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에 위협받는 美 자유무역
출처: 매일경제, 기사입력 2016.03.21 17:01:48 | 최종수정 2016.03.21 20:03:40
"시간당 21달러 받고 뼈 빠지게 일했는데 이제 우리더러 그만두라고?"
에어컨 제조회사인 캐리어의 인디애나폴리스 공장에서 생산직 근로자로 24년간 일한 마크 웨들 씨(55)는 멕시코로 공장 이전을 결정한 회사를 향해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나에겐 두 명의 멕시코 처남들이 있다. 그래서 멕시코 국경에 높은 장벽을 치겠다고 주장한 트럼프를 싫어한다. 하지만 트럼프가 캐리어 경영진에게 한 방 먹인다면 나는 그에게 표를 던질 것이다"고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아니나 다를까 공화당의 대선 유력주자 도널드 트럼프는 캐리어 사례를 언급하며 "중국과 멕시코에 빼앗긴 일자리를 되찾아오겠다"고 외쳤다.
`아웃사이더` 트럼프가 자유무역의 피해의식에 깊이 사로잡힌 미국 남성 노동자들의 표심을 붙잡으면서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의 충돌은 미 대선의 가장 뜨거운 경제 쟁점 중 하나로 떠올랐다. 특히 자유무역을 지지해온 공화당에서 보호무역을 대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점은 의외다. 공화당의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마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반대한다고 밝힌 걸 보면 미국 유권자들에게 어지간히 솔깃한 얘기임은 틀림없다. 마치 2012년 한국 대선 때 여야가 한목소리로 `경제자유화`를 외친 것과 다를 게 없다.
하지만 트럼프 말처럼 애플이 중국 아이폰 공장을, 몬델레즈가 멕시코 오레오 공장을 미국으로 가져오는 게 미국의 국익에 부합할까. 미국 기업의 가격경쟁력을 떨어뜨리고 타국의 보복관세를 촉발할 가능성이 큰데도 말이다.
자유무역론의 대가 데이비드 리카도는 각 국가가 가장 잘 하는 걸 만들어 교환하는 게 전체 파이를 키우는 지름길이라고 설파했다. 예를 들어 포도주와 직물 모두 싸게 만들 수 있는 포르투갈이 높은 생산비의 영국과 교역을 하더라도 양국 모두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분업과 교환`의 원리를 설명했다. 외부와의 교역을 단절한 채 자급자족하는 고립국이 나은지, 자유무역을 택한 나라가 나은지는 이미 계산이 끝난 얘기다.
하버드대에서 경제학을 가르친 토드 부크홀츠는 그의 저서에서 보호무역의 폐해를 신랄히 지적했다. 대불황기에 처한 미국은 수입품에 높은 관세를 매겼다. 1980년대 일본 자동차기업들은 미 의회의 강경 조치를 우려해 대미 수출을 제한했고, 일본 차의 수입이 줄어 수입차 가격이 뛰자 미국 기업들은 너도나도 자동차 값을 올렸다. 그 뒤 자동차 가격이 대당 평균 3000달러나 올라 미국 소비자들은 한 해에만 수천억 원에 달하는 손해를 감수해야 했다. 일본의 대미 수출을 제한해 1만명의 미 노동자들이 해고를 면했지만 미국 경제는 득보다 실이 훨씬 컸다. 차라리 시장을 개방하고 이에 따라 발생한 실직자에게 지원금을 주면서 새 분야의 기술교육을 시키는 게 낫다고 부크홀츠는 강조했다.
바야흐로 정치인들의 포퓰리즘이 난무하는 시기다.
[뉴욕 = 황인혁 특파원 ihhwang@mk.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