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통일신라와 당의 관계-159,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3), 이진충의 난 이전-3 끝)

상 상 2015. 11. 18. 17:35

통일신라와 당의 관계-159,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3), 이진충의 난 이전-3 )

 

차례

 

. 관련 사료

1. 구당서 토번전()

2. 구당서 토번전()

3. 신당서 토번전

4. 구당서 돌궐전

5. 신당서 돌궐전

6. 구당서 측천본기

7. 신당서 측천본기

8. 구당서 거란전

9. 신당서 거란전

10. 구당서 발해전

11. 신당서 발해전

12. 구당서 숙종본기

13. 구당서 회홀전

14. 신당서 회골전

15. 구당서 남조전

16. 신당서 남조전

17. 구당서 신라전

18. 신당서 신라전

19. 삼국사기 신라본기

 

.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

1. 이진충의 난 이전

2. 이진충의 난

3. 돌궐족 묵철의 침공

4. 안사의 난

5. 토번의 침공

6. 토번의 침공 이후

7. 민란의 발생과 남조의 침공

8. 황소의 난

9. 절도사의 시대

10. 당의 멸망

 

. 통일신라와 당

1. 통일신라 이후의 당나라 약사

2. 신구당서에 의한 통일신라와 당

3.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의한 통일신라와 당

4. 사료를 통합해서 본 통일신라와 당의 관계

 

 

.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

1. 이진충의 난 이전

1) 연표: 당 고종 사망 후 이진충의 난 발생 전까지(684~ 696)

2) 연표 분석 및 해설

3) 요약

 

 

3) 요약

 

고구려 몰락 후, 이진충의 난 발생 전까지의 사항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고구려가 668년에 몰락하니

고구려 부흥군이 일어나고 여기에 신라가 가세하자(6704)

당나라는 고구려 지역에 군대를 투입하여 전쟁을 하게 되지만,

동시에 서쪽에서 토번이 당나라를 공격하여(6704)

당나라는 동서 양쪽에서 2개의 전쟁을 하게 된다.

 

이때 토번이 당나라를 꺾자(6704)

당나라는 서쪽은 포기하고 동쪽에만 군대를 투입하여 5년간이나 전쟁을 하였지만

결과는 신라가 당나라의 20만 대군을 꺾는 대승으로 끝났다.(6759: 매초성 전투)

 

이에따라 당은 평양에서 쫒겨나 옛 요동성으로 달아난다.

즉 평양에 있던 안동도호부를 요동의 옛 성으로 후퇴시켰다.

 

동쪽의 이러한 전황이 서쪽 토번에 알려지자

토번이 또다시 당을 공격하여(676년 윤 3)

당은 또다시 동서 양쪽에서 2개의 전쟁을 하다가

또다시 동쪽에서 신라가 승리하자(67611: 기벌포 전투),

당은 요동성에서 또 쫒겨나 신성으로 달아난다.(6772)

 

이에따라, 당나라는 고구려 지역과 신라가 있는 동쪽을 포기하고 손을 떼게 된다.

, 안동도호부를 요동의 옛 성에서 또다시 신성으로 후퇴시키면서

당은 고구려를 간접 통치하는 방식으로 바꾸는 방식으로 고구려 지역에서 손을 떼게 된다.

 

그 이후 이번에는 서쪽에만 군대를 투입하여(67712)

토번과 전쟁을 하였는데(6781), 번번이 패배하니

당은 그동안 숨죽이고 살아오던 서돌궐에 분풀이 공격을 하였으나(6799)

이것은 당나라의 커다란 실수였다.

가만히 있는 벌통을 건드린 것이다.

 

이때부터 돌궐이 당나라를 또다시 공격하여(67910)

당나라는 또다시 북쪽과 서쪽에서 2개의 전쟁을 치르게 된다.

 

이렇게 당나라가 북쪽과 서쪽에서 돌궐과 토번을 상대로,

2개의 전쟁을 20년간 계속한다.(6773월부터 6963월까지)

 

(다음에 이어질 내용)

이러한 환경에서 6965,

당나라의 북동쪽에서 커다란 사건이 벌어진다.

바로 돌궐의 지배하에 있던 거란족이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그것이 이진충의 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