년 |
월 |
사 건 |
759 |
1 |
1일 사사명, 연왕을 칭함(자치통감) |
2 |
15일 사사명이 안경서를 구원하기 위해 범양(북경)에서 직접 출동(자치통감) |
3 |
6일 당군 60만과 사사명군 15만이 상주(업성근처)에서 싸웠으나 당군 대패
(자치통감)
건원 2년(759)에 회흘의 골철특근 등이 무리를 이끌고 곽자의와 아홉 절도사와 함께 상주성 아래에서 전투를 했는데 불리했다.
3월 임자일에 회흘 왕자 골철특근과 재상 제덕 등 15명이 상주에서 서경으로 도망쳐오자 숙종이 자신전에서 연회를 베풀어주었고, 등급에 따라 물자를 상으로 주었다. 그 달 경인일에 회흘 특근이 진영으로 돌아간다고 말하자 황제가 자신전에서 연회를 베풀어 주고 물자를 등급에 따라 내려주었다.
을미일에 회흘 왕자에게 새롭게 좌우림대장군 원외치를 제수하며 골철특근을 은청광록대부(종 3품) 홍려경원외치로 삼았다.
<이상 구당서 회홀전>
이듬해(759년) 골철[특륵]과 9명의 절도[사]가 상주[성](相州城)에서 싸움을 벌였는데 당나라 군대가 궤멸되어 제덕 등이 경사로 도망쳐 왔는데, 황제가 [재물을] 후하게 내려주며 그의 뜻을 위무하자 바로 돌아갔다.
<신당서 회홀전> |
사사명이 업성을 차지하며 안경서를 죽이고 범양으로 돌아감(3월6일 이후 3월 18일 이전): (자치통감) |
4 |
8일 사사명이 대연 황제를 칭함.
(자치통감)
여름 4월에 회흘 비가궐가한이 죽었다. 장자 엽호가 먼저 죽임을 당해 바로 그의 작은 아들인 등리가한이 즉위해 그 아내를 가돈으로 삼았다.
<구당서 회홀전> |
6 |
6월 병오일에 좌금오위장군 이통을 시홍려경(試鴻臚卿) 섭어사중승으로 삼아 조제회흘사(弔祭迴紇使)를 맡게 했다. 비가궐가한이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그의 관리와 도독 등이 영국공주를 순장시키려고 하자 공주가 말했다. “우리 중국의 법도대로라면 남편이 죽으면 상복을 입고 아침과 저녁으로 곡을 하다가 삼년이 지나면 상복을 벗으면 된다. 지금 회흘에 시집을 왔으나 반드시 중국의 예법에 따라야 할 것이다. 만약 지금 이 나라의 법도를 따라야 한다면 어찌 만 리까지 결혼을 하러 왔겠느냐?” 그럼에도 공주 역시 회흘의 법도에 따라 얼굴을 [칼로] 그으며 크게 울었는데, 마침 자식이 없어 [중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구당서 회홀전>
얼마 지나지 않아 [여름 4월에 갈륵]가한이 죽자 나라사람들이 [영국]공주를 따라서 죽게 하려고 했는데, [영국]공주가 말했다. “중국에서 남편이 죽으면 아침과 저녁으로 곡을 하고 3년 동안 상복을 입는 것, 이것이 탈상의 예법이다. 회흘로 만 리나 와서 결혼을 했어도 본래부터 중국[의 예법]을 따라야 하기 때문에 [가한을] 따라서 죽을 수는 없다.” 이에 멈췄으나 칼로 얼굴을 긋고 통곡을 하는 것은 또한 그의 습속에 따랐다. 이후에 [영국공주는] 자식이 없었기 때문에 [본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전에 엽호 태자가 먼저 죄를 지어 죽었기 때문에 둘째 아들 이지건이 즉위해 모우가한(牟羽可汗)이라고 했는데, 그의 처가 복고회은의 딸이었다. 이전에 가한이 어린 아들을 위해 [당나라에] 청혼을 하자 황제가 [공주를] 아내로 삼게 했는데, 이렇게 되면서 가돈이 되었다.
<이상 신당서 회홀전> |
8 |
가을 8월에 영국공주가 회흘에서 돌아오자 [숙종이] 조칙을 내려 백관들이 명봉문 밖에서 맞이하게 했다.<구당서 회홀전> |
9 |
24일(정해일:자치통감) 사사명이 군대를 이끌고 범양(북경) 출발(자치통감) |
27일(경인일:구당서 숙종본기, 자치통감) 사사명, 낙양 함락(자치통감) |
10 |
4일 이후 사사명군과 당군이 하양성에서 공방을 벌임.(자치통감) |
전쟁이 교착상태에 빠짐(759년 10월 4일 ~ 761년 2월 22일까지): (자치통감) |
760 |
9 |
상원 원년(760) 9월 기축일에 회흘 9성가한(九姓可汗:9성은 회홀을 의미)이 대신 구륙막달간 등을 사신으로 보내 조정에 들어와 표를 받들고 머물렀다. 을묘일에 회흘 사신 20명이 연영전에서 [숙종을] 알현하자 등급에 따라 물자를 내려주었다.
<구당서 회홀전>
이듬해(760년) 사신 대신 구록막하달간 등이 조정에 들어와 [영국]공주가 살고 있는 곳에 문후를 드렸고, 사신이 연영전에서 [황제에게] 알현을 했다.
<신당서 회홀전> |
11 |
11월 무진일에 회흘 사신 연지가라 등 10명이 연영전에서 알현을 하자 [숙종이] 등급에 따라 물자를 주었다. <구당서 회홀전> |
761 |
2 |
23일 낙양 북망산 전투에서 사사명 승리(자치통감) |
3 |
9일 사사명이 아들 사조의에게 피살되고 사조의는 낙양에서 황제에 오름
(자치통감) |
또다시 전쟁이 교착상태에 빠짐(761년 3월 9일 이후 ~762년 10월 26일까지):
(자치통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