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 군사

北이 잠수함에서 수소폭탄 날리는 날

상 상 2016. 1. 8. 18:22

출처: 동아일보, 입력 2016-01-08 03:00:00 수정 2016-01-08 03:00:00

 

지금부터 20년이 더 된 19956, 나는 처음 접한 열대기후를 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문을 열면 훅 하고 열기를 끼얹는 습식 사우나.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는 그런 날씨였다. 그 속에서 회담 대표들이 언제 나올까, ‘뻗치기를 했다. 미국과 북한 사이에 열린 이른바 ()고위급 회담’. 당시 외무부(현 외교부) 출입기자였던 나는 취재차 출장을 갔다.

 

회담 쟁점은 북한에 제공할 원자로의 노형(爐型) 결정 문제. 그 전해 전쟁 위기까지 치닫게 했던 북한 핵문제는 10월 미국과 북한의 제네바 기본 합의로 해소되는 듯했다. 북한이 핵 활동을 중지하고 사찰을 받는 대신 경수로(輕水爐)를 제공받는다는 것이 합의의 요지. 문제는 북한이 한국표준형 경수로를 거부하면서 불거졌다. 일주일을 예상하고 떠났던 출장은 무려 한 달이나 끌었다. 북한은 결국 한국형 경수로를 받았고,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는 역사의 현장에 있었다는 것이 큰 보람으로 느껴졌다.

 

 

기대 섞인 착각북핵 능력 키워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나도, 정부도, 회담 상대였던 미국도, 국제사회도 모두 착각했다. 북한은 1987년 영변에 핵발전소를 가동했을 때부터 수소탄 시험이라는 4차 핵실험을 감행한 오늘날까지 단 한 번도, 아니 꿈에라도 핵무기를 포기한 적이 없다. 충분한 보상을 해주면 핵을 포기할 것이란 우리의 기대 섞인 착각이 오히려 핵능력을 키워줬다. 그때만 해도 북의 핵능력은 핵무기 한두 개를 생산할 수 있는 양의 플루토늄을 보유했다는 의혹수준이었다. 이제는 북한 주장대로 수폭, 아니면 원폭과 수폭의 중간단계인 증폭핵분열탄 같은 가공할 핵무기를 보유하는 단계가 됐다.

 

이번 4차 실험에서 북한은 지난 세 차례 실험과 달리 핵무기 운반수단인 장거리미사일 발사 실험을 생략했다. 북한은 1(200610) 2(20095) 3(20132) 실험을 하기 13개월 전에 모두 장거리미사일을 쐈다. 그러나 북한이 장거리미사일을 쏘지 않았을지언정 운반수단 실험을 포기한 건 아니다. 더 치명적 운반수단인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의 수중사출 실험을 했다. 그것도 지난해에만 5, 11, 12월 세 차례나 했다. 세 번째는 4차 핵실험을 실시하기 불과 16일 전이었다.

 

핵탄두를 장착한 SLBM궁극의 핵무기로 불린다. 잠수함에서 쏘기에 사전탐지가 거의 불가능하다. 특히 적의 공격으로 지상 핵무기가 파괴돼도 ‘2(Second Strike)’을 가할 수 있기에 상대가 함부로 공격하지 못하게 하는 최상의 억제력을 갖고 있다.

 

 

궁극의 핵무기최종목표

 

이른바 수소탄 시험을 앞두고 연달아 SLBM 사출 실험을 한 북한의 의도는 자명하다. SLBM에 수소탄을 장착한 궁극의 핵무기를 갖겠다는 뜻이다. 북한이 4차 핵실험을 발표하면서 소형화한 수소탄을 유난히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 중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등 이른바 5대 핵 강국은 모두 수폭과 SLBM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SLBM으로 1km 이상 날아가는 대륙간탄도탄을 쏠 수 있는 기술을 가진 나라는 미, , 3국 정도다.

 

결국 북한 핵개발의 전략적 최종 목표는 SLBM에 소형화한 수폭을 장착해 1km 이상 날리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보유하는 것이다. 북한에 과연 그런 날이 올까? 20여 년간 우리는 이 질문을 하면서 매번 그런 날을 맞고 있다.

 

박제균 논설위원 ph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