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봉의 진실(10) 5) 회홀의 8대 가한인 회산가한의 책명 그 다음, 회홀의 8대 가한에 대한 책명을 보자. 구당서 회홀전을 보면 정원 11년(795) 6월 경인일에 [골돌록을] 회흘 등리라우록몰밀시합록호비가회신가한(迴紇騰里邏羽錄沒密施合祿胡毗伽懷信可汗: 8대 가한)으로 책배하였다.(貞元十一年六月庚寅,冊拜迴紇騰里邏羽錄沒密施合祿胡毗伽懷信可汗) |
이렇게 되어 있는데 자치통감을 보면, 당 덕종 정원 11년(795년) 4월 병인일(29일)-이후, 회홀의 봉성가한(7대 가한)이 사망하였는데 아들이 없어서 그 나라 사람들이 재상 골돌록을 세워 가한으로 삼았다.(8대 가한) 5월 경인일(24일), 비서감 장천을 파견하여 회골가한 혈질골돌록을 등리라우록몰밀시합호록비가회신가한(8대 가한)으로 책배하였다.(庚寅,遣秘書監張薦冊拜回鶻可汗骨咄祿為騰裡邏羽錄沒密施合胡祿毘伽懷信可汗) |
라고 되어 있어 재상 골돌록을 회홀 사람들이 가한(8대 가한인 회신가한)으로 삼은 때가 795년 4월이고 당나라에서 책명한 때가 795년 5월 혹은 6월임을 알 수 있다. 이때는 어떠한 상황 하에서 책명이 이루어졌는가? 구당서 회홀전을 보면, [정원] 7년(791) 8월에 회흘이 사신을 보내 북정에서 토번과 갈[라]록을 격파하고 승리해 얻은 가축을 바쳤다. 먼저 토번이 영주(靈州)에 쳐들어와 회흘에게 패배했다가 밤에 화공을 하자 놀라서 물러났다. 12월에 회흘이 살지장군을 보내 사로잡은 토번 대수령 [상]결심을 보내자 덕종이 연희문까지 직접 가서 보았다. |
라고 되어 있고, 자치통감을 보면, 당 덕종 정원 7년(791년) 8월 병오일(18일)-이후, 토번이 영주를 공격하였는데 회골(회홀)에게 패하여 밤에 도망하였다. 9월에 회골(회홀)이 사신을 파견하여 포로를 바쳤다. 12월 갑오일(8일) 또 사신을 파견하여 사로잡은 토번의 추장인 상결심을 바쳤다. |
라고 되어 있어 역시 회홀이 당을 대신하여 토번과 전쟁을 하여서 승리한 상황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