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통일신라와 당의 관계-158,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2), 이진충의 난 이전-2)

상 상 2015. 11. 16. 17:23

통일신라와 당의 관계-158,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2), 이진충의 난 이전-2)

 

차례

 

. 관련 사료

1. 구당서 토번전()

2. 구당서 토번전()

3. 신당서 토번전

4. 구당서 돌궐전

5. 신당서 돌궐전

6. 구당서 측천본기

7. 신당서 측천본기

8. 구당서 거란전

9. 신당서 거란전

10. 구당서 발해전

11. 신당서 발해전

12. 구당서 숙종본기

13. 구당서 회홀전

14. 신당서 회골전

15. 구당서 남조전

16. 신당서 남조전

17. 구당서 신라전

18. 신당서 신라전

19. 삼국사기 신라본기

 

.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

1. 이진충의 난 이전

2. 이진충의 난

3. 돌궐족 묵철의 침공

4. 안사의 난

5. 토번의 침공

6. 토번의 침공 이후

7. 민란의 발생과 남조의 침공

8. 황소의 난

9. 절도사의 시대

10. 당의 멸망

 

. 통일신라와 당

1. 통일신라 이후의 당나라 약사

2. 신구당서에 의한 통일신라와 당

3.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의한 통일신라와 당

4. 사료를 통합해서 본 통일신라와 당의 관계

 

 

.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

1. 이진충의 난 이전

1) 연표: 당 고종 사망 후 이진충의 난 발생 전까지(684~ 696)

2) 연표 분석 및 해설

3) 요약

 

 

2) 연표 분석 및 해설

 

당 고종이 68312월에 죽고 나서도 당나라는 2개의 전쟁을 계속하게 된다.

, 토번(서쪽)과 돌궐(북쪽)을 상대로 전쟁을 하는 것이다.

 

684

또 돌궐의 아사나골돌록이 삭주를 공격해 백성들과 관리를 죽이거나 사로잡아가고,

 

686

돌궐의 (아사나)골돌록이 또한번 삭주와 대주 등을 공격하자 당은 순우처평을 양곡도총관으로 삼아

부장(副將) 포영절과 함께 군사들을 이끌고 구원하러 가 군대가 흔주에 이르러, 적과 싸웠으나 크게 패한다.

 

687

돌궐의 (아사나)골돌록과 원진이 또 창평에 침구하자좌응양위대장군 흑치상지로 하여금 격퇴해 물리치도록 명한다.

그해 8또 삭주에 침구하자다시 흑치상지를 연연도대총관으로 삼아적을 황화퇴에서 쳐서대파하고도망가는 적을 40여리나 추격하니도적의 무리가 드디어 적북(고비사막 북쪽)으로 흩어져 달아났다.

그런데 찬보벽이 정병 13천명을 통솔하여 장성밖으로 나가 끝까지 쫓았다가도리어 골돌록에게 패하여

전군이 다 몰살하고찬보벽은 가볍게 무장한 채 말 타고 도망쳐 돌아온다.

 

이에 ()측천은 대노하여골돌록을 불졸록(不卒祿)으로 고친다.

 

다른 민족에게 당하면 글자로 분풀이를 하는 중국인들의 습관이 도진 것이다.

그런데 희한하게 골돌록은 천수 연간(690~691)에 병으로 죽었다.

이래서 북쪽 전선은 한동안 잠잠해 진다.

 

689

한편 서쪽 전선인 토번과의 전쟁에서는 당나라의 위대가와 염온고가 군대를 거느리고 토번 정벌에 나섰으나 지지부진하므로, 위대가는 포주에 유배 시키고, 염온고는 처형한다.

 

690

잠장천을 무위도행군대총관으로 삼아 토번을 토벌하게 했는데, 그는 도중에 돌아오고 군대는 끝내 출발하지 않았다.

 

692

토번의 대수령 갈소가 그 수하와 귀천부락을 이끌고 항복하길 청하니, 측천이 장현우로 하여금 정예 병사 2만을 이끌고 가서, 안무사가 되어 이들을 받아들이게 했다. 부대가 대도수(大渡水)에 머물렀을 때, 갈소의 일이 누설되어 본국(토번)에 사로잡혔다. 또하나의 대수령 잠추가 강족 부락 8천여 명을 이끌고 장현우를 만나 귀부하였고, 이에 장현우는 그 부락을 엽천주(葉川州)에 두고, 잠추를 자사로 삼았으며, 이윽고 대도서산에 비석을 세워 공을 새기고 돌아온다.

 

일이 이렇게 되자, 측천무후는 왕효걸을 무위도행군총관에 임명하여, 서주도독 당휴경· 좌무위대장군 아사나충절을 이끌고 가서 토번을 격파하게 하니 그 무리를 크게 파하고 안서 4진을 회복해 안서도호부를 구자(龜茲)에 두고 병사를 주둔시켜 지키게 한다.

 

이때, 돌궐의 수령 발론찬이 돌궐의 가짜 가한(可汗) 아사나퇴자와 함께 남쪽으로 쳐들어와 왕효걸과 냉천(冷泉)에서 싸웠으나 패해 달아난다.

 

693

다시 동쪽 전선인 돌궐과의 전쟁이 시작된다.

목철이 돌궐의 가한이 되어 무리를 통솔하고 영주에 침구하여백성과 관리를 죽이고 약탈하니, ()측천이 설회의를 대북도행군대총관으로 삼아18명의 장군을 거느리고 토벌하도록 보냈으나적을 만나지 못하자

얼마 안되어 군대를 돌려 돌아온다.

 

묵철이 잠시 후 사신을 보내 내조하니()측천이 크게 기뻐하며좌위대장군을 제수하고귀국공으로 책봉하며재물 5천단을 하사하였다. 다음해다시 사신을 보내 화친을 청하자또 천선가한을 덧붙여 제수한다.

 

695

토번의 흠릉과 찬파가 임조(臨洮)를 공격하니 왕효걸이 소라한산에서 싸워 토번이 패해 돌아갔다. 그러나 또 토번이 양주(涼州)를 공격하여 양주 도독(都督)을 죽였다. 토번이 사신을 보내 화의를 청하면서 4진에서 철군할 것을 약속하고, 십성(十姓: 서돌궐)의 땅을 분할하기를 청하나 당은 반대한다.

 

696

1월 누사덕을 숙변도 행군부총관으로 삼아토번을 치고, 이어서

3월 왕효걸이 숙변도대총관이 되어, 부총관 누사덕을 거느리고 토번의 장군 논흠릉, 찬파와 소라한산에서

싸웠는데, 당나라군이 패배한다.