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트럼프, 中과 무역전쟁 벌이면… 한국 새우등 신세"

상 상 2016. 11. 11. 19:17

출처: 조선일보, 입력 : 2016.11.11 03:07

 

[전 세계 38개 코트라 무역관이 전하는 '트럼프 당선' 분위기]

 

- ·진출 기업들 초긴장

FTA 재협상 우려 속에 "강행하긴 쉽지 않을 것" 기대도

 

-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감

홍콩 "중국 경제에 대형 악재" 독일 "브렉시트보다 더 큰 폭풍"

"명품·자동차 수출 차질" 멕시코 "지금은 벌벌 떨 때"

 

 

9(현지 시각)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 거리 가판대에는 '벌벌 떨어야 할 때'라는 제목을 1면에 선명하게 인쇄한 신문이 걸렸다. 멕시코 경제 전문가들은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후 비관론을 쏟아내고 있다. 가브리엘 카시야스 바노르테은행 경제분석관은 "트럼프 당선은 멕시코 경제성장률을 0.3%포인트 낮추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선거 기간 멕시코에서 수입되는 제품에 대해 35%의 관세를 물리겠다고 밝힌 바 있다.

 

홍콩 언론들은 10"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 정책이 중국과 홍콩 경제에 대형 악재로 작용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애널리스트의 분석을 인용해 "트럼프가 공언한 대로 중국 수입품에 대해 45%의 관세율을 적용할 경우 중국의 대미(對美) 수출은 4200억달러(484조원) 줄고 중국 GDP(국내총생산)4.8% 감소할 것"이라고 전했다. 독일 언론들은 "27년 전 119일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가장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고 했다. 독일자동차협회는 "트럼프 시대에 보호무역주의가 기승을 부리면 국제 무역과 외교 관계에 심각한 타격이 우려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미 대선이 끝난 지 하루가 지났지만 전 세계적인 '트럼프 쇼크'는 계속되고 있다. 본지가 북미·남미·유럽·아시아 등 전 세계 38개 코트라 무역관을 상대로 긴급 조사를 벌인 결과, 세계 각국에서 '트럼프 시대'가 불러올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감은 좀처럼 가시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외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은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대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었다.

 

·중 무역 갈등 속 '새우등 신세' 되나

 

한국의 대미국 교역 규모 그래프 트럼프가 대대적인 무역 규제 조치를 예고한 멕시코와 중국에 진출해 있는 기업들의 우려가 특히 컸다. 멕시코시티무역관에 따르면, 멕시코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은 트럼프 당선 이후 멕시코 경기 침체로 현지 판매가 줄고, 미국의 관세 인상으로 대미 수출까지 제동이 걸리는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다.

 

중국에 진출한 기업들은 미·'무역 전쟁'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베이징에 본사가 있는 A사 관계자는 "상당수 한국 기업이 중국에 생산 거점을 두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통상 규제가 현실화하고 이에 맞서 중국이 보복에 나설 경우 미·중이란 '고래' 간의 무역 전쟁에 우리 기업들의 '새우등'이 터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중국의 대미 수출이 위축되면 우리의 대중(對中) 수출도 도미노처럼 영향을 받는 것도 문제다. 우리가 중국에 소재·부품 등 중간재를 수출하면 중국에서 이를 가공해 미국으로 수출하는 무역 구조 때문이다.

 

미국에 진출해 있는 기업들은 한·FTA(자유무역협정) 재협상 가능성에 대해 우려감을 나타내고 있다. 정영화 댈러스무역관장은 "현지 진출 기업들은 FTA 체결 이후 관세가 없어져 판매가 늘었는데 관세가 다시 생기면 가격 경쟁력을 상실하게 되는 상황을 걱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트럼프 정권과 이렇다 할 네트워크가 없는 것도 고민거리다.

 

최문석 파리무역관장은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조치로 프랑스산 명품·자동차 등의 대미 수출이 차질을 빚을 경우 경제성장이 둔화돼 실업률이 높아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급속도로 확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환율 변동에 대한 우려도 컸다. 독일에서 의료 기기를 생산해 전 세계로 수출하는 B사 관계자는 "브렉시트로 한바탕 난리였는데 이번에는 트럼프 당선이라는 더 큰 폭풍이 몰려오고 있다""특히 유로 환율이 불안정해질 경우 판매 실적이 심각한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극단적 보호무역주의 흐르지 않을 수도"

 

트럼프 당선에 가장 큰 역할을 한 미국 러스트벨트(중서부 지역)의 주요 산업은 기계·철강·자동차다. 한국의 주요 수출 품목과 겹치기 때문에 트럼프 정부의 수입 규제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김종춘 뉴욕무역관장은 최근 철강을 중심으로 미국 정부가 한국 제품에 부과한 고율의 반덤핑·상계 관세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좀 더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트럼프가 선거 기간 내건 공약을 그대로 이행할 것인지는 두고 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난징 무역관에 따르면, 장쑤(江蘇)성의 한 고위 관료는 중국산 제품이 미국의 물가 안정에 큰 기여를 한 게 사실이며 미·중 관계는 워낙 연결 고리가 복잡하기 때문에 어느 한쪽에서 일방적인 무역 정책을 고집할 수는 없다고 진단했다. 이종건 워싱턴무역관장은 트럼프가 FTA 재협상의 필요성을 강조했지만 전통적으로 자유무역을 강조해온 공화당의 기조를 감안하면 트럼프가 무조건 밀어붙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트럼프 당선인이 법인세 최고 세율을 현행 35%에서 15%로 낮추겠다는 공약을 내건 만큼 삼성전자·현대자동차 등 미국에 대규모로 투자한 기업들은 감세 혜택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김승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