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책봉의 진실(39)

상 상 2017. 1. 25. 19:14

책봉의 진실(39)

 

<책봉이 있었던 회홀의 가한> - 3

가한

있었던 일

6

충정가한의

동생

이때가 회흘 대장군 힐간가사가 서쪽으로 토번을 공격하러 갔다가 돌아오지 않았을 때였는데- 문장이 아래에 계속됨

7

봉성가한

그 차상(次相)이 국인들을 이끌고 찬탈한 자를 죽이고 충정가한의 아들을 가한으로 세우니(7대 가한: 봉성가한)

나이가 겨우 16~17세에 불과했다.(7904)

 

회골의 대상(大相) 힐간가사가 그 나라의 병사 수만을 모두 들어가지고 장차 북정을 회복하고자 하였는데, 또 토번에게 패배하니 죽은 사람이 절반이나 되었다.

...(중략)...

갈록은 승리한 기세를 타고 회홀의 부도천을 빼앗으니 회홀이 두려움에 떨며 모두 서북쪽에 있는 부락을 아장의 남쪽으로 옮겨 이를 피하였으며 달북특륵인 매록을 파견하여 곽봉을 따라 함께 와서 충정가한의 상사를 알렸고 또 새로운 가한의 책봉을 청하였다.(790년 가을)

 

홍려소경 유정을 파견하여 회골의 봉성가한(7대 가한)을 책봉하도록 하였다.(7912)

8

회신가한

8, 회흘이 사신을 보내 북정에서 토번과 갈[]록을 격파하고 승리해 얻은 가축을 바쳤다. 먼저 토번이 영주(靈州)에 쳐들어와 회흘에게 패배했다가 밤에 화공을 하자 놀라서 물러났다. 12월에 회흘이 살지장군을 보내 사로잡은 토번 대수령 []결심을 보내자 덕종이 연희문까지 직접 가서 보았다.

(791)

 

토번과 당이 일진일퇴를 거듭하고 있었다.(792)

당이 토번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염주성을 쌓음(7932)

당이 남조 왕 이모심을 억지로 동맹으로 끌어들임(7934)

 

남조(南詔:)의 오랑캐 몽이모심이 토번을 신천(神川)에서 크게 격파하고, 사신을 보내 포로와 전리품을 바쳤다.(794)

 

<, 당나라의 11시 방향인 북정도호부를 토번이 공격하자 이를 구원하려고 나선 회홀이 토번에게 대패한 뒤 부분적으로 승리하였고, 당나라의 9시 방향인 염주에서는 당나라가 성을 재보수하며 쌓아 토번의 공격에 대비하였고, 당나라의 7시 방향에서는 당나라가 남만 왕 이모심을 억지로 동맹으로 끌여들여 토번을 격파하였다.>

 

7954월 회홀의 봉성가한(7대 가한)이 사망하였는데 아들이 없어서 그 나라 사람들이 재상 골돌록을 세워 가한으로 삼았다.(8대 회신가한)

 

비서감 장천을 파견하여 회골가한 혈질골돌록을 등리라우록몰밀시합호록비가회신가한(8대 가한)으로 책봉하였다.

(79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