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0 | [원화] 5년(810) 5월에 사신 논사야열이 입조하였고, 아울러 정숙구, 노필의 관(棺)과 (정)숙구의 아들 (정)문연 등 13명을 돌려보냈다. 정숙구와 노필은 평량의 회맹에서 포로가 되었으니, 대략 20여 년이 흘렀으나, 절개를 굽히지 않고 토번에서 죽었고, [이 때 토번이] 강화를 청하면서 그들을 돌려보낸 것이다. 6월에 재상 두우 등에게 명하여 토번의 사신과 중서령의 관사에서 안건을 논의하게 했는데, 이때 [토번에게] 우리 진(秦), 원(原), 안락주의 땅을 돌려달라고 했다. 7월에 홍려소경 대리 어사중승 이섬을 입번사(入蕃使)로 삼았고, 단왕부장사 겸 시어사 오훈을 부사로 삼았다.<구당서 토번전> |
811 | [원화] 6년(811)에서 10년(815)에 이르기까지 사신의 왕래가 끊이지 않았다. <구당서 토번전> <위 [원화] 3년(808) 신당서 회홀전에 이어진 기사> 3년이 지나(811년), (회홀의) 사자가 다시 조정에 들어오자 이난주(伊難珠)를 보내 두 차례 청혼을 했으나 답을 얻지 못했다. [보의]가한이 3천명을 보내 벽제천(鷿鵜泉)에 오자 진무군이 병사를 거느리고 흑산(黑山)에 주둔을 했고, [조정에서] 천덕성(天德城)을 정비하며 회골에 대비했다. 예부상서 이강이 아뢰어 말했다.“회골이 강성한데, 북방 변경이 비어 한 번 전쟁이 일어나면 약한 병졸이 대적할 수 없고, 고립된 성채는 지킬 수 있는 땅이 되지 못합니다. 만약 폐하께서 이를 아신다면 군대를 늘리고 성채를 보강하는 것이 중국에게 좋은 대책이고 백성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입니다. 소신은 지금의 조처가 그 핵심을 잡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변경의 걱정거리가 다섯 가지인데, 순서대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북적의 탐욕은 끝이 없어 오직 이익이 있는 것만이 옳다고 여기며 몰고 온 말의 가치만을 따지는데, 두 해 동안 [조정에] 오지 않은 것은 설마 비단의 이익에 만족했기 때문일까요? 처음에 [회골은]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찌[는 가을이 되]기를 바란 다음에 마음대로 침범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밖을 막고 안을 갖추려면 반드시 조정이 번거롭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첫 번째 걱정거리입니다. 병력이 갖추어지지 않았고 척후[소]가 확실하게 되지 않았으며, 무기가 갖추어지지 않고 성곽과 해자 역시 단단하지 않은데, 천덕[성]을 수리하게 되면 회골은 반드시 의심을 하게 될 것이고, [이로 인해] 서성이 비게 되면 고비로 가는 길은 의지할 곳이 없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두 번째 걱정거리입니다. 무릇 성채는 요새를 보호하는데, 공격과 수비가 쉽고 어려운 것은 변장의 지모가 맡습니다. 지금 바로 황하 변새를 규율하는 것을 조정안에서 결정하여 회골이 돌연 변새를 공격하게 된다면 [당조가 그것을] 대응하는 편함을 잃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세 번째 걱정거리입니다. 우호 관계를 맺은 이래로 [중국] 산천의 모습과 변경 주둔 병력의 허실을 회골이 모두 알고 있습니다. 적들이 여러 주를 약탈하면 군대를 열흘 내지는 한 달 내에 징발할 수 있는데, [반면 회골은] 잡은 백성과 가축을 데리고 하루 만에 돌아가서 당나라 군대가 추적을 해도 회골이 돌아가 버리게 되고, 적이 오래 머무르면서 [약탈을] 하게 된다면 [백성들의] 역(役)이 또한 도리어 커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네 번째 걱정거리입니다. 회흘[北狄]과 토번[西戎]은 평소에 서로 공격을 하고 싸웠기 때문에 변경에 걱정이 없었습니다. 지금 회골이 말을 거래하지 못해 토번과 원한을 풀기로 약속하면 [당나라의] 장군과 신하들이 군영을 닫고 싸우기를 꺼리게 되기 때문에 변경에 사는 백성들이 손을 낀 채 화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다섯 번째 걱정거리입니다. 또한 회서(淮西)의 오소양이 변경에서 죽자 그 변란을 빌미로 여러 도에서 [반란이] 일어나 [백성들의] 역이 열 배나 되었습니다. 소신은 마땅히 그 청혼을 받아들이되 번례(蕃禮)를 지키게 한다면 세 가지의 이익이 있을 수 있다고 말씀드립니다. 화친을 하게 된다면 봉화로 경보를 할 필요가 없어 성채와 해자를 수리할 수 있고 군대를 훈련시켜 힘을 축적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곡식을 쌓아 군대를 강하게 할 수 있는데, 이것이 첫 번째입니다. 이제 북쪽을 돌아보는 걱정이 없게 된다면 남쪽으로 회우(淮右: 안휘성 수현 부근 회수-淮水 북안)의 일을 처리할 수 있을 것이고, 변경에 적을 다 없앨 수 있다고 명령을 내릴 수도 있는데, [이것이] 두 번째입니다. 북방 회흘이 우리와 친척이라고 믿게 되면 토번의 원한이 더욱 심해져 안으로 안정을 얻을 수 없게 되니 [우리] 나라는 앉아서 안녕을 누릴 수 있으며 적들의 약탈도 오래 동안 쉬게 될 것이니 [이것이] 세 번째입니다. 지금 세 가지의 이익을 버리고 다섯 가지의 걱정거리를 취하는 것은 분명 대책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말하기를 공주를 시집보내는 비용이 많이 든다고 하는데 소신은 그렇지 않다고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천하의 부(賦)를 셋으로 나누어 [그 중에] 하나만을 변방에 쓰고자 합니다. 지금 동남지역(회수-淮水 이남) 큰 현의 부가 일 년에 20만 민(緡: 1,000전-錢)인데, 한 현의 부로 혼인 비용을 삼는다면 적은 것을 잃고 큰 것을 얻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지금 혼인 비용이 아까워 주지 않고 만약 우리 군대가 북쪽으로 원정을 한다면 보병 3만 명이 아니라 기병 5만 명으로도 질풍같이 달리는 것을 제지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만약 반드시 이긴다는 것을 보증해도 일 년이면 바로 그치게 될 것이니 그에게 군량을 제공하는 것이 어찌 한개 현의 부(賦)로만 그칠 수 있겠습니까?” 황제가 [이강의 주청을] 들어주지 않았다.<신당서 회홀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