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통일신라와 당의 관계-188,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32), 안사의 난-1)

상 상 2016. 1. 29. 18:57

통일신라와 당의 관계-188,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32), 안사의 난-1)

 

차례

 

. 관련 사료

1. 구당서 토번전()

2. 구당서 토번전()

3. 신당서 토번전

4. 구당서 돌궐전

5. 신당서 돌궐전

6. 구당서 측천본기

7. 신당서 측천본기

8. 구당서 거란전

9. 신당서 거란전

10. 구당서 발해전

11. 신당서 발해전

12. 구당서 숙종본기

13. 구당서 회홀전

14. 신당서 회골전

15. 구당서 남조전

16. 신당서 남조전

17. 구당서 신라전

18. 신당서 신라전

19. 삼국사기 신라본기

 

.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

1. 이진충의 난 이전

2. 이진충의 난

3. 돌궐족 묵철의 침공

4. 안사의 난

5. 토번의 침공

6. 토번의 침공 이후

7. 민란의 발생과 남조의 침공

8. 황소의 난

9. 절도사의 시대

10. 당의 멸망

 

. 통일신라와 당

1. 통일신라 이후의 당나라 약사

2. 신구당서에 의한 통일신라와 당

3.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의한 통일신라와 당

4. 사료를 통합해서 본 통일신라와 당의 관계

 

 

.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

1. 이진충의 난 이전

2. 이진충의 난

3. 돌궐족 묵철의 침공

4. 안사의 난.

1) 연표

 

1) 연표(안사의 난)

: 755119~ 763130

 

이 연표는 이제까지 올린 구당서 숙종본기, 신구당서 회홀전, 돌궐전 등과 자치통감의 내용을 연도순으로

작성한 표임.

 

사 건

755

11

9일 안록산이 범양(북경)에서 15만 군대로 반란을 일으킴(자치통감)

12

2일 안록산이 황하를 건넘(자치통감)

12일 안록산이 낙양을 점령함.(자치통감)

756

1

1일 안록산이 낙양에서 연나라를 세우고 황제를 칭함(자치통감)

 

숙종 지덕 원년(756) 1월 갑진일에 토번이 사신을 보내 내조하고 강화하길 청했는데, 재상 곽자의, 소화, 배준경 등에게 칙유를 내려 중서성에서 연회를 베풀도록 했다. 장차 광택시(光宅寺)에 이르러 맹서를 할 때 [토번의] 사신이 말하기를, “토번의 법에 맹서를 할 때는, 세 가지 희생의 피를 취해서 마시고, 불사(佛寺)의 일을 없게 합니다. 청컨대 내일 반드시 홍려시(鴻臚寺)에서 피를 취하여 마심으로써 토번의 예를 행하게 하소서.”라고 하니, 이를 따랐다.(이때까지 당 현종은 장안에 있었음)<구당서 토번전>

6

9일 안록산군이 동관을 점령함.(자치통감)

13일 당 현종 등이 장안을 버리고 탈출함. 성도(사천성 성도시)쪽으로 도주.(자치통감)

26일 안록산군이 장안을 점령함(자치통감)

7

9일 당 현종의 태자가 도주하여 영무(, 영하 회족자치주 은천시 관내 영무시)에 도착

(자치통감)

12(갑자일) 태자가 스스로 영무에서 황제에 오름(당 숙종). (자치통감)

 

지덕 원년(756) 7월에 ()숙종이 영무(靈武)에서 즉위했다. <구당서 회홀전>

정묘일(15), (그 소식을 모르고) 당 현종이 태자를 천하병마원수로 임명

(자치통감)

기묘일(27) 조서로 부풍을 봉상군으로 고쳤다.<구당서 숙종 본기>

28(경진일) 당 현종, 성도(사천성 성도시)에 도착.(자치통감)

곽자의 이광필 등의 군사 5만이 영무에 도착(자치통감)

8

1일 당 숙종, 곽자의를 병부상서로 이광필을 호부상서로 삼음(자치통감)

16일 영무에서 소식이 오자 당 현종은 태상황으로 태자를 황제로 인정.(자치통감)

9

1(임자일) 당 숙종, 광평왕(뒷날의 당 대종)을 천하병마원수로 삼음(자치통감)

17(무진일), 황상이 남쪽 팽원군으로 행차하였다. 죽은 빈왕 ()수례의 아들 ()승채를

돈황왕으로 봉하여회흘 화친 사신으로 명하고회흘 가한의 딸을 비가공주로 책봉하며

복고회은으로 하여금 ()승채를 호송하여 회흘부에 도착하도록 명하였다.

