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책봉의 진실(30)

상 상 2016. 12. 30. 18:29

책봉의 진실(30)

 

 

11) 15대 오개가한

 

(개삽)가한 예하의 13개 부락이 오개 특근을 가한으로 삼고(15대 오개가한) 남쪽으로 내려온다. - 오개가한의 즉위.

그러니까 회홀의 백성은 서쪽, 천덕의 요새, 남쪽 세 갈래로 흩어진 것이다.

회홀의 멸망의 길로 접어든 것이다.

회홀이 어떻게 멸망하게 되는지 그 과정을 좀 더 살펴보자.

 

<연표 1>

내        용

841

또한 (개삽)가한의 아장 가까이 있던 30개의 부락은 특근 오개를 가한(15대 가한)으로 삼고 남쪽으로 내려와 중국에 내부했다. 이전에 힐알사가 회골을 격파하고 태화공주를 사로잡았다. 힐알사는 이릉(李陵)의 후예임을 자처하고 중국과 같은 성이라고 했으며 마침내 달간 열 명을 시켜 공주를 보내려고 장성 근처까지 왔다. 오개[가한]이 도중에 힐알사 사신과 마주쳐 달간 등이 모두 죽임을 당하고, 태화공주가 오히려 오개가한(烏介可汗:15대 가한)에게 되돌아오니 바로 [가한이 태화]공주를 인질로 삼아 [그녀와] 동행을 했고, 남쪽으로 고비[大磧]을 넘어 천덕[] 경계까지 와서 천덕성(天德城)을 태화공주의 거주지로 줄 것을 주청했다.

<구당서 회홀전>

 

이에 (개삽)가한 예하의 13부락이 오개 특륵을 가한으로 삼고 남쪽으로 착자산에 들어갔다. 힐알사가 이미 회골을 격파해 태화공주를 얻자 역시 스스로를 이릉(李陵)의 후예로 당조의 일족이라고 하면서 사신 달간을 보내 [태화]공주를 받들어 돌아가게 하려고 했다. 오개[가한]이 분노해 달간을 추격해 죽이고 [태화]공주를 잡아 남쪽으로 고비를 건너오자 변경의 백성들이 크게 두려워했다. [오개가한이] 천덕성으로 공격해 나아가자 진무절도사 유면이 운가관(雲伽關)에 주둔해서 막았다. 재상 이덕유가 건의해 말했다.“회골은 과거 공을 세웠음에도 지금 기근과 어려움에 빠져 있으며 가한은 돌아갈 곳이 없어 공격할 수도 없으니 마땅히 사신을 보내 안무해야만 할 것입니다.” 황제가 병부랑중 이식을 보내 변방의 상황을 알아보게 했다. 이에 [회골의] 상 적심(赤心:자사-刺史)과 왕자 올몰사 특륵 나힐철이 그 부락을 이끌고 귀순하려고 했고, [태화]공주 역시 사신을 보내 오개[가한]이 이미 즉위했으니 그를 책봉해달라고 요구했다. 또한 대신 힐우가사 등이 표문을 올려 진무[]을 빌려주어 [태화]공주와 가한을 거주하게 해달라고 했다. 황제가 이에 조칙을 내려 우금오위대장군 왕회에게 부절을 갖고 그 백성을 안무하게 하면서 식량을 2만 곡()을 주었으나 진무[]을 빌려주는 것은 허가하지 않으며 중인(中人: 환관)에게 명령해 좋은 말로 타이르게 했고, 또한 조칙을 내려 사자에게 부절을 갖고 책봉하러 가서 몰래 그들의 행동을 살피며 [회골의] 변고를 기다리게 했다.

<이상 신당서 회홀전>

 

당 무종 회창 원년(841) 2, 회골의 13부락 가운데 아장에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들이 오희특륵을 세워 오개가한(15대 가한)으로 삼고 남쪽으로 가서 착자산을 지켰다.

8, 이때 조서를 내려 홍려경 장가를 순변사로 삼고 회골의 실제상황을 살피도록 시켰으나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9월 기해일(3) 황상은 마침내 곡식 2만곡을 가지고서 회골을 구제하도록 허락하였다.

11월 계해일(27)-이후, 애초에 할힐사는 이미 회골을 깨뜨리고 태화공주를 얻었는데 스스로 이릉의 후예이고 당과 성이 같다고 스스로 말하고 달간 10명을 파견하여 공주를 받들고 그를 당에 돌아가도록 하였다. 회골의 오개가한(15대 가한)은 군사를 이끌고 달간을 맞아쳐서 이들을 다 죽이고 공주를 인질로 삼고 남쪽으로 가서 사막을 건너 천덕군의 경계에 주둔하였다. 공주는 사신을 보내 표문을 올리고 가한이 이미 세워졌다고 말하고 책명을 내려달라고 요구하였다. 오개도 그의 재상인 힐간가사 등으로 하여금 표문을 올려서 진무에 있는 성 하나를 빌려 공주와 가한이 머무르도록 해달라고 하였다.

12월 경진일(14), 제서를 내려 우금오대장군 왕회 등을 파견하여 회홀을 위문하도록 하고 이어서 쌀 2만 곡으로 진휼하였다. 또 오개가한에게 제서를 내려 타일렀다. “의당 부락의 무리를 인솔하고 점차 옛날의 영토를 회복해야 하고 요새가 있는 담장에 떠돌며 거주하는 것은 계책이 아니다.”<자치통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