감 등을 내세웠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협상에서 밀리지 않았다""찬성 진영도 FTA가 깨지면 한·미 동맹이 무너지거나 한국이 망할 수 있다는 등 과도한 주장을 한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은 "국가 중대사를 결정할 때 괴담이 판쳐 소모적 논쟁이 계속되는 일이 흔한데 이를 통제하는 사회적 규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위재 기자

송원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