<구당서 숙종 본기>

 

당 숙종이 빈왕(邠王) 이수례의 아들 이승채와 복고회은을 시켜 회홀에게 군사를 요청

(자치통감)

 

() 빈왕(邠王)의 아들 ()승채를 돈황왕으로 삼고 장군 석정번을 회흘에 사신으로 보내

우호관계를 확인하고 군사 동원을 청했다.

<구당서 회홀전>

 

()숙종이 즉위하자 사자가 와서 []록산을 토벌할 것을 돕겠다고 청했는데, 황제가 조서를 내려 돈황군왕 []승채와 함께 약속을 하라고 명령하고 복고회은에게 왕을 호송해 그 군대를 불러들이게 했다.

<신당서 회홀전>

 

팽원에 행차하여 서북의 병사가 곧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앞으로 나아가 부풍에 행차하여 이에 호응하고. 이때에 조(調)와 용()이 모여질 것이니 군대를 넉넉하게 할 수 있다는 이필의 건의에 따라 당 숙종이 영무를 떠남(자치통감)

25(병자일), 당 숙종 순화(감숙성 경양현)에 도착(자치통감)

10

3일 당 숙종 팽원(감숙성 영현)에 도착.(자치통감)

방관이 장안과 낙양을 수복하겠다고 하자 당 숙종이 허락하고 초토서경겸방어포장양관병마절도등사의 벼슬을 줌.(자치통감)

신축일(21)()관과 적장 안수충이 진도사에서 싸웠으나관군이 패배하여양희문유귀철 등이 적에게 항복하고()관 역시 도망쳐 돌아왔다.

평원태수 안진경은 식량이 다하고 구원이 끊어져성을 버리고 황하를 건너니이에 하북의 군현(郡縣)은 전부 적에게 함락되었다.

<구당서 숙종 본기>

 

21(신축일) 방관이 함양에서 안록산군과 싸웠으나 대패하여, 죽거나 다친 사람은 4만여명,

살아난 사람은 수천명 뿐이었다.(자치통감)

23일 방관이 스스로 남군을 가지고 싸웠으나 또 패배(자치통감)

돈황왕 이승채가 회홀의 아장에 도착하자 화홀가한은 딸을 그에게 처로 삼게 하고 그가 귀하게 여기는 신하를 파견하여 이승채와 복고회은과 함께 와서 팽원에서 황상을 알현하였다. 황상은 그 사자를 후하게 예우하여 돌려보내고 회홀가한의 딸에게 비가공주라는 호칭을 하사하였다.

<자치통감>

 

그의 아장(牙帳)[사신이] 도착하자 [갈륵]가한은 그의 딸을 []승채에게 시집보내면서 수령을 보내 조정에 들어와 화친을 청하자 회흘공주를 비가공주라고 책봉했다.

<구당서 회홀전>

 

 

숙종(7)이 팽원()에 있었는데, [회흘에서 온 사자 갈라지를] 아주 후하게 대우했다.

<구당서 회홀전>

 

[갈륵]가한이 기뻐해 가돈(可敦) 의 누이를 딸로 삼아 []승채에게 시집보내며 우두머리를 보내와 화친을 청하자 황제가 그 마음을 굳게 믿으며 바로 회흘의 딸을 비가공주로 책봉해주었다. 이에 가한이 스스로 장군이 되어 삭방절도사 곽자의와 만나 동라[] 여러 족속들을 토벌했는데, 황하 부근에서 격파했다. [갈륵가한이 곽]자의와 호연곡(呼延谷)에서 만났는데, [갈륵]가한이 그의 강함을 믿고 병사들을 늘어서게 한 다음 []자의를 불러 낭[]독에 절을 하게 한 다음에 만났다.

 

황제가 팽원에 머무르고 있다가 (회흘의) 사자 갈라지를 만났는데, (갈라지가) 지위가 낮은 것을 부끄러워하자 황제가 사자의 기분을 나쁘게 하지 않으려고 궁전으로 끌어 올려 위로하고 보냈다.<이상 신당서 회홀전>

11

8일 회홀군이 대한곡(내몽고 포두시)에 도착하여 곽자의 군대와 합침(자치통감)

12

토번은 위융(청해성 문원현), 신위(청해성 해안현), 정융(청해성 황원현), 선위(청해성 대동현), 제승, 금천(청해성 공화현), 천성(감숙성 적석산현) 등의 군()과 석보성(청해성 황원현 서남), 백곡성(청해성 공화현 동남), 조과성(청해성 동인현)을 함락시켰다.<자치통감>

 

지덕 초(756)에 토번이 휴주(巂州: 사천과 운남성의 교계 지역) 및 위무(威武) 등 여러 성을 얻고 석보성(石堡)에 들어가 주둔하였다. <신당서 토번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