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는 석유왕 국방은 미친개… 트럼프 '럭비공 진용'에 세계가 긴장
출처: 조선일보, 입력 : 2016.12.14 03:00
[외교안보 首長 인선 마무리]
- 親러·中견제·中東중심 외교 예고 국무내정자, 러시아 훈장 받기도… 산유국 지도자들과 인맥도 막강 국방내정자, 이라크戰 참전하고 중동주둔 미군 총괄했던 인물
美의 亞외교 취약해질 가능성… 북핵 놓고 美·中공조 균열 우려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선택은 이번에도 '의외'였다. 트럼프 외교·안보팀의 사령탑인 국무장관에 낙점받은 엑손모빌 최고 경영자 렉스 틸러슨(64)은 석유업계에선 거물이지만 공직 경험이 없고 외교 문외한인 친러 기업인이었다.
그가 국무장관 후보군에 뒤늦게 합류했는데도 낙점을 받은 배경엔 '50개국에서 사업을 하면서 계속 영역을 확장해온 능력'과 '산유국 지도자들과 맺은 방대한 인맥'이 있었다고 한다. 작가 스티브 콜은 '뉴요커'에 "거대한 석유 회사는 어떤 나라에서 안정적인 수익이 날지 예측하는 분석팀을 두고 있는데 이 팀이 미국 국무부와 상당히 비슷하다"고 했다.
그러나 미 의회 기류는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 러시아의 미 대선 개입 의혹을 철저하게 조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상황이어서 뼛속까지 친러 성향인 틸러슨의 국무장관 인준은 험난할 것으로 보인다. 2014년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미국이 EU와 함께 러시아를 제재하면서 미·러 관계는 줄곧 마찰음을 내왔다. 틸러슨은 대러시아 제재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해왔다. 민주당 전국위원회(DNC)는 이날 성명에서 "틸러슨 지명은 미 대선에 개입해 트럼프가 당선되도록 한 푸틴에게 또 다른 승리를 안겨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미 언론의 반응도 부정적이다. 뉴욕타임스는 '결함 있는 인선'이란 사설에서 "권위주의 지도자 푸틴과의 관계는 그가 러시아 정책을 다룰 때 미국 국익을 위해 일할지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제기한다"고 지적했다.
러시아는 틸러슨의 국무장관 지명을 환영했다. 유리 우샤코프 대통령 외교정책 고문은 "그는 무게 있는 인사로 러시아 인사들과 좋은 사업적 관계를 맺고 있다"고 했고,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은 "트럼프 당선인과 새 국무장관은 실용적인 사람들로 이런 실용주의가 미·러 관계 구축과 국제 문제 해결에 좋은 기반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틸러슨을 사령탑으로 하는 트럼프의 외교·안보 진용은 친러, 중국 견제, 중동 중심 외교를 펼칠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미·러 관계가 풀리면 그동안 러시아와 손잡고 미국에 대항하려던 중국의 계산이 헝클어진다.
국방장관 내정자인 제임스 매티스 전 중부군사령관은 중동 주둔 미군을 총괄했던 인물이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내정자인 마이클 플린 전 국방정보국(DIA) 국장도 지난 7월 출간한 저서 '전장(戰場)'에서 중동 정책과 이슬람 극단주의 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다뤘다. 그는 북한은 물론 중국도 미국이 싸워야 할 부차적인 대상으로 언급했다.
김성한 전 외교부 차관은 "트럼프 외교·안보 요직 인사들이 모두 러시아·중동을 중심으로 사고하는 경향이 강해 미국의 아시아 외교가 취약해질 수 있다"며 "트럼프가 무역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하나의 중국' 원칙 등에 대해 언급하는 걸 보면 아시아 문제를 외교·안보 관점보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접근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틸러슨 국무장관 내정자가 외교를 직접 다뤄본 적이 없다는 점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동북아·한반도 정책은 국무부보다 국방부나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입김이 더 강해질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매티스 국방장관, 플린 국가안보보좌관, 맥파런드 국가안보 부보좌관 내정자 등은 모두 강경파여서 대중·대북 압박 수위가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플린 내정자는 언론 인터뷰에서 "북한 체제를 이대로 오래 존속시켜서는 안 된다"고 했다. 맥파런드 내정자도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면 중국을 그냥 둬서는 안 된다. 북한과 교역하는 제3국(중국) 기업들의 돈줄도 죄야 한다"며 중국 기업에 대한 세컨더리 보이콧 가능성을 언급했다. 2009년 북핵 대응 시나리오 작성에 관여했던 매티스 내정자는 저돌적인 스타일로 별명이 '미친개'다.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은 "틸러슨(국무장관)은 아시아를 잘 모르고, 플린(국가안보보좌관)과 매티스(국방장관)도 협상파는 아니다"며 "북한 문제에 접근할 때 외교보다 압박에 무게가 실릴 수 있다"고 했다. 윤덕민 국립외교원장은 "트럼프 당선인의 최대 관심은 '중국의 도전'을 막겠다는 것 같다"며 "일본은 물론 러시아까지 손잡고 중국을 옥죄는 구도를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워싱턴=강인선 특파원/ 김진명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